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강상중의『마음』을 읽었어요.


일찌기 저자의 『고민하는 힘』을 인상 깊게 읽었던 터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선택했습니다.


네, 그래요...


저는 언젠가부터 그러니까 스스로 더 이상 젊지 않다고 절감한 그 순간부터 까다로워(?)졌답니다. 특히,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만큼은 아주 이기적(?)으로 변해 버려서  최소한 두번은 생각하게 되는 거 같아요. 왜냐하면, A라는 책을 읽으면 B라는 책은 포기되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세상의 책들은 늘어나지만 내 생에 남은 시간들은 점점 줄어드니까... 비단 책을 선택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나이들수록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암튼, 이 작품은 전문 작가의 작품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빼어난 문학성을 기대했던 건 아니에요. 다만, 자신만의 소신과 철학으로 일본사회에 적잖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저자의 목소리(?)을 다시 한번 듣고 싶었을 따름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뜻밖에도 책을 다 읽고 난 후, 마음의 울림은 생각보다 깊었습니다.   


 

강상중 교수는 『마음』이라는 작품을 통해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중심으로 삶과 죽음의 의미를 탐색해 나갑니다.  특히 죽음에 대해선, 과거의 추상적인 방식 대신 구체적이고 직관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죽음이란 무엇이며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혹은, 갖어야 하는지를-단호하게 말해줍니다.


 

나 역시도, 언제부터인가 죽음을 잊고 생(生)과 생(生)의 취사선택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아들의 죽음이라는 비극은 나에게 처음으로 죽음이 삶과 이웃하고 있음을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나는 깨달은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불길하게 여기고 꺼리는 죽음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영겁의 함정'임을. 동일본 대지진의 비극 또한, 죽음이야말로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이라는 것을 널리 알려 주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일상의 희극을 끊어 내고, 자신이라는 존재의 근거, 그 심연을 되돌아보게 하는 죽음이라는 비극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아버지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때의 나는 그저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속에 잠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죽음은 무(無)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죽는다고 다 끝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얻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이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다름 아니다. 그 마음은 반드시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 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삶과 죽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기에 그저 한결같이 생(生)만을 욕망하는 쾌락의 추구라는 것이, 두렵고 그로테스크한 죽음을 암흑 속에 봉해 버리려는 헛된 시도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강상중, '한국의 독자들에게' 中-


 


'죽음은 무가 아니다. 사람이 죽는다고 다 끝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얻기 때문이다.'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무의미한 집단적 죽음'과 아들의 죽음이라는 저자의 '개별적이고 특별한 개인적 체험'이 함께 공명하면서 거대한 울림을 자아냅니다. 제대로 잘 살기 위해서라도 죽음을 명확히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흔히,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라는 말 한마디로 죽음을 흔하디 흔한 예식으로 만들어버리거나 애써 외면해버립니다. 특히 전쟁이나 자연 재해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경우, 죽음은 형식적인 숫자로 표현되고 슬픔은 상징성을 띈 집단 애도로 대체되어 버리죠.


 

200명 사망...2천명 사망... 2만명 사망... 등등의 표현 앞에서 우린 무감각해져버립니다. 도무지 죽음을 실감할 수 없습니다. 실감하지 못함으로, 죽음에 대한 진정한 슬픔도 삶에 대한 그 어떤 깨달음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저자는 바로 이 점을 간과하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과 행방불명된 사람이 3천 명, 5천 명, 7천 명, 만명...... 큰 규모의 지진과 쓰나미가 가져온 수많은 죽음은, 피해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는 실감 나는 리얼한 죽음이 아니라 그저 통계적이고 무미건조한 '숫자상의 죽음'으로 치환되어 버린 것입니다. (...)


텔레비전 화면에도, 신문이나 잡지의 사진에도, 죽은 이의 구체적인 모습은 하나도 찍혀 있지 않은 것을. 그러니까 나오히로 군이나 동료들과는 달리,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는 은폐된 죽음, 아니면 깨끗하게 소독된 죽음 밖에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애도의 마음이나 외경의 마음을 느끼겠습니까. 어떻게 눈물을 흘린다든가 또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피한다든가 하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p169~171 中 요약발췌-


 

곰곰 생각해 보니, 저 역시나 이 나이 먹도록 죽음의 실체와 대면한 적은 없었던 것 같군요. 설령 가까운 가족의 임종을 지켰다 한들, 그건 사망진단서를 발급받고 장례식장 이용 계약서에 서명하는 따위의 현실적인 행위들과 동일 선상에 놓여 있을 뿐, 죽음의 본질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오히려 일상 즉 삶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질 뿐이죠.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와 같은 공간에 있던 이의 부재(不在)를 미처 실감하기도 전에 일상으로 복귀하고 맙니다. 네, 그럽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하니까요. 아니, 산 사람은 저절로 살아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삶을 초월한 죽음을 삶 속에서는 제대로 인지할 수 없는 법이니까요.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통렬한 슬픔도 깊은 애도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게 아닐까요? 


 

저는 주인공인 나오히로가 '라이프 세이빙'을 하면서 죽은 자(시체)와 마주하는 장면을 읽을 때, 온몸이 떨려왔더랬죠.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한 시신들을 마주한 순간, 비록 찰나에 불과했지만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죽음'을 감지했다고나 할까요. 


 

'아, 아, 죽음이란 바로 이런 거로구나...'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을 읽었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느낌에 사로잡혔더랬죠.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이 작품 역시 '똑똑히 봐라! 죽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작정이라도 한듯 전쟁통에 죽은 사람들의 모습 즉 시신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죠. 그리고 이런 죽음 앞에서 우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공포도 살아있다는 위안도 아닌 깊은 공허 즉 삶의 허무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강상중교수의 『마음』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죽음의 실체와 삶의 허무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이야기 합니다.

 


죽음의 실체를 알기 위해 '라이프 세이빙'에 나선 나오히로에게 강상중 교수는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내지요.


 


물론, 죽은 이의 몸은 시간이 지나면 썩습니다. 망가집니다. 밀랍과 비슷한 황색의 치즈 같은 물체가 되거나, 가스가 가득 차서 퉁퉁 부어오른 덩어리 같은 것으로 전락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이는 존엄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한 물체로 전락해 버린 그 하나하나에, 죽음 바로 직전까지 그 사람만이 간직하고 있던 '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을 해도 죽은 이는 살아 돌아오지 않고, 가족이나 육친의 슬픔이 덜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사람들은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고인의 과거야말로 죽은 이에게 영원의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난번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 것 같네요.

지금 창밖에는 저녁노을의 마지막 낙조가 희미해지고 별이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저는 그 무서운 지진이 있던 날, 구조를 기다리며 바다 위에서 별을 바라보면서 영원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사람들,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떠나가 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하게 됩니다. -p142


 

구조를 기다리며 바다 위에 떠 있던 사람들...

그들의 심정을 상상하는 마음들...


 

그렇습니다!

바로 이 순간, 우리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완성'임을 깨닫게 되는 게 아닐까요?

죽은 사람은 영원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기억됨으로써 마침내 영원히 존재하게 됩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결국 '삶'을 빛나게 해 주는 것이 아닐까요? 선생님께서는 '죽음'가운데에는 인생의 '기억'이 있고, 그 사람의 '과거'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에 의해서 그 사람은 영원히 된다고 말입니다. 제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건지 확신은 없습니다만, 시신을 한 구 한 구 인양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과 마주하는 동안, 어쨌든 '나는 살아야 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살아야 해. -p165


삶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죽음을 찾아나섰던 나오히로...

마침내 죽음의 실체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이 작품을 단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메멘토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 일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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