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오 쿠키를 먹는 사람들
리처드 프레스턴 지음, 박병철 옮김 / 영림카디널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참, 특별한(?) 책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책이 나온 1997년 당시 나는 이 책을 소개하는 기사를 접했을 것이다. 그리고 기사 속에서 미국 남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팔로마(스페인어로 '비둘기 장'이란 뜻)산 천문대에서 근무하는 천체물리학자들이 졸음과 추위를 몰아내기 위해 별을 관측하면서 커피와 함께 오레오 쿠키를 즐겨 먹는다는 걸 알게 되었을 것이다. 추측형을 사용한 건,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흐릿해졌기 때문에... ^^;

(* 참고로, 오레오쿠키는 미국 나비스코사에서 1912년부터 생산하는 과자다.)

 

바로 그 순간, 내 머리와 마음 속에서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후 오랫동안 나에겐 '오레오 쿠키를 먹는 사람들 = 천체물리학자 = 별 = 아름답다'라는 등식이 성립되어 버렸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각자 자신만의 별을 갖고 있으며 죽으면 그 별로 돌아간다고 믿게 되었다.  

 

그 후, 밤하늘의 별들을 올려다 볼때마다 나는 사물에 대한 아름다움을 너머, 사물을 향한 일종의 경외심을 갖게 되지 않았나 싶다. 

지구로부터 수억, 수십억 광년 떨어져 있는 천체에서 발하는 빛이 지구에 도달하려면 떨어진 그 거리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 눈에 비친 그 별빛은 지금으로부터 까마득히 먼 과거의 빛이다.

인간이 탄생하기도 훨씬 더 전에... 심지어 지구가 탄생하기도 훨씬 더 전에... 그 빛은 이미 '나'를 향해 출발했던 것이다....

 

그 뒤,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차례 이 책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싶다.

처음에는 내가 알고 있던 천체 지식들을 총동원하고 살짝 내 의견까지 곁들여서...

그만큼 난 이 책을 좋아했다.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다가 마침내 이 책을 구입해서 갖게 되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책만큼은 잘 읽게 되지 않았다. '지금 읽고 있는 책 다 읽고 나면 읽어야지'... '이번엔 꼭 읽어야지...' '이 계절이 지나기 전엔 꼭 읽어야지...' '올해가 다 가기 전엔 꼭 읽어야지...'

이렇게 십 수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난 이 책의 내용을 잘(?) 알고 있다고 철썩같이 믿게 되었더랬지...

 

그리고도 한참이나 세월이 더 흘러갔고...

이 책이 불행하게도 내 품을 떠나고 나서야, 나는 마침내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한번 잃어버린 사랑은 되돌이킬 수 없듯, 한번 내곁을 떠난 책을 다시 얻는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그러나 어렵사리 구한 책을 막상 두손에 펼쳐 들고 읽으려니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내용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난해하고 낯선 용어와 이론도 그렇지만 신문기자인 저자가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육하원칙에 따라 서술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나치게 과학적(?)이었다. 내가 '별'이라고 칭하는 것을 과학자들은 '항성'이라고 불렀다. 

 

과학은 사실을 추구하고, 문학은 진실을 추구한다고 했던가. 

사실과 진실 사이에 깊고 깊은 심연이 놓여있듯...  '별'과 '항성' 의 어감적 차이만큼이나 과학과 문학 사이에도 좁힐 수 없는 '강'이 존재함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이건 순전히 내 잘못이지 싶다.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서 지어내고 꾸며진 이야기들 탓(?)에 나는 읽으면서 여러차례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 책은 충분히 재밌고 쉽게 쓰여져서 출판되자 마자 베스트셀러였고 지금도 천체 분야의 명저로 손꼽힌다.

 

 

이 책의 주인공은...

1928년부터 1949년까지 무려 21년에 걸쳐 7층 높이의 크기로 만들어진 헤일 천체 망원경이라고도 하겠다.

아니, 아니다....

어쩌면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은 헤일 천체 망원경(직경 508cm)을 통해 보여지는 밤하늘의 수많은 천체들이라 하겠다. 

 

천체나 우주 물리 분야라고 하면 으레 인류의 미래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천체를 연구하는 건, 인류의 미래가 아닌 인류의 과거 심지어 지구 더 나아가 우주의 초기 탄생을 연구하는 것이다. 천체망원경을 통해 천체를  바라본다는 건 바로 과거를 바라보는 행위인 셈이다. 그리고 만물은 모두 죽은 별들의 잔해들이며, 인간 또한 예외가 아니란다. 그러니 인간은 별에서 왔다는 나의 상상은 옳았던 셈이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도 놀라운 일인가!

 

어디 이뿐인가.

한개의 항성(태양)과 아홉개의 행성(지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 천왕성 혜왕성 명왕성)으로 이루어진 태양계에 살고 있을 뿐인 인간이 태양계를 너머 은하, 그 은하 너머 우주까지 내다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고 놀라운 일이라 하겠다. 또한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이 수백 수천 수억 광년을 거슬러 올라가 까마듯한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관측한다는 사실 자체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우주의 드넓음과 신비로움에 압도당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아울러, 우주의 탄생과 진실에 조금씩 접근해가는 인간의 위대함에 숙연해지지 않았다면 이 또한 거짓말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어렵고 그래서 다소 지겨울 수도 있는 책이지만, 곳곳에 아름다운 문장들이 감춰져 있다.

마치 수많은 별들 속에 혜성이 감춰져 있는 것처럼...

 

 

- 이 망원경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던 어떤 사람의 자취입니다... p89

- 기계를 신뢰하는 인류의 완고한 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헤일 망원경에는 우주를 향한 인류의 열망과 두려움이 담겨있는 것이다. p131

- 팔로마 산에서 얼어죽지 않은 채로 새벽을 맞이하려면 오레오 쿠키를 먹어라. p144

- 그는 <몬테크리스토 백작> 속의 한 구절을 항상 마음 속 깊이 새겨두고 있었다. "인간의 모든 지식은 다음 두 마디로 집약된다.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p277

- 언젠가 인류는 행성을 소유할수도 있겠지만 별만큼은 결코 가질 수 없다. p317

 

 

 

 

+ )

 

오랫동안 좋아해온 짝사랑과 조우하는 기분은 어떤 걸까?

지금,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내멋대로 재구성되었던 상상이 현실이 되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격스러운...

 

그래,

우리는 영원히 사랑을 추구하겠지만, 사랑만큼은 결코 가질 수 없겠지...

인류가 언젠가는 행성을 소유할 수도 있겠지만 별만큼은 결코 가질 수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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