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선, 그녀는 시인이다.

말하자면 이런 시를 쓰는,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

그녀의 시 <서시>중 일부다.

'서시(序詩)'란 글자 그대로 책의 서문(序文) 처럼 시(詩)들의 앞에 붙여진 시다. 그래서 시인의 <서시>는 종종 그의 작품 세계 전체와 인생관을 대변하는 것으로 읽힌다. 윤동주의 <서시>처럼...


그녀는, 이 작품에 <운명> 대신 <서시>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녀에게 운명은 무엇일까?

글쓰기일까?

그런데, 말이 필요없다고 한다.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에 집착했고... 무엇에 매달렸는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지 않느냐고 되묻고 있다.


 

그녀의 작품 읽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 반.드.시.


..............................................

 

 


한 남자가 있다.

열일곱 살때 독일로 이민을 갔고, 17년 뒤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십대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마흔정도 되면 그의 세계는 완전히 어둠 속에 잠길 것이다.  

잘 보지 못하는 그는, 희랍어를 가르친다.


 

한 여자가 있다.

열일곱 살때 처음으로 말을 잃었는데, 친엄마가 그녀의 출생을 원치 않았다는 걸 제외하곤 특별한 발병 원인은 모른다. 

그녀는 이혼 소송 과정에서 일곱살짜리 아들에 대한 양육권을 잃은 후, 다시 말을 잃었다.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그녀가, 희랍어를 배운다.


 

문법 규칙이 너무 까다로워서 오히려 놀랍도록 정교하고 간명했던 언어...

플라톤과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구사했던 언어...

문장으로만 존재할 뿐, 더이상 음성으로 소통할 수 없는 언어...

그리스 문명과 함께 이미 과거 속으로 사라져 버린 언어...


빛을 잃어가는 남자의 고독과 말을 잃어가는 여자의 침묵이 이 사멸한 언어를 통해 만난다.



 

  

 

그녀는 그의 옆얼굴을 본다. 흔들리는 그의 눈길이 가 닿아 있는 아스팔트의 어둠을 본다.

안경을 끼지 않은 그의 얼굴은 낯설어 보인다. 짐작보다 큰 눈, 공포와 당혹감을 숨기려 애쓰는

표정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다치지 않은 그의 왼손을 끌어다 잡는다. 숨을 들이쉬고, 떨리는 검지손가락 끝으로 그의 손바닥에 또박또박 쓴다. (137쪽)

 

먼저

병원으로

가요.

 

 

 

 
때론, 말이 필요없는 순간들이 있다.

아니, 말을 하면 할수록 하고자하는 그 '말'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분명, 말이 가닿을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로써 표현되어질 수 없을 때, 외면하거나 포기한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 앞에서 우리가 기껏 취할 수 있는 건 철저한 타자로서의 감상, 즉 연민뿐이다.



 

'많이 아프고 힘들겠구나...'

'그렇지만 나도 어떻게 해줄 순 없어.' 

'이건 내 잘못도 내 책임도 아니란다...'

'너를 그런 운명속으로 던져넣은 신에게 물어보렴.'


 

 

이 세계에는 악과 고통이 있고, 거기 희생되는 무고한 사람들이 있다.

신이 선하지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없다면 그는 무능한 존재이다.

신이 선하지 않고 다만 전능하며 그것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는 악한 존재이다.

신이 선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다면 그를 신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러므로 선하고 전능한 신이란 성립 불가능한 오류다. (43쪽)

 



남자가 독일에서 사랑했던 여자에게 이렇게 말하자, 여자는 화를 내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렇다면 나의 신은 선하고 슬퍼하는 신이야. 그런 바보같은 논증 따위에 매력을 느낀다면, 어느 날 갑자기 너 자신이 성립 불가능한 오류가 되어버리고 말걸.(43쪽)'


여자의 예언은 맞았다.

그는 성립 불가능한 오류가 되었다. 

다만 여자의 예측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는 선하고 유능한 인간이 되었다.

 


 


                                                                                                                                                         

이 세계에는 악과 고통이 있고, 거기 희생되는 무고한 사람들이 있다.

인간이 선하지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없다면 인간은 무능한 존재이다.

인간이 선하지 않고 다만 유능하며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인간은 악한 존재이다.

인간이 선하지도 유능하지도 않다면 인간을 만든 신의 실수다.

그러므로 선하지도 유능하지도 않은 인간이란 성립 불가능한 오류다.


또한, 그녀는 작가다.

말하자면 이런 작품을 쓴,


부당하게 잊혀지는 명작은 있어도 과분하게 기억되는 명작은 없다고 했던가.


감각적으로 언어를 다루는 시인들은 많다.

철학적으로 세상을 분석하고 그려내는 작가들 역시 적지 않다. 

그러나 감각적이되 감상적이지 않고,

철학적으로 사유하되 문학적 감수성을 잃지 않는 작가는 극히 드물다.

특히, 타인의 고통을 내재화할 줄 아는 감수성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 중에서도 특별히 선하면서도 유능해서 성립 불가능한 신의 오류처럼 비춰진다. 


그녀는 이런 작가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아프다.

나도 며칠 앓았다.


그녀의 또다른 시 <괜찮아>를 읽으면, 이 통증이 조금은 가라앉을까...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


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