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 다이어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캐롤 쉴즈 지음, 한기찬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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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끔씩 산다는 게 지겨워질 때가 있다.

이때의 지겨움이란, 단조로운 일상으로부터 새어나오는 권태감이라기보다는 '모든 생(生)은 결국 죽음(死)으로 마무리된다' 는 너무도 평범하고 단순한 진리에 직면했을 때의 허무감에서 비롯된다.  


특별한 운명과 사명을 부여받고 태어났을 거라는 믿음이나 남과 나를 명확하게 구분지어줄거라는 나만의 독특한 개성에 대한 확신따위는 새벽녘 별빛처럼 서서히 흐릿해진다. 나란 존재는 어느 소설의 제목처럼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에 불과한, 유일무이(唯一無二)하지만 그외의 다른 의미는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다.



 

캐롤 쉴즈 아니 데이지 굿윌 역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나로서는 단 한번도 소멸된 시간을 이해해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처럼 계절이 부풀어올랐다가 사그라지는 것이나, 한 해가 끝나고 또 한 해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 인간들이 본질적으로 무력하다는 것과, 우리 인생의 태반이 낭비되고 불투명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어떻게 그리 많은 시간에 그렇게 아무 일도 없을 수 있을까? 어떻게 그 시간이 깨끗이 사라질 수 있을까? 잘못 놓인 채 잊히고 만 달, 주일, 나날, 시간들은 물론, 우리의 육신이 절정에 이르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만큼 온갖 감정의 맹공격을 받도록 되어 있는 인생의 값진 시간들까지.  -53쪽



 

1905년 어느 여름. 

캐나다 위니펙 근교 매니포바라는 작은 마을에서 여자 아이가 태어난다. 아이의 엄마(머시 스톤)는 채석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올 남편(카일러 굿윌)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다가 온몸이 땅밑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현기증을 느끼면서 거실 바닥에 쓰러진 후, 두번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유대인 방문 외판원(스쿠타리라)의 손에 이끌려 현장에 도착한 이웃 여자(클래런틴 플렛)가 아이에게 '데이지'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거두워 키운다. 데이지가 열한 살 때 플렛 부인이 자전거에 부딪쳐 갑자기 사망하자, 카일러 굿윌은 어린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주한다. 


롱아일랜드 여자대학교를 졸업한 데이지는 스물한 살 때 결혼을 하지만 신혼여행 중 신랑이 추락사하고 만다. 그뒤 십여 년을 미망인으로 살다가 서른 한 살 때, 스물 두살 연상인 플렛 부인의 큰아들과 결혼을 하고 삼남매를 낳아 키운다.  이십여 년의 결혼생활 뒤, 남편이 먼저 떠나고 다시 혼자가 된 데이지는 소질인 정원가꾸기에 관한 컬럼을 잡지에 쓰면서 지내다가 잡지사 편집장과 로맨스에 빠지기도 하고 지독한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지만, 그녀의 삶은 전반적으로 평탄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어느날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은 잦은 혼수상태 사이에 갑자기 찾아왔다. 그녀는 여전히 과거를 더듬으며, 마치 하등동물이 산소를 들이마시듯 자신의 삶에서 실제 있었던 일과 상상으로 그려낸 일들을 호흡하며, 긴 터널로 들어서듯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순간 일종의 탈진 상태가(또는 아마도 권태가)엄습했는데, 그 순간 색체와 윤곽선이 급속히 흐릿해지면서 옛날 일을 환기시켜주던 작동이 멈춰버렸다. 그 대신 변화무쌍한 슬라이드 영상들이 눈꺼풀에 아로새겨졌는데, 그것은 지금까지처럼 과거의 모습이 아니라 미래의 모습을, 바로 자신의 죽음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이 죽음을 몸으로 숨 쉬게 되고, 나중에는 사랑하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도 있었다. -475쪽

 

500여 페이지 중 어느 한곳, 빠르지도 느리지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데이지 굿윌이라는 한 여성의 삶을 1인칭으로 기술하는가 하면, 그녀와 연관이 있는 이들의 삶이 3인칭으로 펼쳐진다.


무려 100여 년이 훨씬 넘는 시간과 유럽과 북미대륙을 잇는 공간적 배경에 4대를 아우르는 등장인물들까지 놓고 본다면, 이 소설은 분명 대하소설급에 속한다. 하지만 대하소설이라고하기엔 '사건'을 너무 등한(?)시 한다. 데이지 굿윌의 비극적인 탄생이나 첫남편의 사망 사건 하나만 보더라도 웬만한 장편소설 한편이 되고도 남을 분량이건만, 그저 몇 페이지에 걸쳐 짧게 언급될 뿐이다. 다른 사건들에 비해 더 극적이지도 더 특별하지도 않다는 듯, 그저 무덤덤하게...



 

모든 인생에는 거의 읽히지 않는, 분명코 큰 소리로 읽히지 않는 그런 페이지가 있게 마련이다. -159쪽


이 세상 모든 물줄기가 바다로 향하듯, 이 작품의 모든 문장들은 이 단 한문장으로 수렴된다고 할 수 있다.


캐롤 쉴즈는 데이지의 생애 전반에 걸쳐 아주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들만큼은 큰 소리로 읽혀지지 않도록 남겨두었다.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만큼 너무 사소하고 평범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무엇으로도 표현되어질 수 없을만큼 너무 극적이고 특별하고 소중해서...

 


기록은 결과적으로 망각에 대한 저항이지만, 때론 잊혀지고 정리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말과 글로써 표현되어진 순간, 더이상 얽매이지 않게 된다. 이 말은, 역으로 잊고싶지않거나 잊을 수 없는 것들은 어떠한 형식으로든 표현되어질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그저, 탄생(生)과 죽음(死) 사이에 인생(人)이라는 게 있다는 거...

인생은 때때로 목격되어지고 기록되어짐으로써 잊히고 이어지고 또다시 이어지고 잊히는 과정을 반복할 뿐이라는 거...

물론, 그중 어떤 페이지들은 한번 쓰여진 후 두번 다시 펼쳐지지 않을 테지만...


인생이란 끝없는 증언의 연속이게 마련이다. 그것이 사치스러운 것이든 부끄러운 것이든 간에, 우리의 상태는 목격될 필요가 있는 모양이다. 우리는 남들에게 관심받기를 원한다. 우리 자신의 추억은 너무도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이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최선의 이유이다. 다른 설명 다른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럴 경우에도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의식들, 탄생과 사랑, 죽음 같은 의식들은 누구에게든 그리고 소용이 있든 없든 확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얼마나 우연하고 일시적인 일인가? -64쪽

 


읽을 때는 너무 흥미롭고 재밌는데, 다 읽은 다음에는 너무나도 빠르게 기억의 저편으로 흘러가버리는 책들이 있다.

마치 스펙터클한 상업 영화 한편을 보고 나온 것처럼 (투자한 시간과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다시 보고싶지도 애써 떠올리지도 않게 된다. 문학 작품을 읽었다기보다는 계획적으로 잘 만들어진 (문학) 상품을 소비한 기분이다.


반면, 읽는 동안에는 특별한 감정의 동요가 없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은 다음에야 층층히 차오르는 충만감에 지그시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얹게 되는 책들이 있다. 이런 책일수록 독자의 평가를 불허한다. 처음부터 독자를 위해 쓰여진 게 아니라 작가 자신을 위해 쓰여졌기 때문이다. 



캐롤 쉴즈의『스톤 다이어리』가 바로 이런 작품이다.

나는 독자가 아니라 '스톤 다이어리'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또다른 '스톤'일 뿐임을 절감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그녀의 과거이자 우리의 미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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