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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소수자들의 이야기 ㅣ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1
인권운동사랑방 엮음 / 오월의봄 / 2013년 4월
평점 :
이 땅에서 '남다름'은 차이나 독특함이 아닌, 차별의 충분조건이 아닐까 싶다.
'차이와 차별'
말 그대로 한긋 차이건만, 그 이면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공간'이 존재함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린 때때로 아무것도 모른 채 혹은 알면서도 그 '공간' 속에서 눈 뜬 장님이 되어 이리저리 헤매인다.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는 바로 그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 환한 조명등을 밝히고 확대경을 들이댄 작업의 결과라
하겠다.
그리고 그 결과,
드러나는 우리의 치부, 치부들...
성소수자, 외국인이주민, 비혼모/미혼모, 장애인, 여성과 남여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주로 '무시'하거나 '학대',
둘 중 한가지로 나타난다.
이들에게 무시나 학대가 가해지는 것은 이들이 위험해서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즉 스스로를 지킬 힘조차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놓고(?) 무시하고 학대한다.
이 과정에서 대중들은 두 눈을 꼭 감아 버린다.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아닌 척... 있어도 없는 척...
그저 불편하고 어찌할 수 없어서 두 눈 질끈 감아 버렸을 뿐인데, 개개인의 이와 같은 행동들은 차별의 고착화와 악순환, 규범화에 일조한다.
자기 자신도 언젠가 혹은 어디선간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더라도 여전히 차별에 두 눈 꼭 감을 수 있을까?
두려워서 혹은 모르거나 귀찮아서...
너와 내가 차별을 두 눈 꼭 감고 있는 가운데, 일부 용기 있는 사람들은 감은 두 눈 번쩍 뜨고는 현실을 직시하곤 한다. 그리고 직접 두
눈으로 본 것들을 눈 감은 대중들에게 말해준다.
우리가 두 귀를 막지 않는 한, 열린 우리 귀전에 울리는 그들의 목소리는 커다란 공명이 되어 세상을 바꾸는 신호탄이 되리라.
#-1 비혼모
저출산이 그토록 중요한 문제라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회재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라면 왜 승민을 비롯한 비혼모들은 아직까지도
복지제도의 공백과 차별적인 사회의 시선들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까? 애성애 결혼제도와 소위 '정상가족'내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의 재생산권 실천과
출산은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헌신과 책임으로 인정받고 지지받지만, 남성 가부장의 승인 없는 아이를 낳음으로써 모(母)가 되고자하는 여성은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받는 사회, 이것이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p34
#-2 결혼이주여성
'다문화'가 하나의 유행처럼 한국 사회에 등장하면서 이주여성 관련 프로그램이 급증했다. (...) 대표적인 것이 어느 은행에서 주는
'다문화가정대상'인데, 2006년 결혼해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째 되던 날 남편이 사망하였고,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그녀는 신장병을 앓고 있는 시어머니와 정신지체 1급 시숙을 모시고 살면서, 남편이 남긴 빚까지 짊어지고 억척스럽게 생계를 이어가며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했다고 한다. '다문화가정 대상'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전통적인 효부상에 가깝다. 이 상은 한국 사회가 바라는
결혼이주여성의 모습을 함축한다. 서구 중산층 페미니즘 물결의 영향을 받아 '드세진' 한국 여성에게서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순종성과 전통적
여성상을 이주여성들에게 기대한다. -p87
#-3 성소수자
사회적 커밍아웃과 오랜 인권 활동을 통해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성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별종들'일 뿐이며, 가려진 존재댜. (...)연분홍치마의 커밍아웃3부작 가운데 마지막 작품인 <종로의 기적>의 주인공들은 관객들에게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 했다. "성소수자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거주하거나 일하는 공간에서 누군가 커밍아웃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곳은 아마도 성소수자들에게 무척이나 차별적인 공간일 것입니다." -p113~114
#-4 이주노동자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가난한 것도 아니고 또 모든 빈곤의 원인이 이주로 인한 것도 아니지만,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과
빈곤의 얼굴을 공유하며 새로운 빈곤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은 이주 문제와 빈곤 문제의 끈끈한 화학적 결합을 예고한다. (...)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하나의 집단으로 인식되는 것 자체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의 존재를 가늠하게 해준다. -p137~138
#-5 AIDS감염자
사실 내가 떳떳하게 나설 수 없는 게차별이거든. 내가 당당하게 나가서 내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사회가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들잖아. 내가
내 테두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사회가 그런 테두리를 만들고 있다고 있다고. 어떤 사람들의 목소리를 꼭 강압적으로나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만 차별이
아니야. 다 자유롭게 다루지만 스스로를 어떤 테두리에 속하도록 몰아가지. 너도 생각해봐. 직장에서 자기가 감염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법적으로는 해고할 수 없게 돼 있지. 안전장치는 돼 있어. 그런데 차별이라는 건 보이지 않는 거야.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
같은 거. 목소리를 내려면, 진짜 어떤, 한 사람이 인생을 걸고 해야 되는 거야. -p180
#-6 십대 레즈비언
서윤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조롱하고 드러내는 또래들과 선생님이 있던 학교에서 일상적인 괴롭힘에 직면해 있었다. 침묵과
무시라는 대응 전략을 구사하다가 그 전략으로도 견디지 못하는 감정적 상태에서 스스로 학교 밖으로 걸어나왔지만 사람들은 학교 밖 청소년을 낯선
존재로 여기며, 그들에게 의아하고 불편한 시선을 던진다. 서윤은 학교 안에서는 성정체성에 가해진 괴로움을 견뎌야 하고 학교 밖에서는 불편한
질문과 시선을 감당해야 했다. -p210
#-7 비정규직 남여 노동자
똑같은 공고를 나왔어도 사무직이냐 생산직이냐에 따라 달라진 대우와 열등감, 전문대를 나온 동료에 대해 자신도 모르게 느꼈던 차별적인
생각이나, 교회에서 만난 같은 또래의 대학생들 사이에서 느끼는 문화적 이질감에 대한 영석 씨의 이야기는 차별이 얼마나 삶의 공간을 오가며
치밀하게 엮여 있는지 확연히 보여준다. 살아온 환경, 집안의 경제적 조건이나 수입에 따라 여가도, 연애도, 즐기는 문화도 모두 달라진다.
고등학교를 나와 기술을 가진 남성 비정규직 노동자 영석 씨와 학업도 제대로 못 마치고 평생 가족들을 돌보며 살아 온 나이 든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명희 씨의 삶은 또 얼마나 다른가. 영성씨와 명희 씨가 만난다면 무엇에 대해 함께 싸우고, 무엇을 위해 서로 연대 해야 할까.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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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같은 이야기지만 현실이요, 또한 사실이다.
이에 대해, 작업을 마친 활동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차별은 소설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차라리 소설이 될 수 없는 이야기다. 너무나
평범한데, 너무나 평범하지 않아서...'
이처럼 '너무 평범한, 그렇지만 너무나 평범하지 않은' 차별의 부름에 어떤 목소리로 응답할지는 또 다시 우리 개개인의 몫으로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