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생활 풍경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모스 오즈 지음, 최정수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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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간벽지나 농촌이라기보다는 대도시에서 차로 한 두시간 거리에 있는 소도시나 그 인근에 자리한 전원 마을...

어느 나라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지역에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곳...


초기 유대인 정착자들이 세운 마을 중 하나인 텔일란은 비록 이제는 쇠락의 길로 들어섰지만 여전히 범접할 수 없는 기품으로 가득 차 있다. 비록 아름다운 풍광 덕분에 속속 들어서는 호화별장과 세련된 빌딩들이 마을의 옛모습을 조금씩 바꾸어 놓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마을 사람들 역시 개발붐을 타고 뛰어오른 땅값에 남몰래 기뻐할지언정 이를 겉으로 들어내는 건 부끄럽게 여길만큼의 교양 정도는 갖추었다.  



 

이곳에는 한때 국회의원이었던 페사크 케뎀이 생의 말년을 맞아 고등학교 문학 교사인 딸 라헬과 함께 살아간다. 미망인인 라헬은 사십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력적인 여성으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랍인 청년을 고용하여 집안일을 맡긴다. 그녀는  안정된 생활과 고루한 아버지때문에 종종 답답해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땅파기>-



 

한편, 라헬의 친구이자 마을의 유일한 여자 의사인 길리 스타이너는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조카를 기다린다.  길리는 바쁜 친언니의 부탁으로 어린 조카를 돌봐주곤 했지만, 이제는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난 조카가 여전히 이모인 자신을 신뢰하고 좋아하는지 불안해하면서도 나중에 재산을 조카에게 물려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친척>-



 

베니 아브니는 텔일란 마을의 면장이다.

구부정한 어깨에 단정치 못한 옷차림이지만 정직한 일처리로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다. 게다가 그는 대학시절에 만나 결혼한 아내와 쌍둥이 딸을 둔, 모범적인 가장이다. 마을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아내 나바는 매일 점심시간이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베니의 점심식사를 준비해준다. 한마디로 그는 남부러울 게 없는 남자였다. 도자기를 만드는 고상한 취미를 갖고 있는 아내가 어느날 쪽지 한 장만을 남기고 사라지기 전까지는...-<기다리기>- 



 

올해 열일곱살인 코비 에즈는 식료품 가게 아들로 연상의 이혼녀인 아다를 남몰래 사랑한다. 코비는 자신보다 십 여년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뚱뚱한 트레일러 기사가 아다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사랑은 절대적이고 순수하다. 그러나 그만큼 치명적이고 취약하다. -<낯선 사람들>-



 

이혼한 아내와 딸로부터 '홀로서기'를 요구받은 젤리크...

그는 퇴직과 동시에 고향 마을로 내려와 노모를 모시고 살지만, 병든 어머니가 어서 빨리 돌아가셔서 자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길 남몰래 고대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을 품고 있는 자기 자신을 역겨워한다.

그러던 어느날, 집안의 먼 친척이라고 주장하면서 어머니를 복지시설에 보내고 함께 유산을 물려받자는 법률회사 직원이 나타난다. -<상속자>-



 

달리아와 아브라함 부부는 금요일 저녁이면 마을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노래부르기를 한다. 소박한 연주와 합창은 종종 자정까지 이어지며 부부는 휴식시간에 근사한 저녁식사를 대접한다. 단순한 취미생활이라고 하기엔 '노래부르기'에 너무 열심히 매달리는 부부... -<노래하기>




말 그대로, '시골 생활 풍경'이다.


아모스 오즈의 『시골 생활 풍경』은 모두 여덟편의 단편들이 담겨 있으며, 이중 일곱 편이 텔일란이라는 가상의 전원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 전개상 작품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한 작품의 주인공이 다른 작품에 조연으로 등장해서 마치 한편의 장편소설처럼 읽힌다. 


꾸며낸 소설이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고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등장인물들에겐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도 않고, 어느날 갑자기 삶이 산산조각 나지도 않는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엔 말이다.



삶이란, 이런 게 아니던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아무 일도 없는 거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아무일도 없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닌...



 

나는 이 작품집을 읽는 동안에는 특별한 인상을 받지 못했더랬다.

오히려 다 읽고 난 후, 며칠이 지나서 발췌한 내용을 옮겨 적다가 소름이 돋을 만큼 깜짝 놀라고 말았다.



노년의 불안과 체념...

중년의 고독과 상실...

그리고, 십대의 욕망과 두려움까지...


아모스 오즈는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일상 속에 스며든 미세한 정신적 균열을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는 게 아닌가.


 

'명불허전'이다.

아모스 오즈를 두고,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일순위로 거론되는 작가라는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다만, 소설읽기의 기쁨을 누리고 싶다면...

이 작품은, 현명한 선택이 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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