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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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나온 하루키의 신간 단편집 『여자없는 남자들』을  최근에야 읽었어요.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그러기 위해 노력해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문장이 가슴 한켠으로 날아와 박혔던 기억이 아직도 얼얼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때의 상흔(?)이 미처 사라지기 전에 읽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키는 굳이 설명을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그 이름만큼은 들어봤을 만큼 명성이 자자한 일본의 대표작가라 할 수 있습니다. 1949년생이니 올해로 66세군요.


작품이 너무 많아서 그가 이른 나이에 작가가 됐을거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는 1978년 우리 나이로 서른살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작품으로 등단합니다. 야구장에 갔다가 외야쪽으로 길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야구공을 보면서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죠.



 

첫작품을 낸지 8년 후인 1987년 <노르웨이의 숲>으로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만  <상실의 시대>로 번역 출간된 한국에서는 별 주목을 끌지 못하다가 90년대 중후반에 가서야 뒤늦게 인기를 얻으면서 소위 '와타나베 신드롬'을 불러일으킵니다. 평론가들은 1997년 소위 '아시아금융위기(IMF)' 속에서 한순간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린 이십대 젊은이들이 하루키의 작품 속에서 동질감과 위안을 얻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지요. 그 당시 이십대였던 제가 무엇 때문에 방황했는지 이젠 구체적으로 떠오르지도 않지만 하루키를 만나고 순식간에 매료되었던 건 사실입니다. 


 

어디가 좋아? 뭐가 그렇게 좋은데?

라는 질문에는 우물쭈물 답을 하지 못했지만, 그저 마냥 좋아했던 기억만은 또렷합니다.



 

 

사실, 하루키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큼 그의 작품들은 줄거리를 딱히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와 어디선가 느꼈음직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하죠. 분명 존재하고 느낄 수 있지만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선율을 표현하는 작가로 하루키는 단연 최고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작품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익숙한 멜로디의 노래 한두곡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것도 다반사죠.


저는 하루키를 만날 때마다 그러니까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비틀즈 노래가 귓전을 맴돌곤 합니다. 무슨 주문처럼...

 


초여름의 나른함을 타고 동시에 찾아온 하루키와 비틀즈는 저에게 두가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하루키의 소설은 들을 수 있고, 비틀즈의 노래는 읽을 수 있다는 거...  

 

그리고,

오블라디 오블라다...


즉,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는 거라는 거...


 

노래가사처럼...

소설속 주인공들처럼...


 

그렇게 어딘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그런 먼 곳으로 흘러가는... 그런 게, 바로 인생이라는 거...



 

 

 

 



#-책속의 문장들



가후쿠가 보기에,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술꾼이 있다. 하나는 자신에게 뭔가를 보태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고, 또하나는 자신에게서 뭔가를 지우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카쓰키는 분명 후자였다. -드라이브 마이 카』中-



 

그 시절 나도 매일 밤 둥근 선창으로 얼음 달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두께 이십 센티미터에, 단단히 얼어붙은 투명한 달을. 하지만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달의 아름다움이나 차가움을 누군가와 공유하지 못한 채 나는 혼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는/내일의 그저께고

그저께의 내일이라네  -예스터데이』中-



 

 

우리 인생을 저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고,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마음을 뒤흔들고, 아름다운 환상을 보여주고, 때로는 죽음에까지 몰아붙이는 그런 기관의 개입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분명 몹시 퉁명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혹은 단순한 기교의 나열로 끝나버릴 것이다.  -『독립기관』中-



 

 

 

인생이란 묘한 거야. 한때는 엄청나게 찬란하고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그걸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버려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혹은 바라보는 각도를 약간 달리하면 놀랄 만큼 빛이 바래 보이는 거야. 내 눈이 대체 뭘 보고 있었나 싶어서 어이가 없어져." -『세에라자드』中-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당연히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도 못한다. 행복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이제 기노는 이렇다 하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분노, 실망, 체념, 그런 감각도 뭔가 또렷하게 와닿지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렇듯 깊이와 무게를 상실해버린 자신의 마음이 어딘가로 맥없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둘 장소를 마련하는 것 정도였다.  -『기노』中-



 

 

내가 여기서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사실이 아닌 본질을 쓰고 싶은 것이리라. 하지만 사실이 아닌 본질을 쓰는 일이란 달의 뒷면에서 누군가와 만나기로 약속하는 일과 다름없다. 캄캄하고 표지로 삼을 만한 것도 없다. 게다가 너무 넓다.  -『여자 없는 남자들』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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