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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난 이 남자에 빠져 있다.
이름하여 마루야마 겐지...
칠순을 훌쩍 넘긴, 일본의 老작가다.
이 작가에 대해서 나는 이십대 시절 그의 첫번째 소설작품이자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여름의 흐름>을 인상적으로 읽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작품은 감옥에서 사형을 집형하는 사형집행자 이야기였던 것 같고...
그의 적잖은 작품들이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으며... 우리나라의 어느 시인(故 이문구시인이 아닌가 싶지만 정확하진 않다.)은 그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겐지에 울다'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는 풍문도 꽤 널리 퍼져 있다.
소설을 시(詩)처럼 쓰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의 작품은 읽기가 참 어렵다.
그런 그가 요즘 이웃나라 한국에서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전 TV의 심야 책소개 프로그램에서 그의 수필집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작품이 소개될 정도로...
이와 더불어서 책 제목만큼이나 저돌적인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라는 그의 또 다른 수필집이 시선을 끌었다. 사실은, 작년 가을부터 이 책을 읽고 싶었지만 평소 이용하는 도서관에는 소장되어 있지 않아 살짝 포기하고 있던 차에 이번엔 구입해서라도 읽겠다는 각오(?)로 수소문을 했고 마침내 읽고 말았다. 역시, 발품을 조금만 더 팔면 안되는 게 없거늘.... 늘, 그놈의 게으름과 자포자기에 발목이 붙잡혀 주저앉고 마는 게 문제다.
한마디로 이 책은 청춘들에게 '천기누설'과도 같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가 한국 사회에 눈높이를 맞춘 '청춘을 향한 고함'이라고 한다면,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는 일본 상황에 맞춘 일본 '젊은이를 위한 외침'이라 하겠다.
동물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자식에게 부양을 받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부모의 자식 사랑은 사실 노후 보장을 위한 겉포장에 불과하다는 일갈은 내 몸과 마음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부모란 이렇듯 애매모호한 존재다.
부모의 사랑에 거짓이 없다고 믿는 것은 부모 자신뿐이다. 인간이 아닌 동물들이 새끼에게 보이는 대가성 없는 사랑의 정반대 지점에 있는 이기적인 사랑. 안타깝게도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부모가 보이는 사랑의 진실이다. 오로지 자식을 어엿한 성인으로 키우는 것만이 목적인 부모는 너무도 적다. 더 나아가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앞으로는 네 힘으로 살아가라고 진지하게 가르치고, 자신들은 어떻게든 살아갈 테니 네 인생에만 집중하라고 충고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부모는 더욱 적다. 부모의 희생물로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자식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다 못해 자기 부모와 똑같은 부모가 되고 마는 자식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마루야마 겐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p20-
이 땅의 부모라면...? 특히, 자식을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하는 부모라면... ? 깊은 밤 홀로 깨어있을 때, 한번쯤은 스스로에게 솔직히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왜 자식을 낳았는가?'
'자식에게 바라는 건 정말 자식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나를 위한 것인가?'
겐지는 인생의 성인식은 '가출'로 시작해야 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둥, 너 하나만 보고 살아왔다는 둥.... 하는 부모의 만류와 땡전 한푼 없는 자신의 현실적 상황에 발목이 붙잡힌다면 이런 청춘은 영원히 독립적인 자유인이 될 수 없음을 명심하라는 준엄한 가르침과 함께 말이다. 아니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가 '집 나가면 개고생'하기 때문에 집을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참으로 정곡을 찌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다 큰 자식을 집에 붙잡아 두려는 건, 부모 뜻대로 조정하기 위함이고...
다 큰 자식이 스스로 부모집에 눌러앉으려는 건, 집 나가 개고생하지 않기 위함이고...
서로 이와 같은 계산이 맞아 떨어져 불필요한 동거가 장기간 지속되는 것이다.
한편, 국가와 회사에 대한 겐지의 관점 역시 두 무릎을 치게 만든다.
국민에게 이 세상이 사랑과 친절로 가득하다는 착각과 솜사탕 같은 가치관을 심은 장본인은 결국 탐욕스러운 자들의 집단에 지나지 않는, 국가라는 이름의 한 조직이다. 애당초 국가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국가를 위해 전심전력을 다할 고매한 정신과 능력의 소유자는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쩌면 존재할지 모른다는 환상조차 단 한순간도 품지 마라. 나라를 통치하는 자들은 국민이 국가의 정체를 단박에 꿰뚫어볼 만큼 현명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것이 본심이다. 그런가 하면, 너무 어리석어 평범한 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인간이어도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즉, 그들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어리석음과 노동의 정신에 반하지 않을 만큼의 현명함을 지닌 어중간한 국민을 이상적으로 여긴다. 또 그렇게 되기를 획책하면서 그 방침에 따라 세금을 쓴다.
-마루야마 겐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p60~71-
고용주의 목적은 고용인을 만족시키고 성장시키는 것에 있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 있다. 사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한다는 인사의 당연한 철칙이 올바르게 지켜지고 있는 직장은 극히 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의 잠재 능력을 간파하는 안목을 지닌 상사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능력 있는 부하에게 두려움을 느껴, 즉 자신의 지위가 흔들릴까 봐 겁을 먹고 질겁해 부하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을 확률이 훨씬 크다. 그런 세계다. 직장상사에게 부하란, 출세의 도구일 뿐이다. 노동자라는 호칭에 속아서는 안된다. 그 실질적인 처지는 바로 '노예'다.
-마루야마 겐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p99~104 中-
국가와 회사가 이렇다면 종교는 또 어떨까...?
상처입은 마음의 피난처가 되어주고... 상처를 치료해 준 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줄... 그런 자비심 가득한 신을 만날 수 있을까?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신이다.'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 역시 이 점을 거듭 역설한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어냈다. 인간의 나약함과 교활함에서 신이라는 환상이 태어났노라'고...
어이가 없고... 억울하고... 심지어 화가 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자꾸 고개 돌려 외면해봤자 자신의 모습만 더 초라해질 뿐이다.
인간 역시 자연계의 다른 생명체처럼 우연에 의해 이 땅에 왔고 정해진 운명에 따라 죽는 것 뿐이다. 애당초 거창한 신의 부름이나 의지 따위는 없었다.
사실, 우린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째서 나라에 애국하고 회사에 충성을 바치며 신을 찾아 나서는 걸까?
인간은 왜 영웅과 지배자와 강자를 원하는가.
인간은 모두 지배받고 싶어하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한시도 안심할 수 없는 이 세상을 자신의 판단과 결단과 실천으로 살아가기 괴로워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 고통을 누군가 대신 없애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 마루야마 겐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p61-
신을 모르는 철없는 어린 시절엔 부모에게 의지한다. 아이에겐 부모야말로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급적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최대한 늦춘다. 적당한 복종과 반항 그리고 부모의 비위를 맞춰가면서...
이게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집(부모)을 떠나 세상밖으로 나와서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부모를 대신하여 의지할 대상을 물색한다. 독재자라도 사이비 종교인이라도 상관없다. 나의 본질을 직시할 필요없이 삶의 안락함만 제공해준다면 기꺼이 영혼을 내어준다. 자유라는 이름의 영혼을....
일찌기 나는 독재자와 사이비 종교를 이끄는 리더가 아닌, 그들 주위에 모여있는 일련의 사람들의 정신 세계가 참으로 궁금했다. 그들은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걸까? 그들은 자신들이 떠받들고 있는 존재가 어리석고 무능하다는 걸 진짜 모르는 걸까? 아니다. 그들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 구호와 몸짓으로 또 다른 선량한 사람들을 선동하는 까닭은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쁜 지도자 못지 않게 소위 추종하고 옹호하는 세력과 가담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나쁜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들때문에 악이 유지, 확대된다는 점에 비춰볼 때 더 악랄하다고도 볼 수 있다.
자, 그럼 이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만 할까?
인간다움이란 지성쪽에 몸을 두는 것이다. 이는 감정과 본능에 충실한 삶과는 정반대의 삶을 의미한다. 감정과 본능에 따라 사는 것은, 요컨대 동물적인 삶의 방식이다. 동물다운 것을 인간답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p80~81
불안과 주저와 고뇌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살아 있는 한 그런 것들에서 헤어날 수 없고, 헤어나려 몸부림 칠 필요도 없다. 살아있으면서 절대적인 안녕을 얻으려 한다면, 살아 있되 삶을 내던진 것이나 다름 없다. -p127
직관(감각)에만 의지할 뿐 생각하기를 포기한 인간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셈이다.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는 아주 당연한 자각조차 할 수 없게 된다. 또 세상과 떨어져 있고, 진심이 변치 않는 성실하고 훌륭한 인물과 만날 수 없다. 따라서 경청할 가치가 있고, 생각하며 살도록 도와주며, 유익하고 위엄에 찬 말과도 조우할 일이 없다. -p196
마지막으로 사랑에 대한 마루야마 겐지의 생각은 '애절한 사랑 따윈 없다.'라는 단 한마디로 귀결된다.
국물도 건더기도 없고... 피도 눈물도 없다...
솔직히 말해서, 연애가 연애답게 느껴지는 것은 고작해야 서른살까지다. 그 이상이 되면 이미 연애와는 다른 것이 되고 만다. 물론 당사자의 생각은 다르다. 이것이야말로 어른의 사랑이라고 확신하고 자부심까지 느끼기도 하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그저 추잡하기만 한, 자신도 모르게 눈을 돌리고 싶어질 만큼 끔찍한 교미에 불과하다고 냉소할 뿐이다. 본인은 그런 상황에 만족하니 제삼자가 뭐라 말한들 소용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고작 그런 일이 아니면 인생에 변화를 줄 수 없는 것인가.
그 나이쯤 되면 그게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사람이 그렇게까지 추락하다니...
가정을 파괴하면서까지, 일자리를 잃어 가면서까지 해야 할 일인가.
그러려면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아도 좋지 않았는가.
-마루야마 겐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p165~166 中-
이제, 알겠는가...?
인생이 무엇인지...?
또, 인간이란 무엇인지...?
이 책에는 마루야마 겐지 선생만큼 나이를 먹지 않아도 불혹만 되면 누구나 깨닫게 되는 진실이 담겨 있다.
다만, 선생과 우리의 차이점이라면 그는 진실을 선택한 반면 우리는 침묵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왜냐고...?
그게 나의 안위에 편리하니까... 그래야 젊은 시절의 나처럼 어리석은 젊은이들이 더 이상 젊지 않은 나를, 떠받들고... 보필하면서... 자각도 하지 못한 채, 젊음을... 인생을... 탕진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