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윈터 리미티드 에디션) 세계문학의 천재들 1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대형 서점 안이었다. 

서가와 서가 사이의 좁은 통로에 반백의 젊은(?)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편안한 복장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서가에 등을 기대고 두 무릎을 가지런히 모은 채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흰머리가 그대로 들어난 긴 커트머리와 군살없는 날씬한 몸 그리고 코끝에 걸려 있는 작은 돋보기...


아직 할머니라고 하기엔 이르고 아줌마라고 하기엔 더이상 어울리지 않는, 이와 같은 연령대에 속하는 여성들은 주로 자녀의 결혼이나 결혼생활에 당당히(?) 개입하고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관심이 많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TV시청이나 종교생활 혹은 친목도모로 채운다. 그래서 병원이 아니라면 주로 평일 한낮의 지하철안이나 음식점 혹은 종교적인 장소나 스포츠센터 등에서 마주친다. 그리고 대개는 무리지어 있고 소란스러우며 거침없이 행동한다.(고 줄곧 생각해왔더랬다.)



이런 선입관을 깨는, 다소 낯선 풍경에 묘한 감동이 일었다.


가볍게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향하는 낯선 시선을 확인하는, 무심한 듯 여유있는 태도까지...


그녀에게 다가가 잠시만 그옆에 머물고 싶어졌다. 왠지 그녀라면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줄 것만 같았다.


그 짧은 순간, 어쩌면 나는 '이탈'을 감행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가 어느날 갑자기 모든 일상을 뒤로 하고 홀연히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올라탔듯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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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익숙한 삶에서 '이탈'하(고자 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스위스 베른의 한 대학에서 라틴어을 가르치는 교수가 수업 도중 그냥 나가버린다. 그리고 우연히 손에 들어온 책('언어의 연금술사')의 저자를 찾아 나선다. 저자는 이미 30년전 리스본에서 죽은, 아마데우 프라두라고 불리웠던 사람이다.




자기 삶과는 완전히 달랐고 자기와는 다른 논리를 지녔던 어떤 한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일까. 이게 가능할까. 자기 시간이 새어나가고 있다는 자각과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호기심은 서로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p154 


우리는 이 길을 걸어가면서 선택되어질 뻔했으나 그렇지 못한 저 길에 대한 꿈을 언제나 품고 살아간다. 그러나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수도 있다는 상상은 쉽게 하지 못한다. 영화나 소설을 대할 때에도 '내가 극중 주인공이 된다면...?' 과 같은 가정을 할 뿐, 나를 버리고 철저히 극중 주인공이 되어보는 경험은 섣불리 하지 못한다. 우리의 사고는 스스로 인식하는 테두리안에서만 작동하고 수렴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식되지 않는 부분들, 소위 무의식의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냥 사라져 버리는 걸까? 의식의 세계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을 뿐만 아니라 의식의 세계를 규정하고 심지어 조정한다고까지 알려진, 바로 그 세계말이다.   



 

_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p32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바로 이 '나머지' 부분들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라 하겠다. 내가 삶속에서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고 그래서 제대로 표현되어지지 못한 것들이 어쩌면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메세지는 강렬하다 못해 현기증마저 일으킨다.  



물론 작가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모든 사람들이 일탈을 꿈꾸고 감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자기 내면과 현실 사이에서 '주춤'거리는 사람일수록 자신에 대해 많이 알고 있거나 더 많이 알고자 하는 사람일수록 익숙한 일상에서 탈출하려고 한다. 탈출한 그곳 역시 익숙해지면 또 다시 탈출을 시도한다. 익숙함에서 낯섦으로의 탈출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삶은 그렇지 않은 삶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다채로울 수밖에 없다.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이 흑과 백의 세계만 경험한다면 이들은 총천연 컬러의 세계를 경험한다.



_영혼의 그림자. 사람들이 어떤 한 사람에 대해 하는 말과, 한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하는 말 가운데 어떤 말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 다른 사람에 대해 하는 말이 스스로에 대해 하는 말처럼 확실한가? 스스로의 말이라는 것이 맞기는 할까? 자기 자신에 대해 사람들은 신빙성이 있을까? 그러나 내가 고민하는 진짜 문제는 이것이 아니다. 정말 고민스러운 문제는 이런 이야기에 도대체 진실과 거짓의 차이가 있기나 할까라는 것. 외모에 관한 이야기에는 물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 길을 떠날 때는? 이 여행이 언젠가 끝이 나기는 할까? 영혼은 사실이 있는 장소인가, 아니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우리 이야기의 거짓 그림자에 불과한가? -p222~223


현실이 딱히 불만족스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불연듯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이제 때가 온 것일지도 모른다.


익숙했던 모든 것들과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야 하는 바로 그 때...

나 아닌 또 다른 나를 찾아 나서야 할 바로 그 때...





3주전에 읽었고 그 이후 몇 권의 책들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잔상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죽기전에 꼭 한번 다시 읽고 싶은 책 중에 한권이 될 것만 같다.



끝으로,

얼마전 대형서점에서 내 시야에 포착(?)되었던 그 젊은 할머니가 읽고 있던 책이 어쩌면 파스칼 메르시어의『리스본행 야간열차』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쳤던 그 순간, 할머니의 눈빛은 분명 이 곳이 아닌 저 곳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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