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와디의 아이들 - 성장과 발전의 인간적 대가에 대하여
캐서린 부 지음, 강수정 옮김 / 반비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이틀에 걸쳐 읽고 다시 닷새가 흘렀건만...

읽혀지기를 기다리는 책들은 한가득 쌓여있건만...

새로운 책을 읽을 엄두가 도무지 나질 않는다.


'예상외로 좋았던 책'이라는 리뷰 문장 덕분(?)에 어느 정도 '예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예상'마저 훨씬 뛰어넘을 만큼 좋았던 책이다. 


끝까지 소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포기할 수 없을 만큼 이야기는 극적이고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감정이 절제된 문장들은 투명한 바람처럼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캐서린 부는 인도 뭄바이의 안나와디라는 빈민촌에서 2007년11월부터 2011년 3월까지 머물면서 그들의 삶을 지켜보고 기록한다. 그녀는 관찰대상에 대한 자기 연민과 기만에 빠지지 않기위해 노력하면서 최대한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려했고, 완벽하게 성공했다.



 

#-1


북부 농촌 지역에서 흘러들어온 무슬림이자 여성인 아샤는 약자가 좀더 약한 약자를 착취하는게 세상의 질서임을 일찌감치 파악한 후, 부패한 민주주의에서 살아남는 길을 택한다.



아샤는 자녀들에게 말했다. "높은 사람들은 우리가 가난하니까 세상을 이해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아샤는 많은 걸 이해했다. 그녀는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허상의 게임, 가난과 질병, 문맹과 아동 노동 같은 인도의 해묵은 문제들을 공격적으로 처리하는 그 게임의 참가자였다. (...)

서구와 인도의 일부 엘리트들은 부패라는 말을 순수하게 부정적인 의미로 이해했다. 그건 현대화와 세계화를 향한 인도의 야심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부패로 아주 많은 기회가 약탈되는 나라에서 부패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몇 안 되는 순수한 기회였다. -67쪽


#-2


열한 살이 넘은 남자 아이들은 다루기 어렵다는 이유로 고아원에서 쫓겨났지만, 수닐은 자신을 쫓아낸 수녀를 원망하기보다는 영어로 100까지 셀 수 있는 것과 세계 지도에서 인도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다른 소년들은 이 옥상에 올라와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걸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작으냐며 신기해했다. 그런데 수닐은 위에서 보면 왠지 사람들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여기서는 사람들을 마음껏 쳐다볼 수 있는데, 지상에서는 그게 가능하지 않았다. 지상에서 그렇게 빤히 쳐다봤다간 시선을 들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296쪽


#-3


미나는 툭하면 남자 가족들에게 맞았고 지참금을 최대한 많이 받기위해 수시로 선을 봤지만 그 무엇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다. 그녀의 비극은 여성이라는 선천적인 조건과 가난이라는 후천적인 조건이 만나면 사람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절망할 수 있는지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여자들이 관습을 거부하며 열정적으로 산다는 그 새로운 인도에 갈 수 있는 건지, 미나는 알 길이 없었다. 대학을 나온 만주라면 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만주 말고는 대학 나온 여자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히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고 미린다 광고를 보면서 미나는 이따금 자신이 껍데기뿐인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276쪽


#-4


스물살 청년인 압둘은 넝마주이들로부터 폐품를 사들여 중간상에게 넘기는 일을 한다. 그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다시피하지만 이웃 여자의 어처구니 없는 분노로 자신의 노동과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물과 얼음은 성분이 같았다. 압둘은 사람도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압둘 자신도 경찰과 특수 행정관, 칼루의 사인을 조작한 시체 안치소의 의사처럼 냉소적이거나 부패한 사람들과 근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몰랐다. 재활용품을 분류하듯 실질적인 성분으로만 인류을 분류한다면 거대한 하나의 더미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거기에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얼음은 원래의 성분인 물과 다르며, 압둘이 보기엔 물보다 나았다.


압둘도 자신이 이루어진 성분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뭄바이의 더러운 물 속에서 얼음이 되고 싶었다. 이상을 갖고 싶었다. 이기적인 이유에서 발로한 것이겠지만 그가 바라는 가장 큰 이상은 정의 실현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었다. -323쪽


신이 주사위를 던질 때, 그저 운이 조금 나빴을 뿐 특별히 악하지도 특별히 선하지도 않은 사람들...


그들 역시 우리처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삶에 눈물 흘리는 건 타인의 삶을 한낱 구경거리로 삼는 일밖에는 되지 않으리라.  아픈 환자에게는 함께 울어줄 정 많은 이웃보다는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의사가 더 많은 도움이 되는 법이다. 


 

캐서린 부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녀는 빈곤을 특수한 지역과 계층에 국한된 일시적인 현상이나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녀는 빈곤을 바라보는 시야를 이 세계를 이루고 움직이는 요인과 인간 본성의 내면으로까지 깊숙히 확대시킨다.

 


 

미국과 영국의 굵직한 은행들이 파산하면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아시아를 주목하고 있었다. 싱가포르와 상하이가 번영하는 동안 뭄바이가 누린 이윤은 그에 못 미쳤다. 이곳에도 젊고 저렴하면서 숙련된 노동자들이 넘쳐났지만 인도의 금융 수도인 이 도시는 슬러바이라고 불릴 만큼 빈민촌이 많다는 사실에서 기회비용이 발생했다.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뭄바이 광역 생활권 주민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임시 주택에 살았다. 뭄바이 공항을 이용하는 글로벌 기업의 임원 중에는 빈민촌을 혐오스럽게 보는 사람도 있고 동정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풍경을 제 기능을 수행하며 적절히 관리되는 도시의 증거로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86쪽

 

무력한 개인들은 자신들의 결핍을 똑같이 무력한 다른 개인의 탓으로 돌렸다. 그러다가 가끔은 서로를 무너뜨리려고 안간힘을 썼고, 가끔은 그 과정에서 파티마처럼 스스로 무너졌다. 아샤처럼 운이 좋은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일생일대의 기회를 가로채서 팔자를 고쳤다.

뭄바이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다른 곳에도 만연했다. 전 세계로 무대를 확대한 시장 자본주의 시대에도 희망과 불만은 협소한 지역안에서 옹색하게 이해됐고, 공통된 고통에 대해서는 둔감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연대하지 않았다. 일시적이고 알량한 이익 앞에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리고 하류 도시의 이런 투쟁은 전반적인 사회구조에 희미한 파장을 일으키다 잦아들었다. 투쟁은 부자 동네로 진입하는 입구에서 어쩌다 소동을 일으킬 뿐, 그곳에 균열을 야기하지는 않았다. 정치인들은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 무시했고,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불평등한 도시는 비교적 평화로운 상태를 그럭저럭 이어갔다. -348~349쪽



 

이 책은,

인도 사회의 부패와 이기적인 개개인을 탓하기에 앞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놀랍게도,

슬픈 이야기지만 이상하게 희망적이다. 


압둘처럼 나를 이루는 성분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