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노먼 F. 매클린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 좋으면 '좋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듯, 좋아하는 작품일수록 마음만 가득할 뿐 글이 되어 나오지 못한다. 


노먼 매클린의『흐르는 강물처럼』도 그중 하나다. 그동안 나는 이 작품에 대해 여러차례 쓰기를 시도했지만 번번히 미완(未完)으로 끝나고 말았다.


흰 화면은 어느새 몬태나주 협곡을 타고 흐르는 푸른 강물로 반짝이고, 키보드 위의 손가락들은 긴 곡선을 그리며 수면 위를 날아가는 플라이 낚시줄마냥 스르르 풀어지곤 했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 시도도 실패로 끝나버리거나, 아니면 형편없는 포스팅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부디 이해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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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관점에 따라, 이 작품은 인공 미끼를 사용하는 플라이 낚시 이야기이기도 하고, 몬태나주 서부의 빅 블랙풋 강가에 살았던 어느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했지만 끝내 배우지 못한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 집에서는 종교와 플라이 낚시를 가르는 분명한 경계가 없었다. 우리는 거대한 송어들이 태어난 여런 강줄기가 합류하는 몬태나 주 서부에 살았다.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는 또한 손수 플라이를 타잉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타잉을 가르친 플라이 낚시꾼이었다. 플라이 낚시꾼으로서 그는 예수의 열두 제자는 어부였다고 말했으며, 신도들은 내 동생과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갈릴리 바다에서 제일 가는 낚시꾼은 모두 플라이 낚시꾼이며 예수의 가장 사랑받는 제자 요한은 드라이 플라이 낚시꾼이라고 믿게 되었다. -19쪽


도끼질과 골프를 배우는 초보자가 세게 휘두르면 좋을 줄 알고 허공에서 쓸데없이 힘을 빼는 것처럼, 낚시 초보자도 자신의 결점을 알기 전까지는 낚싯대를 지나치게 뒤로 멀리 젖히려는 경향이 있다. 이럴 경우 플라이가 너무 뒤쪽으로 날아가 뒤에 있는 덤불에 박히거나 바위와 부딪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아버지는 낚시란 두 시 방향에서 끝나는 예술이라고 말하면서 종종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두 시보다는 열두 시 방향에 가깝게 휘둘러라." -25쪽


나는 세 살이나 위면서도 내기를 해도 좋은 나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 생각에 내기란 밀짚모자를 비스듬하게 쓴 어른들에게나 어울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가 처음 두 번 "순전히 재미로 푼돈 내기"를 제안했을 때, 혼란스럽고 당황했다. 세 번째 물어왔을 때는 화를 냈던 게 분명하다. 그 이후 그는 나한테 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으며, 돈 문제로 정말 고생할 때조차 푼돈도 빌리려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를 아주 조심스럽게 대해야 했다. 종종 그가 영락없는 어린애로 보일 때에도 그런 식으로 다룰 수는 없었다. 폴이 "나의 꼬마 남동생"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예술의 거장이었다. 그는 자기에게 충고나 경제적 지원이나 도움을 줄 형을 원하지 않았으며,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나는 그를 도울 수 없었다. -29쪽


 

형제나 자매간의 우애와 경쟁은 흔한 일이다.

화자인 노먼 역시 동생인 폴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어울리지만, 어느 순간 둘 사이엔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가 생긴다. 


자유분방하고 대범한 동생과 고지식하고 성실한 형...

이 둘 사이의 '차이'는 개개인의 성격이자 기질이요, 살아가는 방법을 결정했다. 



고향을 떠나 도시로 건너와 공부를 끝마친 형은 대학 교수가 되었고, 뛰어난 낚시꾼이었던 동생은 고향 몬태나에 남지만 그만 거액의 도박빚을 지고 만다. 



형은 종종 고향으로 내려가 동생과 함께 어린 시절처럼 낚시를 하지만 단 한번도 동생을 이기지 못한다. 그리고 동생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어렴풋이 느끼지만 더이상 묻지 않는다.


동생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노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형은 자신이 더이상 묻지 않음으로써 동생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버렸다는 걸 잘 안다.



"도움을 주기엔 너는 너무 젊고 나는 너무 늙었다. 산벚나무 젤리나 돈을 주는 행동으로....."

아버지가 계속 말했다.

"도움이란,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고 또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사람에게 나의 일부를 주는 걸 말하지."

그의 말은 오래된 설교투로 변해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돕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무엇을 줘야 좋을지 모르고, 어떤 부분은 주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 그런데 정말 절실히 필요한 그 부분을 상대방은 원하지 않을 때가 많아. 나아가 정말 도움이 될 그 부분을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할 때도 많고. 이건 읍내 부품 가게에서 '죄송합니다. 그 물건은 떨어졌습니다'하고 말하는 것과 같은 거야." -166~167쪽 


형인 노먼은 동생을 이해할 수 없었고, 동생인 폴 역시 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동생인 폴은 형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사랑한 반면, 형인 노먼은 동생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사랑하지 못했다. 



 

이제 이쯤해서 작가인 노먼 F. 매클린을 소개해야겠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동명 영화를 포함하여 작품이 널리 알려진 것에 비해 작가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전업 작가가 아니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평생 동안 마음 속에 담아 두고 있다가 말년에 속죄하는 심정으로 일기처럼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작품이 출간된 후 쏟아진 많은 관심과 영화로 만들자는 제의도 전부 거절하다가, 자신과 작품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모두 사망한 후엔 영화로 만들어도 좋다는 조건부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노먼은 어쩌면 영원히 묻고 가고 싶었을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함으로써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어도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있다'는 말을 꼭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삶이 방법이 아닌 방식 즉 태도이듯, 사랑 역시 방법이 아닌 방식 즉 자세라는 걸 절절히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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