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버트 제임스 월러 지음, 공경희 옮김 / 시공사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둘이 서로 사랑할 때,

린 여름 안에 있었습니다.   -김연수-



 

이 문장이 우연히 눈에 띄었을 때, 때마침 창밖에는 소나기가 지나가고 있었고...

내 마음속에선 오랫동안 가라앉아 있던 작품 한 편이 떠올랐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200여쪽 남짓한 비교적 짧은 소설인 이 작품은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져 더 유명해진 작품이다.


앞 유리창의 와이퍼가 빠르게 움직이는 자동차 조수석에서 한 중년 여성이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인 채, 빗속을 천천히 빠져 나가는 앞 차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장면을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으리라. 


작품의 배경 또한 8월. 여름의 한가운데다. 


'그래서였을까...?'


"둘이 서로 사랑할 때, 우린 여름 안에 있었습니다."라는 일견 평범해보이는 어느 작가의 한 문장에 이끌려, 읽고 있던 책마저 내던지고 이 작품을 서둘러 집어 들었던 이유였을까...?


  

1965년 8월의 어느 오후.

평범한 시골 농부의 아내 프란체스카는 길을 묻기 위해 집앞 진입로로 들어서는 차 한 대를 발견한다.

한편 프리랜서 사진작가인 로버트는 매디슨 카운티의 일곱 다리 중, 마지막 일곱번째 다리인 '로즈먼 다리'를 찾아 헤매다가 프란체스카의 집 마당으로 들어선다.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이내 사랑에 빠지지만 가정을 지키기 위해 프란체스카는 로버트를 떠나보내고 로버트 역시 그런 그녀의 입장을 존중하여 두 번 다시 연락을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생을 마감하게 되고 프란체스카 사후 그녀가 두 자녀에게 남긴 일기를 통해 두 사람의 이야기가 소설로 쓰여진다는 내용이다.


줄거리 자체만 놓고 본다면 진부하기 그지없은 중년의 로맨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어디 줄거리 뿐이랴.

로맨틱했던 영화와는 달리 문장으로 이루어진 소설 작품속 그 어디에도 내 시선을 끈 문장은 딱히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특별하다. 


한때의 사랑을 추억하면서도 그 사랑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옛사랑이 아니며,

매순간 품고 있는 현재 진행형 사랑이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조차도...


사람이란 무한히 변덕스럽고 한없이 연약한 존재라서 주고받지 않으면 금방 잊혀지고 멀어지는 법이다. 특히 사랑처럼 원초적인 감정일수록 더욱 그렇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는 사랑을 주고받지 않았으나 또한 서로를 사랑했다. 

상대방이 자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지 심지어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각자 상대방을 마음속 깊이 새기면서 오롯이 추억하고 사랑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이런 사랑을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실패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남편과 자녀에게 솔직하지 못한 프란체스카는 손가락질 받아야 하는 걸까?


어쩌면 그녀는 비난받아 마땅할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사랑이라는 감정을 끝까지 거부하고 부인해야 했었는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그렇다면 이것은 남편과 자녀에게 솔직한 것일까?


이런 질문에 애당초 정답은 없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는 그녀가 남편과 자녀에 대한 의무와 책임감을 자신의 감정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설령, 그 감정이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단 한번만 찾아오는 것일지라도...


 

​끝으로, 그저그런 소설로 묻히고 말았을지도 모를 이 작품이 세계적으로 널히 읽히는 명작이 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영화 덕분이 아닐까 싶다. 특히, 소나기 퍼붓는 가운데 자신이 옮겨타기만을 바라면서 천천히 좌회전하는 로버트의 차를 두 눈으로 뒤쫓는 장면은 배우의 명연기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으리라는 데에 기꺼이 한 표 던지겠다. 비록 내가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지만 연기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로버트 킨케이드를 뒤따라 몇 블럭 북쪽으로 갔다. 거기서 169번 국도는 동서쪽으로 뻗은 92번 도로와 교차했다. 그곳은 사방으로 통행량이 많은 십자로였다. 비가 내리고 안개가 더 심해져서 네거리는 복잡했다.

20초 가량 그들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가 바로 앞에, 그녀에게서 겨우 1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프란체스카는 아직도 감행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해리의 오른쪽 문으로 뛰어가, 배낭과 아이스박스와 삼각 다리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지난 금요일, 로버트 킨케이드가 떠난 이후, 그녀는 깨달았다. 그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감정을 심하게 과소평가했었다는 것을. 도저히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프란체스카는 그가 이미 이해했던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책임감에 꽁꽁 얼어붙어 앞 트럭의 뒤창문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평생토록 무엇을 이렇게 집중해서 쳐다본 적이 없었다. 해리의 왼쪽 깜박이에 불이 들어왔다. 다음 순간, 그는 사라져버렸다. 리처드는 트럭의 라디오를 켰다.

그녀의 시선에는 모든 사물이 느릿느릿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음 속에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의 차례가 오자 천천히....느릿느릿...그는 해리를 네거리 안쪽으로 몰았다. 그녀는 그가 긴 다리로 클러치와 액셀러레이터를 작동하는 모습을, 그리고 기어를 바꿀 때 오른팔의 근육이 움직이는 것을 그려 볼 수 있었다. 그러더니 좌회전해서 92번 도로로 들어서 카운실 블러프스로 향했다. 블랙 힐즈로, 북서쪽으로....천천히....느릿느릿 낡은 픽업이 돌았다..... 굉장히 천천히 네거리를 돌아 서쪽으로 향했다. (....)

그녀는 그의 목소리가 고속도로에서 울려퍼지는 것을 들었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리처드는 트럭을 몰아 네거리를 지나 북쪽으로 향했다.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49~152쪽-


 


 

둘이 서로 사랑할때, 그들은 여름 안에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