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 그 사람 그 개 - 아련하고 기묘하며 때때로 쓸쓸함을 곱씹어야 하는 청록빛 이야기
펑젠밍 지음, 박지민 옮김 / 펄북스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중국현대소설을 읽었다.

수월하게 책장이 넘어갔고 이야기 자체가 전해주는  재미와 감동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소설이라고하기에는 지나치게 밋밋했고, 권선징악과 평면적인 등장인물 및 일대기적 서사 등등 고대소설의 특징이 너무 많이 들어나 있었다. 


 

아홉 편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가난하지만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늙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복 3박4일이 꼬박 걸리는 산골마을의 우편배달부로 나선 젊은 아들('그산 그사람 그개')의 이야기는 그 명성 그대로 빼어난 서정성이 돋보였다.  하지만 가난의 대물림이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자연스럽게 수용되는건 아닌지... 

 


 

아아....! 수십 년간 산과 길, 강과 밭 사이의 길을 홀로 걸었다. 개와 우편물 포대, 적막감, 외로움, 고통과 더불어 반평생을 보냈다. 그동안의 쓰라림과 아픔이 지금 느끼는 달콤한 감정에 순식간에 다 녹아버렸다. 아버지의 이 진한 눈물은 과거 힘들었던 나날들이 끝났다는 마침표이고, 이 익숙하던 모든 것과 이별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슬픔이기도 했다. (29쪽)


한편, 농촌과 도시의 빈부격차가 확연해지기 시작하던 시절, 생계를 위해 약간의 술수를 부려 강이나 낚시터에서 물고기를 낚는 쉬허셩이나('낚시를 끊다')  할아버지의 명성(?)을 이용하여 재주좋게 돈벌이에 나선 손녀딸의 이야기('재주')는 '도덕성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돈을 좇을 것인가'하는 문제를 해학적으로 다루었다. 나는 욕심부리지 않고 먹고 살 수 있을만큼만 물고기를 잡는 쉬허셩보다 비록 할아버지의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식음을 전폐하고 하루종일 울었다는 손녀딸('마오쉔메이')의 모습이 훨씬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이 밖에도, 잠이 유난히 많은 집안 내력 때문에 출세길이 막혀버린 것도 모자라 심지어 단명하고마는 이야기('잠')와 뱀이 유난히 많은 고장에서 뱀과 공생하던 마을 사람들이 도시에 내다팔기위해 무분별하게 뱀을 포획했다가 다시 뱀양식을 하게 된 사연('뱀과 이웃으로 살기')등은 어이없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것이 바로 도시화와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한 80~90년대 중국인이 처한 현실이자 60~70년대 우리의 모습이었음을 떠올리면 이내 서글퍼진다.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충돌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전통과 현실의 충돌이야말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굴리는 원동력이다.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는 현재란, 미래없는 과거의 연장일 뿐이다.


하지만 개개인의 삶은 이런 충돌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진화와 역사는 유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해될 수 있을 뿐, 인간도 동물도 개체로서는 환경의 작은 변화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힘겨워한다. 이처럼 개체는 한없이 취약하지만 집단 전체의 생명력은 끈질기게 이어진다. '백성' '민중' '민초'등등으로 불리우며, 단 한번도 주인공이었던 적은 없지만 역사라는 무대에서 영원히 퇴장하지 않는 배역이기도 하다. 



 

지은이 펑젠밍은 신중국 수립 이후인 1953년에 태어났다.

무산계급혁명도 항일투쟁도 겪지 않았지만, 60년대 대기근 속에서 살아남았고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십대와 이십대를 보냈으며, 그뒤 개혁개방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구가하는 중국 대륙의 한복판을 지나왔다. 마치 그의 작품「민초」의 주인공처럼...



 

증조부는 여든을 넘겨 살다가 1970년대 말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가 사는 청텐(長田)같은 작은 마을에는 증조부와 비슷한 연령대 사람들 중에서 죽을 때까지 현(縣)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현을 벗어나 더 큰 도시에 가본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증조부는 삼십 세 즈음 한커우(漢口), 난징, 상하이 등지에서 일을 벌였다. 같은 후난 성에 있는 웨양, 창사는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했다.

그런데 이렇게 역동적인 삶을 살았던 증조부는 문맹이었다.

글도 모르는 사람이 그렇게 폐쇄적이고 원시적이고,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시대에 세상을 누볐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봐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의 일생은 분명 놀라운 경험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증조부의 입은 꽉 닫은 병뚜껑처럼 열리지 않았다. (200쪽)


화자의 증조부는 19세기 후반에 태어나 청나라의 멸망과 혼란스러웠던 민국시대를 살아온 인물이다. 황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신분제도의 틀 안에 갇혀 살던 시대에 소위 대처로 나가 장사로 엄청난 부를 일궜지만, 전쟁의 와중에 그 많던 은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빈털털이로 고향에 안착한다. 그렇지만 그 덕분에 악질 지주/자본가로 내몰려 처형당하는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힘도 빽도 없는 촌부(村夫)가 중국의 50~60년대를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면포를 다 팔고 나면 증조부는 지팡이를 짚고 한집 한집 찾아가 친구들을 만났다. 그럴 때면 집집이 밥을 먹고 가라고 청했고, 증조부는 당신보다 나이가 많은 노인이나 어린 아이들에게 빼놓지 않고 약간의 돈을 쥐여주었다. 이번에 면포를 팔아 번 돈으로 당신이 마실 술값 정도라도 남길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것이리라. 증조부는 장사할 때 사람들에게 언제나 웃는 얼굴로 대했는데, 집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집에 있을 때면 증조부는 자주 긴 한숨을 내쉬거나 미간을 찌푸리곤 했다. (232쪽)


사회주의 계획경제시대에 개인의 상(商)행위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의 증조부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무릅쓴다. 그 옛날 젊은 시절, 이곳저곳을 떠돌며 보따리 장사를 하던 것처럼... 약간의 이익을 보면 그뿐 더이상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것처럼...


제목 그대로 '민초'의 삶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증조부가 떠난 지 삼십 년이 넘었다. 나는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매년 무덤에 가서 그분을 만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증조부는 내게 가장 먼저는 친구였고, 그다음으로 가족이었다. 친구와 가족으로 증조부는 한 번도 내게 과도한 바람이나 요구를 말한 적도, 사람의 도리가 어때야 한다는 둥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 적도 없었다. 증조부도 나를 친구로 여겼다. 증조부는 돌아가실 때 내게 은전 하나를 남겼다. 앞에 위안스카이의 얼굴이 새겨진 것으로 그분이 내게 남긴 유일한 유산이다.

증조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가족 중 누군가 돈 빌려 간 사람이 없는지 몇 번이나 물어보았다고 한다. 증조부가 한창 잘나갔을 때 창톈 일대에서 그의 돈을 빌린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증조부가 건재할 때는 당신이 아직 살아있는데 그런 일은 물어 무엇하느냐며 집안사람들 누구도 거기에 관해 언급하지 못하게 했다. 집안  사람들은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에는 증조부가 마음속의 장부를 말하고 가리라 여겼다. 증조부 성격상 글로 적어둘 리는 없고 마음속에 적어 두었을 것이다. (...)


증조부는 결국 가족 누구에게도 마음속에 수십 년간 담아 둔 장부를 말하지 않았다. 아마 당신 자손들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묵은 빚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증조부는 갚을 능력이 되면 분명 갚았을 것이고, 갚지 못했다면 분명 갚지 못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또 못 갚은 이유에 대해 따져 물어 사람들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증조부도 물론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능력이 돼도 모른 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 일대에서 자신의 돈을 빌려 간 사람 중에서 해방 후에 자신보다 훨씬 더 잘살고 있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증조부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234~235쪽)


 

나는 이 작품을 두번 읽었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입으로 나즈막히 낭독을 하고 있었다.


성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일대기였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없고, 나빴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주인공이 아니었지만 무대의 한가운데를 지나가야만 했고, 또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의지도 대단한 인생 철학도 없었지만, 끝까지 살아냈고 끝까지 침묵했으며, 무엇보다도 마음의 빚을 스스로 안고 떠났다.

  


 

나는 이 작품을 읽기 전, 힘겨웠던 과거를 소환하여 고단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솜사탕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했고, 비슷한 주제와 이야기 구성으로 끊임없이 자가복제된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다 읽고나선, 꼭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아졌다.



더 나아가, 나는 중국 소설은 따분하거나 억지스럽거나 아니면 정치적인 색깔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거칠고 세련되지 못하며 과장되고 허풍스러울 뿐만 아니라,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발전하면서도 이상하게 과거지향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을 읽고나선, 꼭 그런 식으로만 생각하고 싶지는 않아졌다.




 

나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꼭 받아내야할 빚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고나선, 꼭 그런 식으로만 생각하고 싶지는 않아졌다.


정말, 꼭 그런 식으로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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