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너리 오코너 -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외 30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알기로  이 세상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선한 사람,

다른 하나는 악한 사람,

나머지 하나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셋 중 어느 한 부류에 속할 테지만, 자기 자신만큼은 선하거나 아니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부류라고 여기지, 어느 누구도 스스로를 악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악한 사람은 언제나 타인이다. 설령 내가 때때로 악해지는 것도 언제나 악한 타인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모두가 선하거나 아니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굳게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굳이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이가 있다.

 


 

노예제가 폐지된지 수십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흑백차별이 존재하는 지역에서 태어나 살았고...

주민의 대다수가 열렬한 신교도인 곳에서 유일하다시피한 아일랜드계 가톨릭교도였으며...

촉망받는 젊은 작가의 길로 접어든지 얼마 안되 불치병에 걸려 서른 아홉 해라는 짧은 생을 마감했고... 

단 두 편의 장편과 서른 한편의 단편으로 사후 자신의 이름을 딴 '문학상'을 남긴 여성.... 


바로, 플래너리 오코너다. 



그녀는 우리 마음속 어두운 골짜기를 비춘다.

그곳은 허위나 위선보다 더 깊고 까마득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그곳은 마치 보고도 보지 못하는 맹점(盲占)이나 사각지대(Blind spot)와 같다.



주인공들은 독실한 신앙인이거나 교양있는 교외의 중산층 아니면 운명을 따르는 순박한 (시골)사람들이다.

부모 대신 어린 손자를 돌보거나('검둥이 인형'), 오갈데없는 추방자를 일꾼으로 고용하는가 하면('추방자'), 불량 청소년을 친자식만큼 사랑한 상담사('절름발이가 먼저 올 것이다')와 집단의 희생양 편에 서고자 한 젊은이들('파트리지 축제')이다. 이들은 모두 스스로를 선하다고 여겼으나 어느 순간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거나 오히려 악한 사람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계시와 통찰은 거칠게 찾아온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평온한 일상에 침입한 불청객처럼...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영상은 반복적으로 떠올라 독자를 괴롭힌다. 이쯤되면 불쾌감을 넘어 불안해진다. 등장인물들에게서 언뜻언뜻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내 안의 맹점과 사각지대를 마주한다는 건 생각보다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 뽈레가 말했던가.

예술이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끔 하는 거라고...


그렇다면 플래너리 오코너야말로 가장 효과적으로 문학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라 하겠다. 아니, 그녀는 단순히 보이지 않는 걸 보이게끔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계시와 통찰 그리고 용서(회개)와 사랑(구원)이라는 일반적인 노선을 따르길 거부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에드가 앨런 포와 도스토옙스키 역시 집요하게 '악'을 탐구했던 작가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지향점은 언제나 깨달음을 통한 회개와 구원이었고 용서와 사랑이었다. 반면, 플래너리 오코너는 추락과 파멸이다. 계시와 통찰 이후, 그녀는 용서와 구원이 아닌 추락과 파멸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이점이 독자로 하여금 정신적인 충격과 불쾌감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녀의 작품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자, 그녀를 존 치버와 레이먼드 카버 그리고 제임스 설터와 애니 프루까지 쟁쟁한 영미현대 단편소설 작가들 가운데서도 'Best of best'로 손꼽는 이유이리라.     




플래너리 오코너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들었으나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