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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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나는 천천히 거실로 걸어나와 물 한잔을 마셨다.

'켁-켁--'

발작적으로 기침이 쏟아졌다.

잠시후, 고통이 잠잠해지자 눈꼬리에 물방울이 맺혔다.  


그짧은 순간, 나는 감히 열일곱 어린 나이에 바다로 몸을 던진 아이의 고통을 떠올렸던가.    


'아니, 아닐 것이다. 차마 그럴 순 없다.'


산자는 죽은자의 고통을 영원히 알 수 없다.

살아남은 자에게 허락된 거라곤 그저 영원히 죽은자를 기리는 일 뿐이다. 


뜨고지는 별처럼,

피고지는 꽃처럼,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처럼,

그렇게, 영원히...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2005년을 기점으로 너는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아졌지. 그럼에도 네가 영원히 내 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 안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네가 나왔다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경험인지 네게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있는 입술이 내게는 없네. -228쪽 


'내 엄마는 누구일까?' 


미국으로 입양된 카멜라는 엄마의 흔적을 찾고자 한국으로 건너온다. 

선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점점히 흩어진 과거들을 찾아나서는 일은 마치 탐정의 그것과 흡사했다.  



 

한국의 남쪽 해안 지방에서만 자생한다는 동백꽃과 같은 이름을 가진 카멜라...

그녀는 사과같기도 하고 홍등같기도 한, 그 붉은 꽃들이 교정 가득 떨어져 있는 어느 여학교에서 엄마가 남긴 단 한장의 사진 속 배경을 마주한다.



 

나는 교장실에서 나와 복도 끝의 계단을 향해 걸었다. 두 눈에서 연민의 눈물이 쏟아졌다. 잘못 기재된 서류만 믿고, 잘못된 곳에 가서 엄마를 찾으려고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오빠라는 남자의 주장 역시 잘못 배달된 편지 속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나는 거기, 진남, 오랫동안 내가 태어난 고향이라고 믿었던 항구 도시에서는 절대로 태어날 수가 없는, 불미스러운 존재라 어딘가 다른 곳, 그러니까 서울이나 부산처럼 악과 불의가 판치는 대도시, 아니면 한국의 다른 어느 곳, 거기가 어디든, 아무튼 어딘가 다른 곳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어쩌면 나란 인간의 존재 자체가 애당초 잘못된 것이라고. 그러니까 계단을 다 내려가 본관 건물 앞까지 가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 뒤, 그 붉은 벽돌을 향해 돌아서다가, 바닥에 떨어진 그 꽃봉오리들을 보기 전까지는, 그제야 나는 졸업 앨범의 표지에 그려진 꽃이 사진속 발치에 떨어진 꽃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무덤덤한 깨달음 앞에 어떤 나무가 붉은 것들을 잔뜩 매달고 서 있었다. 사과라고 해도, 어쩌면 홍등이라고도 부를 만한, 붉은 것들. 꽃들. 동백들. -53~54쪽

 

카멜라의 친엄마(지은)는 미혼모였고 어린 딸을 가슴에 꼭 안고 동백나무 아래서 찍은 사진 한장을 남긴 채, 바닷속으로 몸을 던졌다.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카멜라)를 가졌고 낳았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고, 각자 자신의 입장에 따라 지은이의 진심을 이해(오해)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각자 한마디씩 했고...

그 말의 조각들은 소문이 되었으며..

소문은 바람을 타고 한없이 떠돌았다...


 

무심히 내뱉은 한마디가 혹은 악의를 품고 꾸며낸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혹은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을수도 있다는 자각은 언제나 너무 뒤늦게 찾아온다. 그래서 똑같은 실수는 반복된다.



 

왜 인생은 이다지도 짧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건 모두에게 인생은 한 번뿐이기 때문이겠지. 처음부터 제대로 산다면 인생은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단번에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는, 그게 제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는 모두 결정적이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우리는 그런 결정적인 실수를 수없이 저지른다는 걸 이제는 잘 알겠다. 그러니 한 번의 삶은 너무나 부족하다. 세 번쯤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의 삶은 살아보지 않은 삶이나 마찬가지다. -285쪽


'이제, 카멜라는 어떻게 해야하나?'

찾으려는 엄마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데...


한국을 떠났던 카멜라를 다시 부른 건, 다름아닌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엄마였다. 아니, 엄마와 카멜라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넓고 깊은, 그 '바다'였다.




마찬가지로 열일곱 살에 미혼모가 된 뒤, 바다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녀를 생각해야 하는 건 나였다. 나라는 존재, 내 인생. 엄마가 나를 낳아서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면, 이제 내가 엄마를 생각해서 엄마를 존재할 수 있게 해야만 했다. (...)

그 소녀가 가장 간절하게 생각하는 건 바로 나일 것이라는. 바다 안에서, 죽음 속에서. 그렇다면 그 소녀를 가장 간절하게 생각해야만 하는 사람 역시 나여야만 한다는. 거기에는 어떤 변명도 불가능했다. 나는 무조건 그 소녀를 생각해야만 했다. 그건 의무와도 같았다. 달마다 꼬박꼬박 집세를 내듯이, 제한 속도를 반드시 준수하듯이 나는 그 소녀를 '꼬박꼬박', '반드시' 생각해야만 했다. 마치 문집에 실린 시가 그 소녀의 한때를 기억하고 있듯이. 그 시의 제목은「밤과 낮」이었다.  -117~119쪽


불행이란 태양과도 같아서 구름이나 달에 잠시 가려지는 일은 있을망정 이들의 삶에서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잊습니다. 이들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불행을 온몸으로 껴안을 때, 그 불행은 사라질 것입니다. 신의 위로가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그 길뿐입니다. (...)

중단된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끝까지 읽히기를 간절하게 원하는데, 그 프로젝트야말로 바로 그런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제 엄마를, 그녀의 고통을, 절망과 외로움을 받아들이기 위해 한 번 더 노력할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다음 행선지는 한국의 진남입니다. -148쪽



이제, 카멜라는 친모와 자기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심연을 건너간다.


....................



 

작년 이맘 때였으리라. 

시내 대형서점의 신간(?) 코너에서 이 작품을 처음 접한 나는 수첩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김연수 신간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  '입양아의 부모찾기(개인의 정체성 탐구?)'



 

 



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은 후, 나는 천천히 거실로 걸어나가 물 한잔을 마셨다.

그리고 사레에 걸려 '켁켁'거렸다. 

나의 오만함과 서투름에 기가 막혀 헛웃음을 치다가 그만........

(정말 쌤통이다)



이 작품은 '입양아의 부모찾기'나 '개인의 정체성 탐구'를 그리고자 한 것이 아니며, 부조리한 사회현상이나 현대인의 이기적 행태를 고발하고자 한 것도 아니고, 범인(혹은 '카멜라의 친아버지')을 찾아가는 추리탐정소설은 더더욱 아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실존과 절대 고독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깊디 깊은 그 '심연'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가로 놓여 있고, 상대에게 닿을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을 걸때 내 소설이 시작된다.'라는 저자의 말이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김연수 그는, '너'와 '나'의 이야기가 아닌, 너와 나 '사이'를 이야기할 줄 아는 작가다.

다시 말하면, 무게 잡지 않고도 실존 철학을 이야기할 줄 아는 작가다. 



 

이 작품을 다 읽은 후, 이 짧은 시를 떠올린 사람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니리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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