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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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눈으로 읽을 때보다 입으로 낭독할 때가 훨씬 좋은 거 같아요.


장편보단 단편, 특히 이야기도 등장인물도 명확하지 않아서 뭐가 뭔지 모호하기만 한 작품일수록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마치 흡수되지 않고 반사되기만 하는 빛처럼 눈으로 들어오지 않고 사방팔방으로 흩어지기만 하던 문장들을 나직히 소리내어 읽다보면, 어느순간 소리소문없이 스며드는 빗물처럼 마음이 촉촉해지곤 합니다.



며칠 전이었어요.


주위는 소음으로 가득찼고... 제 마음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이런 순간이 오면 저는 책 속으로 도망을 치곤 하는데, 그때 저에게 문을 열어준 책이 다름아닌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이었지요.

이 작품은 1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짧은 서간체 단편이지만, 상실의 아픔을 절절히 표현한 작품으로도 유명하지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의해 동명 영화로도 만들어져 호평을 받은 바 있지요.


 


저는 이 작품을 읽을 때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이유도 원인도 알 수 없는 남편의 죽음에 허물어진 주인공처럼, 저 역시 작가의 의도도 작품의 주제도 도무지 파악할 수 없었으니까요.



저도 처음에는 화자인 아내와 함께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간 이유를 열심히 찾아나섰더랬지요. 

그녀는 어린시절 살았던 동네부터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치매를 앓으셨던 친할머니도 만나고... 힘겹게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던 부모님의 모습도 봅니다. 물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초라한 자신의 어린 모습까지 마주하지요.



​그러고 보면, 기억이라는 거...

참 야속하고 잔인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싶은 것일수록 깊게 깊게 새겨놓아, '이젠 잊기로 했고, 정말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시도때도 없이 불쑥불쑥 되살려 놓아 사람을 난감하게 만드니 말이지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기억이라는 녀석은 참 지독한 면이 있는 거 같아요.

어린 시절 남편과 함께 보냈던 아마가사키의 '마쓰다 아파트'에도 가보고 오쿠노토의 소소기 해변 마을의 앞바다까지 훑었지만, 남편은 말이 없습니다.


단 한마디면 되련만...

더도 덜도 아닌 그저 딱 한마디만 해주면 되련만...

남편은 고집스럽게 뒷모습만 보일 뿐이지요.



우리가 이별이나 상실 혹은 실패를 힘겨워하는 건, 그 자체가 가져다주는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이 아니라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알았다면, 그리고 그 이유가 타당하다면...? 우리는 고통이 아무리 크고 끝이 없다한들 견뎌낼 수 있어요. 


우리가 모든 행동과 결과에 대해 이유를 알고자 하는 건, 그것 자체가 우리 삶의 본질을 이루는 일부분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삶의 의미 즉 삶의 이유를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삶 자체가 정말 다르듯이 말입니다.

 



눈으로 읽던 문장들을 입으로 소리내어 읽기 시작하자 불연듯 깨닫게 되었지요.

아, 화자인 아내를 절망케 한 건 남편의 부재 자체가 아니라 그 부재를 불러온 이유였다는 걸...  

상실에 대한 이유를 알아야만 받아들일 수 있고 잊을 수 있는 거죠.


왜, 떠났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화자인 아내가 원한 것도 단 한가지였습니다.

왜 남편이 자살이라는 형식으로 가족 곁을 떠나야만 했었는지 바로 그 이유였더랬죠.


그러나...

남편은 말이 없습니다.



 

정말, 사람은 혼이 빠져나가면 누구나 죽고싶어지는 법일까요?




마지막으로...

낭독에는 놀라운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읽는 것도 듣는 것도 믿을 수 없을만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다만,

둘 중 어느것이 더 좋으냐고 저에게 물으신다면...?

저는 외롭고 슬플땐 주로 입으로 낭독하고...

그 반대일 땐 주로 귀로 듣지만, 사실 거의 대부분은 눈으로 읽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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