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증보판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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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 과학 분야에 선천적으로 취약한 내가 흥미를 보이는 유일한 분야가 있다면 생물 그중에서도 진화생물학이다.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 그의 <진화론>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책들이 출판 되었고, 이를 계기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제프리 밀러의 <연애> 등을 비롯해서 이쪽 분야의 책들을 꽤(?)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물론 나처럼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최재천 교수의 책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전중환의 <오래된 연장통> 역시 진화생물학(혹은 진화심리학)으로 분류될 수 있는 책이다. 즉, 동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행동 및 자연현상까지 진화론적으로 접근하여 해석하려는 이 책은 나름의 통찰력을 선사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였던 건 문학작품의 존재 이유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한 부분이었다.

 

이야기에 대한 별스러운 애착은 인간이 다른 진화적 적응들을 갖추다 보니 부수적으로 발현하게 된 부산물일 수 있다. 예컨데 우리의 마음이 진화한 소규모 집단에서는 누군가의 은밀한 사생활을 알아내는 일이 번식에 큰 도움이 되었다. (...) 자연선택은 자기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정보를 얻는 활동에서 짜릿한 즐거움을 느끼게끔 석기 시대의 우리 마음을 설계했다. 하지만, 대중매체와 과학 기술이 득세하는 현대 환경에서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현실 또는 상상 속 인물들의 사생활을 엿보면서 즐거움 그 자체만을 탐닉하는 현상이 뒷소문을 추구하는 적응의 부산물로서 생겨나게 되었다. 아니면, 이야기를 즐기는 성향 그 자체가 어떤 특수한 기능을 수행하게끔 정교하게 설계된 진화적 적응일 수 있다.(...)

 

이야기는 극중 인물이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고 어떻게 해결하는지 생생하게 재현함으로써 독자에게 유용한 가르침을 주게끔 설계된 적응이다. 즉 이야기는 삶의 모형이다. 생존과 번식이 결판나는 치열한 전장으로 투입되기 전에 이러한 모의실험이 굳이 필요한 까닭은 우리의 인생항로가 그만큼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p148~149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옛날 옛적부터 있어 왔다.

그러므로 우리가 책읽기를 싫어한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인류에게 '이야기'는 본능이다.

한편, 여성이 남성보다 책을 더 자주 사고 더 많이 읽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남성 작가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를 설명한 진화론적 관점이 흥미롭다. 제프리 밀러는 저서 <연애>에서, 여성은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는 반면 남성은 이야기를 하길 좋아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잘 하는 남자가 여성에게 선택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이야기를 많이 지어내는 쪽은 남자일 수 밖에 없노라고... 

 

이 책의 저자 역시 인간의 '웃음 본능'을 설명하면서, 여성은 웃기는 남성을 선호하는 반면 남성은 자기를 웃기는 여성보다는 잘 웃어주는 여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제프리 밀러의 가설과 맞아떨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남성은 이야기를 잘 지어내는 재주를 특화시키고 여성이 이야기를 잘 듣고 읽는 재주를 특화시킨 건, 좋은 이야기와 재밌는 이야기를 구분하고 선택하는 능력을 자연선택했기 때문이란다.

 

물론, 진화심리학과 진화생물학 및 진화행동학 등에서 인간의 마음과 행동이 어떤 초월적인 영혼이나 합리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선택된 결과일 뿐이라는 주장은, 20세기 초 인간 행동의 모든 원인을 '성'과 연관지었던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떠올리게 한다. 흥미롭지만 또한 그만큼 위험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생존과 번식'에 불리한 동성애의 비율이 돌연변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비율(1~10%)을 차지한다는 점은 진화생물학에서는 변변한 가설조차 없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과 행위를 무조건 진화론과 연관지으려는 태도에는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창조론를 창조학이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창조론은 종교의 영역일 순 있어도 결코 과학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종교는 인류의 생존과 번식에 어떤 역할을 했기에 자연선택되어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걸까? 

 

불투명한 단서로부터 내게 해를 끼치려는 의도를 지닌 행위자의 존재를 다짜고짜 가정하는 성향은 사악하고 지능적인 악령, 그리고 이로부터 사람들을 지켜 주는 자비로운 신에 대한 관념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 인지심리학자 파스칼 보이어에 따르면, 사람들은 아주 약간만 낯설고 이상한 것에 가장 관심이 가고 더 잘 기억한다. 반면에 시시하도록 정상적인 것이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이상한 것은 제대로 기억하거나 전파하지 못한다. -p218

 

'신이 실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신을 믿는다면 실재로 신이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나는 잃을 게 없지만, 반대로 내가 신을 믿지 않는데 실재로 신이 존재한다면, 나는 전부를 잃는 것이다.'

 

인간이 유신론과 무신론 사이에서 유신론쪽으로 더 기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실재로 인류의 조상은 길을 가다가 낯선 존재와 마주쳤을 경우, 일단 상대를 자신보다 강력하다고 전제한 후 잽싸게 도망감으로써 생존 확률을 높여왔다. 신처럼 '불가지론'에 대한 인간의 비과학적인 믿음과 복종 역시 진화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저자의 표현처럼 인류에게 종교란 부정할 수는 있어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인간은 백지 상태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다면, 본능 즉 직관은 이성적 판단, 즉 추론보다 앞선다. 설령 그것이 현대 과학에는 위배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인간의 경우 혐오감이라는 감정이 작동하여 병원체가 들어 있는 대상을 멀리하게 해준다. (...) 단순히 어떤 사람이 우리 집단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임을 알려주는 단서만으로도 그를 회피하거나 배척하는 기제가 작동한다. 내부인들끼리 뭉치며 외부인을 몰아내려는 심성이 어떻게 전염성 질병을 막아주는 방패가 될까? 답은 기생체와 숙주 사이의 공진화 군비경쟁에 있다. -p73

 

동물의 사체 섭취, 더러운 물체와의 접촉, 근친 상간,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 흉칙한 외모와 자극적인 냄새에 대한 거부 등등......

굳이 배우지 않아도... 법에 저촉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지 않아도...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들은 전통과 터부 등의 이름으로 불허되어 왔는데, 이는 전염병이나 병균을 멀리함으로써 생존에 유리하도록 설계된 우리의 마음 지도 때문이란다. 

 

여기에는 음식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향신료의 종류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많은 양을 사용하는 음식을 선호하는 지역일수록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온도가 높고 습해서 병원균에 훨씬 쉽게 노출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시아 국가가 서구에 비해 문화적으로 덜 개방적이고 더 폐쇄적인 것도 다양하고 많은 향신료를 사용하는 음식이 발달한 이유도 모두 진화론적으로 보면 전염병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니 흥미롭지 않은가.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자연 그 자체에 깃든 외부적 실재가 아니다. 잡식성 영장류인 인간이 오랜 세월 진화하면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던 특정한 환경을 잘 찾아가게끔 그 환경에 대해 느끼는 긍정적인 정서일 뿐이다. -p126

 

어째서 진화적으로 쓸모 없어 보이는 꽃에 매혹되었을까? 꽃은 오래지 않아 이 자리에서 과일이나 견과, 덩이줄기 같은 음식물이 나게 되리라고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꽃이 있는 곳에는 인간의 먹이가 되는 초식동물도 찾아온다. -p135

 

아프리카 사바나 풍경과 폭포 및 분수대 등등... 

이런 사진과 그림들을 보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이런 장소들이 먹이를 구하고 위험을 피하기 쉬우며 생존에 꼭 필요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지역으로 우리 마음 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꽃이나 나무에 대한 인류의 높은 호감도 역시 이들 지역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카페의 2층 창가 자리부터 손님이 차는 이유와 백화점 1층 정중앙에 주로 분수대가 자리하고 있는 이유 역시 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에 대한 인류의 동경과 모방에 다름 아니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인간도 역시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게 아무리 지고지순한 지위를 부여한다 한들, 기껏해야 '털없는 원숭이'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진화생물학과 진화심리학 등에 흥미를 갖는 이유 역시 진화론적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나는 내가 누구인지 궁금하기에 앞서, 내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더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인간은 역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탐구하도록 진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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