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믿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다.

 

역대 부커상 수상작 중, 가장 많이 팔렸다는『파이 이야기』를 나는 어느 서평가의 빼어난 문장 속에서 만났다. 물론, 이안 감독에 의해 2013년  『Life of Pi』로 영화화되었다는 사실도 금시초문이었다. 영화는 어떻게 해서든 꼭 찾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화자는 총 세명이다.

하나는 작가 즉 얀 마텔이고, 또 다른 화자는 피신 몰리토 파텔 즉 파이이고, 다른 하나는 침춤호 침몰 사건을 조사했던 오카모토씨다.

 

작가인 화자(얀 마텔)은 두 편의 전작을 실패한 후, 훌쩍 인도로 떠난다. 그리고 폰디체리라는 곳의 한 카페에서 '내 이야기를 믿는다면 당신은 신을 믿게 될거요'라고 말하는 노신사(프란시스 아디루바사미)를 통해 무려 227일간 벵골 호랑이와 함께 구명정에 있다가 살아 돌아온 소년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는 그 소년을 찾아간다. 소년의 이름은 파신 몰리토 파텔, 어릴 적엔 주로 '파이'로 불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작가는 작품을 쓰기 위해 당시 침춤호 침몰 사건을 조사했던 오카모토씨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마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형식처럼 보이는 이 부분 역시 작품의 일부분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작가 역시 처음부터 자신이 들려준 '파이 이야기'를 독자들이 믿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신빙성을 높이고 작품의 사실성을 살리기 위해서 이와 같은 구조를 선택했다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소설이란 꾸며진 이야기라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파이 이야기만큼은 실제로 일어났었던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환상에 자주 빠지곤 한다.

 

이 작품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랍고 환상적이면서, 동시에 믿을 수 밖에 없는 아니 믿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는 것....

 

파신 몰리토 파텔은 인도 폰디체리에서 아버지(산토스 파텔)와 어머니 그리고 세살 위인 형 라비와 살고 있었다. 그가 열 다섯살 되던 해에 동물원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캐나다로의 이민을 결심하고 가족과 함께 파나마 선적의 일본 화물선 '침춤호'에 오른다. 그날은 달력으로 1977년 6월21일이었다.

 

그로부터 열 이틀 후, 태평양을 건너가던 침춤호는 침몰하고 만다. 날씨가 나빴던 것도 아니고 충돌 등 불의의 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건조된지 29년이나 됐고 구조변경을 한 침춤호가 갖고 있던 구조적인 문제와 몇몇 불운의 결합이 불러온 사고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선원들을 포함하여 침춤호에 타고 있던 사람들 중 가장 어렸을 파이에게는 신이 함께 했다는 점이다. 하나도 아닌 여럿의 신들이...

  

구명정에 올라탄 파이는 가까운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던 세살배기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를 발견하고는 구명튜브를 던져 파커가 구명정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밖에도 구명정에는 배에서 뛰어내릴 때 다리를 심하게 다친 얼룩말과 하이에나 그리고 1톤 바나나 더미에 앉아 있던 암컷 오랑우탄이 마지막으로 승선한다.

 

세로 폭이 기껏해야 2~3미터 가로 길이는 7~8미터에 불과한 구명정 안에서도 약육강식의 법칙은 예외없이 적용되었다. 초식동물이자 다리까지 다친 얼룩말이 제일 먼저 하이에나에게 잡아 먹히고... 잡식성인 오랑우탄이 하이에나에게 저항해보지만 결국 날카로운 이빨을 당해내지 못한다... 그리고 하이에나는 벵골 호랑이의 한끼 식사로 얌전히 제공되고...

 

이제 구명정에는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소년 파이만 남는다.

 

파이에게는 몇 십일을 버틸 수 있는 음식과 물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낚시도구와 태양열 증류기까지 있었지만 문제는 파커였다. 파커를 피해 구명조끼로 뗏목을 만들어 피신하고 파커의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물고기와 바다거북을 건져 올린다.

 

파이는 두려움이 밀려들 때마다 신을 찾았다.

 

나는 환경에 맞게 조절한 종교의식을 거행했다-사제나 성찬식 집례자가 없는 혼자만의 미사를 올렸고, 신상도 없고 공양도 없는 힌두교식 제사를 올렸다. 메카가 어느 쪽에 있는지도 모른 채 엉터리 아랍어로 알라신께 예배했다. 그런 의식이 위로를 주었다.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힘들었다. 정말이지 힘들었다. 신을 믿는 것은 마음을 여는 것이고, 마음을 풀어놓는 것이고, 깊은 신뢰를 갖는 것이고, 자유로운 사랑의 행위다. 하지만 때로는 사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때로는 내 마음이 분노와 절망과 약함으로 급속히 가라앉아서, 태평양 바닥에 처박힐 것 같았다. 거기서 다시 올라오지 못할까 두려웠다. -p287

 

절망은 빛이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어둠이었다. 그것은 이루 표현 못 할 지옥이었다. 그것이 늘 지나가게 해주시니 신께 감사하다. 다시 매달라고 아우성치는 매듭이나 그물 주변에 물고기 떼가 나타났다. 내 가족 생각을 했다. 그들이 이런 무시무시한 고통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해서도 어둠이 휘휘 젓다가 결국 물러갔고, 그때마다 신은 내 마음에 환한 빛으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계속 사랑하면 됐고. -p288

 

파이에게는 신들뿐만 아니라 선한 햇살과 매혹적인 달빛...

 

그리고 리처드 파커도 함께 했다. 

 

"정말로 사랑해. 사랑한다. 리처드 파커. 지금 네가 없다면 난 어째야 좋을지 모를 거야.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그래, 못 견뎠을 거야. 희망이 없어서 죽을 거야. 포기하지 마. 리처드 파커. 포기하면 안 돼. 내가 육지에 데려다 줄게. 약속할게. 약속한다구!" -p324

 

리처드 파커는 몇 차례 넘어졌다. 밀림이 시작되는 곳에서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그가 내 쪽으로 방향을 틀 거라고 확신했다. 날 쳐다보겠지. 귀를 납작하게 젖히겠지. 으르렁대겠지. 그렇게 우리의 관계를 매듭지을 거야. 그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다. 밀림만 똑바로 응시할 뿐이었다. 그러더니 고통스럽고, 끔찍하고, 무서운 일을 함께 겪으면서 날 살게 했던 리처드 파커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내 삶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

나는 아이처럼 울었다. 고난을 딛고 살아나서가 아니었다. 사람을 본 것이 감동적이긴 했지만, 내가 흐느낀 것은 리처드 파커가 아무 인사도 없이 날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다. 서투른 작별을 하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나는 일의 순서에 맞추어 형식을 차려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가능하다면, 일에 의미 깊은 모양새를 입혀야 한다. 예컨대 당신이 내 뒤죽박죽 이야기를 100장으로 구성할 수 있을까? 한 장이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게 딱 100장으로? 하긴 내 별명이 싫은 것도 그 때문이다. 숫자가 영원토록 따라다니는 게 거북하다. 하지만 인생에서 일을 알맞게 마무리 짓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만 놓아버릴 수 있으니까. 그러지 못하면 우리는 꼭 해야 했지만 하지 못한 말을 남기게 되고, 후회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작별인사를 망친 일이 오늘날까지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다. -p391~392

  

생과 사를 함께 했던 파커의 뒷모습을 보면서 울부짓는 파이의 모습이 선하다.

소년은 왜 울어야만 했을까?

이별 없는 이별을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를....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 슬픈 까닭은 이별 자체가 아니라, 작별인사조차 없는 이별로, 이별과 이별조차할 수 없기때문이다.

  

햇살에 일렁이는 푸른 바다처럼 작품 속에는 곳곳에서 깊은 철학적 사유와 은유들이 반짝거린다.

 

나는 며칠인지, 몇 주일인지, 몇 달인지 헤아리지 않았다. 시간은 우리를 갈망하게 할 뿐인 환영인 것을. 내가 살아 남은 것은 시간개념 자체를 잊은 덕분이었다. -p264

 

내 가장 큰 바람은-구조보다도 큰 바람은-책을 한 권 갖는 것이었다. 절대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가 담긴 긴 책. 읽고 또 읽어도 매번 새로운 시각으로 모르던 것을 얻을 수 있는 책. 아쉽게도 구명보트에는 성서가 없었다.-p286

 

상반되는 것 중 최악은 권태와 공포다. 우리 삶은 권태와 공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추다. -p298

 

잔잔한 바다와도 같은 작품은 식충섬에서의 일주일이 지난 후, 격하게 흔들리더니만 기어이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 속으로 독자를 집어던져버린다. 

이 정도면  반전이 아닌 사기(?)에 가깝다.

 

그리고...

자칫 볼거리 풍부한 해양모험소설로 치부될 수도 있었던 작품은 이렇게 해서 명작의 반열에 오른다.

 

"나는 두 분께, 그사이 227일 동안 일어난 일을 두 가지로 이야기해드렸어요."

"그랬지요."

"두 이야기 다 침춤 호의 침몰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어요."

"그렇죠."

"두 분은 어떤 이야기가 사실이고, 어떤 이야기가 사실이 아닌지 증명할 수 없어요. 내 말을 믿을 수밖에 없지요."

"그렇죠."

"두 이야기 다 배가 가라앉고, 내 가족 전부가 죽고, 나는 고생하지요."

"맞아요."

"그럼, 말해보세요. 어느 이야기가 사실이든 여러분으로선 상관없고, 또 어느 이야기가 사실인지 증명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묻는데요,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어느 쪽이 더 나은가요?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요, 동물이 안 나오는 이야기요?"

오카모토: "그거 흥미로운 질문이군요....."

치바: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요."

오카모토:" 그래. 동물이 나오는 쪽이 더 나은 이야기 같아요."

파이 파텔: "고맙습니다. 신에게도 그러길."

(침묵)

  

영화만 본 많은 사람들은 파이가 들려준 두 가지 이야기 중, 동물들이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를 진짜로 믿는다고 한다. 태평양에 표류하던 파이가 227일만에 멕시코에 도착한 후, 조사차 나온 일본인 오카모토와 그의 조수 치바씨에게 자신이 겪은 일들을 들려주는 과정에서 너무 끔찍해서 차마 하지 못하고 동물들이 나오는 것으로 바꾸어 이야기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정말 구명정에는 처음부터 동물들이 아니라 사람들이 탔을까?

다리를 다친 중국인 선원(얼룩말)과 그의 다리를 자른 프랑스 요리사(하이에나), 그리고 요리사에게 용감히 맞서다가 그에게 죽임을 당하는 파이 엄마(오랑오탄)와 그 요리사를 죽이는 파이(호랑이)....

 

 

무엇이 진실일까?

아니, 애당초 진실이 무엇이라는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

소설의 진위 여부를 찾아헤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으니 말이다.

 

 

그저,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이야기라고만 하겠다.

그렇지만, 믿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말도 꼭 덧붙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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