세상 끝의 아이들
나카와키 하쓰에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학창시절 내내, 고대사와 중세사는 그렇게 열심히 가르치고 배웠으면서도 근현대사로 넘어올수록 특히 광복 이후 현대사에 대해서는 주마간산식으로 넘어갔던 것같다.  4.19 학생의거와 5.16 혁명 및 5개년 경제개발계획과 무장공비 침투 등에 대해 배운 기억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4.3 제주사건도 전태일열사 분신도 광주민주화운동도 모른 채 어른이 되어버렸다.  

비교적 자유롭게 책을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나는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통해 4.3 제주사건을,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나서는 광복후 좌우이념대립과 갈등을 알게 되었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등을 읽으면서는 도시 철거민과 소록도에 유폐된 한센병 환자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들 소설속에 담겨 있는 내용들은 때론 스물살 청춘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끔찍해서 머릿속으로 '이건 소설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일깨우곤 했지만, 실제 현실은 소설보다 훨씬 더 참담했을 거라는 걸 내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역사가는 소설가가 될 수 없지만 소설가는 훌륭한 역사가가 될 수 있다'는 이 말을 믿는다.

 

나카와키 하쓰에의『세상 끝의 아이들』은 소설가가 어떻게 훌륭한 역사가가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는 무려 20여 년에 걸쳐 역사적 사실들을 하나 하나 확인해가면서 고쳐쓰고 또 고쳐써서 이 한편의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전기도 전화도 없는 일본 센하타 마을에 사는 다마코네 가족은 이장의 감언이설과 마을 사람들의 강요에 못이겨 만주 개척촌인 다이카주돈으로 이주해 온다. 이곳에는 일본인뿐 아니라 조선에서 건너온 사람들도 살고 있었는데, 미자네 역시 평안남도 평화리라는 곳에서 왔다.



 

예닐곱 살에 불과한 다마코와 미자는 그저 서로의 말투가 조금 이상하고 옷차림이 달라도 금방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요코하마에 사는 마리가 아빠 손을 잡고 만주로 여행을 왔다가 개척촌에 며칠 머물게 된다. 또래였던 세 아이는 허물없이 친하게 놀다가 평소 자기들이 잘 알고 있는 세계보다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사찰을 찾아갔다가 그만 갑자기 쏟아진 빗물에 계곡물이 불어나 텅빈 사찰에 고립되고 만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미자가 싸온 주먹밥을 나눠 먹으면서 긴긴 밤을 서로 의지하며 지새우고 이튿날 구조된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세 아이는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다마코는 일본이 전쟁에 져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만 유괴되어 중국인에게 팔려가 중국인 메이주로서 문화대혁명을 겪는다. 가족도 이름도 심지어 일본말도 잊어버렸지만 이상하게 빗속에서 나눠 먹던 주먹밥의 온기만큼은 칠십여 년이 지나도록 다마코의 기억에 오롯이 남아 있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자신이 먹기에도 부족했을 주먹밥을 기꺼이 나눠줬던 미자(욧짱)를 떠올리면서 버텨낸다. 



 

한편,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미자네는 일본으로 건너간다.

피지배민족이라는 신분때문에 차별당하고 신변의 위협을 느낄 때마다, 미자는 주먹밥을 나눠 먹으면서 '예쁜 옷을 입은 것처럼 언제나 가슴을 쭉 펴고 걸어야 해'라던 마리의 말을 떠올린다. 비록 김미자 대신 도미타 요시코(富田美子)로 살아가고 있지만,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않고 가슴을 쭉 펴고 당당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마치, 먼 발치에서 친구 마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미국과 소련의 냉전 구도 아래에서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에서는 남과 북 대립의 골이 깊어졌다. 같은 반도에 사는 조선인들끼리 정치체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으르렁거렸지만 대다수 조선인들은 그 차이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남한 각지에서 공산주의자 색출과 소탕이 시작되며 많은 사람이 체포되었다. 글을 읽고 쓸 줄 안다거나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간첩 취급을 받았다. 제주도에서 일어난 4.3사건에서는 아무 근거 없이 무차별적으로 양민이 학살당했다.

힘들게 일본에서 돌아온 조선인 중에는 과거 일본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에 부닥치자 밀항까지 해서 일본으로 도망쳐 돌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미자 부모님은 밀항한 동포를 집에 숨겨주었다. 그중에는 광복 전에 일본 공장에서 일본군 강제위안부로 일했던 여성도 있었다. 갖은 고생을 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시집까지 갔지만 전쟁 중에 일본에서 일했다며 시댁에서 종군위안부였다는 의심을 받아 소박맞고 쫓겨났다고 했다.

관동대지진 후에 벌어진 조선인  학살 당시, 똥장군에 숨어 목숨을 부지했다는 아저씨도 4.3사건에 쫓겨 딸네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동네 사람들과 뒷산으로 도망가 살 수 있었지만 군인들에게 아기 울음소리를 들킬까 두려워 도망치던 중에 계곡에 아기를 던지고 온 부모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평화리에서 도망쳐온 젊은이도 숨겨주었다. 그 청년에게서 미자네 가족이 고향을 떠난 후 벌어진 일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결국, 연락이 끊어진 미자네 외삼촌 일가는 광복 후 바로 일본에 협력한 친일파라는 꼬리표를 달고 외삼촌과 외사촌이 죽임당했다고 한다. 그 후 집도 땅도 빼앗기고 남은 가족들끼리 마을을 떠났단다. 미자 어머니는 구슬피 울더니 제사를 지낼 때마다 외삼촌 가족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273~274쪽 

 

외면했거나 잘 몰랐던 우리 역사와 모습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접하게 되면 여러가지 감정이 솟구치곤 한다. 타국의 역사를 자세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경외감이 들면 들수록 우리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나고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만약 그 이방인이 일본인이라면, 고마운 마음도 함께 생겨나는건 비단 나 혼자만의 경험은 아니리라. 

 

 

자신이 일본인 학교에 본명으로 다니던 때의 이야기와 한국전쟁으로 친척들이 몰살당한 일, 조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통학 도중에 불한당 같은 사람들에게 괴롭힘당한 일, 통명이라 부르는 일본 이름을 대고 출신을 숨기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재일교포에 대한 이야기....

그중에서도 붕수가 조선학교의 수학여행으로 북한에 다녀온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재일교포는 동포의 과거를 간직한 사람들이야."

동포란 현재 북한과 남한, 두 개의 나라로 분단된 한민족을 뭉뚱그려 부를 수 있는 편리한 말이었다.

"일본 식민지 시절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새 기억을 덮어씌우지 않고 있거든. 일본에 살며 순수 배양된 언어와 문화, 한반도에 사는 동포들이 이미 버린 것까지 그대로 사용하지. 북한에 가서 절실하게 깨달았어. 사실, 한반도 동포들은 재일교포의 존재를 알지 못해. 타향살이하는 재일교포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에서와 같은 삶을 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정작 고향 사람들은 재일교포의 존재를 모르고 옛것에도 흥미가 없어."

붕수는 쓸쓸하게 웃었다.

"북한도 남한도 자꾸자꾸 변화해가. 하지만 우리 재일교포는 변하지 않아. 그래서 동포는 동포라도 같은 동포가 아니야. 재일교포는 북한사람도 남한사람도 아니야. 그냥 재일교포지. 일본에 살며 일본 문화를 흡수하면서도 동시에 동포의 옛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우리는 이제 일본사람도 북한사람도 남한사람도 아니야. 그리고 더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

미자는 놀랐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본에서 불고깃집 하는 자신이야말로 재일교포의 존재를 현실 세계에서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326쪽

 

잘 알려져 있다시피, 현재 일본에는 재일조선인, 오키나와인 그리고 아이누족 등 크게 세 개의 소수민족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일본 정부는 소수민족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문제 해결은 문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라는 명제에 비추어볼 때, 일본 정보의 태도는 문제 해결을 거부한다기보다는 문제 인식을 거부함으로써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잘못된 역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그릇된 역사관이라 하겠다. 



끝으로,

세 명의 주인공 중 하나인 마리의 사연이야말로 이 소설의 주제와 직접 맞닿아 있으며 작가의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전쟁의 참상과 함께 오늘날 일본인에게 기대되어지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에, 다소 길지만 인용해 본다. 

 

마리는 삼 년이나 이세자키초에서 일하며 로쿠초메 너머로는 가본 적이 없었다. 그 너머로 가면 기억이 되살아날 것 같아서였다. 지금 자신의 손을 잡은 가쓰시 오빠의 이 손을 잡고 미하루다이의 집에서 내려오던 언덕길. 공습으로 타죽은 사람들의 팔다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수습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초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썩어들어 가던 팔다리.

마리는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공습 날 아침, 새까맣게 타죽은 가족.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내 손을, 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억지로 펴서 캐러멜을 빼앗아갔던 아주머니, 내 그릇의 감자를 날름 먹어버린 아저씨. 가쓰시 오빠가 찾아낼 때까지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시설에서는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았다.

나뿐만이 아니다. 길바닥에서 죽은 사람들의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훔치던 사람. 공습으로 부모를 잃고 불구가 된 것도 모자라 사람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받던 전쟁고아들.

이런 일본인 따위 필요 없다. 이 세상에 증오스러운 일본인을 더는 늘리고 싶지 않다.

그리고, 마리는 알고 있었다.

일본인, 나 역시 일본인.

일장기를 흔들며 신이치 오빠를 필리핀으로 보냈다. 고철을 모으고, 총알 우표를 사고, 총탄을 보냈다. 싱가포르가 함락되었을 때는 등불을 들고 축하했다. '함락'된 싱가포르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리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잊어버렸다. 일본인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일본인이 얼마나 많이 죽어갔는지, 옥쇄를 각오하고 적을 쳐부수자, 한 사람이 한 명씩 죽이자며 학교에서 죽창을 들고 짚 인형을 찔렀다.

말살을 다짐했던 귀축미영을 받아들이고,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징글벨 노래를 부른다. 헬로 아저씨들이랑 논다. 초코릿을 얻어먹는다. 헬로 아저씨는 우리 머리 위로 소이탄을 퍼붓고, 기관총을 난사하고, 원자폭탄까지 떨어트렸는데.

미군이 물러간 뒤 보도규제가 풀리며 원폭과 공습의 참상이 보도되었다. 헬로 아저씨들은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짓을 광기에 휩싸여 저질렀다. 그런데도 모두 잊고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뗀다.

마리는 하쿠라쿠의 할머니댁에 맡겨지고 나서 다닌 국민학교에서 교과서에 먹을 칠해 지웠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 시커멓게 먹을 칠해 지워야 했다. 먹칠하고 나서는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 잊으라고 했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무엇을 가르쳤던가, 무엇을 가르치지 말아야 했던가. 제대로 공부할 수 없었다.

같은 일이 또다시 반복된다.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로 경기가 살아났다. 군대를 갖지 말아야 할 일본이 경찰예비대라는 이름으로 군대나 다름없는 조직을 창설하고, 미군은 일본에서 한반도로 진군했다.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눈물을 글썽이던 헬로 아저씨는 이번에는 한국에 폭탄을 떨어트린다.

어쩌면 '나는 조선인'이라고 말했던 욧짱의 머리 위로도. 나에게 주먹밥을 나누어주었던 욧짱의 머리 위로.

(...)

다들 행복하게 살 생각이었다. 전쟁해서 행복하게 살 생각이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전쟁터에 가서 다른 누군가를 죽였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고자 다들 공장에서 무기를 만들고 먹고 싶은 음식도 먹지 못하고 참아야 했다.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도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불행해졌다.

마리는 당황한 가쓰시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행복해지지 못해도 괜찮아!"

약속을 지켜주었다. 나를 잊지 않아주었다. 이 다정한 사람을 위해, 내 행복을 위해 누군가를 불행하게 하고 싶지 않다. -338~342쪽

 

 

 

작가는 일본인으로서 마리의 입을 통해 일본인에게 묻고 있다.

'나 혼자 잘 살려고 전쟁을 한 게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다들 전쟁터에 나갔고 공습에 가족을 잃었다. 그런데 국가는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만 용사 대우를 해주고, 공습으로 죽은 이들에 대해선 아무런 구제도 해주지 않았다. 개죽음일 뿐이라면서...'


공습으로 가족 전부를 잃은 마리에게 이들의 죽음은 결코 '개죽음'이 아니다. 개죽음일수가 없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개죽음'이 아니라면, 이들의 죽음은 또한 뭘까?  

 

첫 선거로 선출된 의원들이 제19회 제국 의회를 열었고, 제국 헌법 개정안은 압도적인 다수로 가결되어 일본 헌법이 탄생했다.

그날 아침, 고다마 선생님은 교단에 서서 볼에 홍조를 띠고 말했다.

"이제 두 번 다시..."

혼잣말하듯 다시 한 번 반복하고는 칠판 쪽으로 빙글 몸을 돌아 아이들에게 등을 돌렸다. 선생님의 등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리는 가슴이 아팠다. 마리에게 두 번 다시 전쟁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두 번 다시 어머니와 아버지가 불에 타죽지 않음을 의미했다. 이제 두 번 다시. -237쪽

 

'유엔평화유지군'이라는 명목 하에 자위대의 행동 반경이 넓어지고 있다. 이제 일본은 아시아 1,2위를 다투는 군사력을 마음만 먹으면 자국 영토를 넘어 전 세계 어느 지역으로까지 파견할 수 있게 되었다. 평화헌법을 수정하려는 시도 역시 줄기차게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의 핵위협에 한국보다 더 호들갑을 떨면서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 역시 일본인들의 평화헌법 수호 의지를 약화시키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잘못된 역사 교육을 받은 일본의 전후 세대들은 침략국으로서의 일본, 전범국으로서의 일본이 아니라, 세계 최초의 피폭국이라는 일본만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의 잠재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집단적인 피해의식이 보복으로 표출되어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그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우리 역시 힘이 없어 짓밟혔던 가슴 아픈 역사일수록, 어리석게 되풀해했던 기막힌 역사일수록,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특히 잘못된 역사는 그 어떤 협상의 조건도 타협의 대상도 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도 그 어떤 책임 인정도 합당한 배상금 청구 노력도 없이, 그저 위로금 몇 푼 받고 위안부 문제를 없었던 걸로 하자며, 앞으로는 두번 다시 언급하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해준 한국인이 있다는 사실 역시 잊지 말자. 그 사람이 한때 우리를 대표하는 민선 대통령직을 수행했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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