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왜 이제서야 이 책을 읽었을까...?

나는 왜 이제서야 이 작가를 만났을까...?

 

에밀 아자르의 『자기앞의 생』은 나에게 아쉬움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안겨줬다. 

 

사실, 내가 에밀 아자르의 이름을 처음 듣게 된 건 대학 재학 때였으니 그닥 늦었다고는 할 수 없으리라. 다만, 내가 제대로 못 알아봤을 뿐...

<제3세계문학> 이라는 교양수업이었고, 그 당시 막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담당 강사는 매우 열정적이었다. 그의 열정(?) 덕분에 나는 카뮈와 카프카 그리고 안톤 체홉 등을 읽을 수 있었다. 

 

졸음이 몰려 오던 어느 오후, 교수님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제목부터 이상야릇한 작품에 대해서 혼자 감동하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아마 그 당시 난 이 작품을 찾아 읽었을 것이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는 걸로 보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만큼은 지금까지 가슴 깊이 박혀 있으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이상야릇한 제목의 작가는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는 바로 그의 필명이다.

로맹 가리는 30여년 동안 본명인 로맹 가리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4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그 중  한편이 바로  <자기앞의 생>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동일 작가에게는 두번 수여하지 않는다는 공쿠르 상을 두번 수상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이 뿐만 아니라 무려 스물다섯살 연하인 헐리우드 여배우 진 세버그와의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자, 66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삶 자체가 한편의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마치 자신의 삶 자체를 예술 작품화하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는 동일인이었지만 각기 다른 작품 색채로 그 당시 프랑스 문단을 감쪽같이 속였다고 하는데, 사실 꼼꼼하게 살펴보면 오히려 상당히 비슷한 문장과 문체를 구사하여 당시 한 젊은 인터뷰 기자로부터 의심(?)을 받기도 했단다. 그런데 재밌는 건 당시 프랑스 문단에선 로맹 가리를 이미 노쇠한 논평할 가치조차 없는  작가로 치부한 반면,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를 능가하는 작가로 높게 평가했다는 점이다.

 

만약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예명이 아닌 본명으로 이 작품을 발표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공쿠르상 수상은 커녕, 평단의 혹독한 평과 함께 사장되지 않았을까? 로맹 가리가 본명을 버리고 에밀 아자르라는 예명을 선택한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소위 '평'이라는 것에 얼마나 많이 좌우되는가.

개인의 취향과 안목이라는 것도 어쩌면 평판(시장)에 의해 만들어진 감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자, 그럼 이제부터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나...

 

『자기앞의 생』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배경에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인물들'로 이루어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한 소년의 성장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슴 아프고 슬프지만, 말도 안되게 웃기고 또한 빼어나다. 이 작품의 추천사를 쓴 작가 조경란은 '슬픈 결말로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모모(모하메드)는 아랍인으로 창녀에게서 태어났지만 유태인인 로자 아줌마의 손에서 키워진다. 로자 아줌마는 아우슈비치에서 살아 남았으며 50살이 될때까지 모모의 엄마처럼 거리의 여자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은퇴(?)한 후에는 모모처럼 창녀의 아이들을 몰래 맡아 키우는 것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는 65세 노인이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 건물의 꼭대기층에 살면서도 자기 앞의 생을 직시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생이 제멋대로 흘러가도록 좌시하지 않았다. 

 

유태인으로서의 로자 아줌마에 대해 말하자면, 그녀는 성녀였다. 물론 아줌마는 우리에게 가장 싼 것만 먹이고, 라마단이라는 끔찍한 것으로 나를 지겹게 했지만 말이다. (...)

로자 아줌마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을 떨고 나서 나한테 괜히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녀를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 목숨은 그녀에게 남아 있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목숨을 소중히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볼때 그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p59~63

 

어느 일요일. 로자 아줌마는 아침나절 내내 울고 있었다. 그녀는 때때로 아무 이유도 없이 하루종일 울기도 했다. 그럴 때는 실컷 울도록 내버려둬야 했다. 아줌마에게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p59~60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p69

 

 

세상에는 관심을 끌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바캉스 장소를 산과 바다 중에서 선택하듯이 사람들도 그렇게 선택당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관심을 끌지 못하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한다. 사람들이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듯이,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낸 나치나 베트남 전쟁 같은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것을 선택하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엘리베이터도 없는 칠층에 사는, 과거에 너무 고통스럽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유태인 노파 같은 건 누구의 관심사도 될 수 없다. 돈이 적게 드는 일일수록 그만큼 중요하지 않은 일이니까......-p246

 

 

로자 아줌마가 개였다면, 진작에 사람들이 안락사 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사람에게보다 개에게 더 친절한 탓에 사람이 고통없이 죽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 한 가지 말해둘 게 있다.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는 가능한 안락사가 왜 노인에게는 금지되어 있는지 말이다.  -p126~295 中 발췌-

 

삶의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통제한다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어떤 방식과 형태로 자기 앞의 생을 마감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떻게 생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 못지 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움켜잡고 있던 생의 고삐를 마지막 순간 병원이나 의사 혹은 자기 아닌 타인에게 내맡겨 버리곤 한다. 자기 앞의 생을 타인 앞의 생으로 돌려버리는 '우'를 범하고 만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나는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p13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나요?"

"난 쿠스쿠스를 무척 좋아한단다. 빅토르야. 하지만 매일 먹는 건 싫구나."

"하밀 할아버지, 제 말을 못 들으셨나봐요. 제가 어릴 때 할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그의 얼굴이 속에서부터 환하게 밝아졌다.

"그래, 그래, 정말이란다. 나도 젊었을 때는 누군가를 사랑했었지. 그래, 네 말이 맞다. 우리......"

 

인간은 원래 가진 거라곤 사랑밖에 없어서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

하밀 할아버지처럼 오래 살아서 기억력이 흐려진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 나딘 아줌마는 내게 세상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라몽 아저씨는 내 우산 아르뛰르를 찾으러 내가 있던 곳까지 다녀와기도 했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뛰르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 -p307

 

이 작품을 단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랑'이라고 하겠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말 것...

인간의 생은 결국 끝이 나지만, 사랑없인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로자 아줌마는 모모를 사랑했고,

하밀 할아버지도 모모를 사랑했으며,

모모 역시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또한 하밀 할아버지를 사랑했다.

그것도, 아주 깊이 깊이...

 

 

 

 

앞으로 생의 길목에서 상처 받을 때마다 나는 이곳으로 도망쳐 오리라...   

책 속의 문장들 속으로 숨어들어가 소리내어 읽다가는 어느덧 소리내어 울으리라...

그리곤, 다시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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