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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2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평점 :
올해 목표 중 하나인 '한달에 한권 고전 읽기' 프로젝트(?)를 힘겹게 이어가고 있다.
주로 제목은 어렸을때부터 익숙하건만 도무지 내용이 뭔지 모르거나 알쏭달쏭한 고전들을 섭렵해보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고전보다는 신간을 찾게 되고, 무엇보다도 고전이라 불리우는 것들이 하나같이 분량이 많다. ㅠㅠ
미국의 마트 트웨인과 함께 찰스 디킨스는 19세기 영문학의 거장이요, 현대문학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유명하다.
그의 단편 <크리스마스 캐롤>은 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을 뿐만 아니라 단골 시나리오라서 다들 친숙할 것이다. 암튼 그의 대표작들인 <두 도시 이야기> <데이비드 코퍼필드> <올리버 트위스트> 그리고 <위대한 유산>등을 모르고서는 현대 영미문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저 문학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현대 서구 문화의 토대라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단순히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헐리우드 영화만 보더라도 원전이 영국 문학작품인 경우는 셀 수도 없이 많다. 해리포터 시리즈와 반지의 제왕 등 환타지물들과 범죄, 추리물의 거장 아가사 크리스티까지 모두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 영국 문학과 맞닿아 있다.
아, 부럽다....
서론이 길었지만 결론은 이런 이유들로 인해 최근에 찰스 디킨스 작품을 읽었고 앞으로도 읽어야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ㅋㅋㅋㅋ)
예상했던 대로 작품은 대단히 교훈적이다.
등장인물들의 얽히고 섥힌 '인연'들과 '반전' 등등... 스토리는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불필요한 묘사와 등장인물을 통한 '해설'이 너무 단조로웠다.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인과 악인의 대립 구조를 통해 '청교도 정신'과 '신사도'를 강조한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요약하면,
어린 주인공 핍은 부모를 일찍 여의고 누나와 매부에 의해 성장한다. 누나는 비록 강한 성격의 드센 여자였지만 동생과 가족을 끔찍히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그 드센 성격이 불러온 불운으로 목숨은 건지지만 뇌를 크게 다쳐 침대에 누워서만 지내다가 세상을 떠나고 만다. 한편, 그녀의 남편이자 핍의 매부인 대장장이 조는 다소 묵뚝뚝하고 무식한 인물이지만 자신의 신분에 맞는 자족적인 삶에 만족할 줄 알았으며, 무엇보다도 핍에 대한 우의와 애정을 지키는 숭고한 인물이다. 그리고 총명한 여자인 비디는 핍을 좋아했지만 핍이 '위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런던으로 신사가 되기 위해 떠나자 그를 보내준다. 뿐만 아니라 핍의 병든 누나를 돌봐주고 마침내 자신과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조와 결혼을 한다. 조는 아내인 핍의 누나가 죽자 자신을 대신하여 아내를 돌봐준 비디와 결혼을 한다. 나이차이는 상당했을 듯...
반면, 콤피슨과 올릭(조의 대장간에서 일하던 인부로 핍의 누나를 뒤에서 공격하여 장애를 입힌다)은 전형적인 악인이라고 할 수 있다. 콤피슨은 헤비샴의 배다른 남동생으로 헤비샴의 약혼자와 결탁하여 헤비샴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아벨 매그위치를 범죄의 길로 인도한다. 그의 사악함은 결국 아벨의 목숨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 앗아가고 만다.
이 세상엔 용서받을 수 없는 유형의 인물도 있는 법이다.
한편, 자신의 슬픔을 에스텔러에게 투영시키고 핍에게 착각을 불러일으킨 헤비샴이라는 인물은 비록 악인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타인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실패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헤비샴처럼 핍을 통해 대리만족을 추구했던 아벨 매그위치에 대해서는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짓지 어렵다. 그의 선함이란 비록 하층민으로 살아오면서 어려서부터 사회의 냉대와 학대를 받았지만 자신에게 선의를 베푼 소년에게 '위대한 유산'으로써 선의에 보답하려했다는 점이리라.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행동은 자신이 결코 이룰 수 없었던 희망사항을 소년 핍을 통해 대리 만족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순수한 의도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편, 주인공 핍은 에스텔러를 만난 후부터 그녀에 대한 사랑-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을 키워간다. 그래서 자신의 낮은 사회적 지위와 가난하고 무식한 자신의 가족(매부와 누나)을 부끄러워하면서 신사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품게 된다. 신사가 되기만 한다면 에스텔러의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뜻밖에도 '위대한 유산'이 상속되면서 핍은 꿈에도 그리던 신사가 되기 위해 런던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렇지만 영국의 상류사회 속에서의 핍은 비록 옷차림과 행동거지는 신사의 그것이었을지 몰라도 진정한 신사는 결코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에게 위대한 유산을 물려주려 한 사람이 예상했던 헤비샴 부인이 아니라 범죄자인 매그위치라는 사실을 알고는 갈등하다가 그를 보호해주고 국외로 탈출시켜 목숨을 구해주고자 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신사로 거듭나게 된다.
반면, 처음부터 끝까지 진정한 '신사'라 할 만한 인물은 핍의 매부인 조와 친구인 허버트라 하겠다.
비록 허버트는 핍과의 첫만남에서 발생했던 싸움에서는 보기좋게 패배했지만 외모와 지위라는 배경에 미혹된 사랑을 선택한 핍과는 달리 성품을 보고 사랑을 할 줄 아는 인물이다. 이 점에서, 허버트는 조 그리고 비디와 동급의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인물로는 제이거스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웨믹이다. 그는 직장과 가정에서 철저하게 이중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그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혹은 '장악')하는 현명함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의도를 알 수 없는 선의적 행동을 한다. 이 밖에도 주인공이 아니면서도 인물과 인물을 이어주고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제이거스라는 인물 역시 나의 시선을 끌었다. 그에게선 마치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의 시선이 느껴진다. 이런 점에서 제이거스는 작가의 화신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작품 속 여성 인물들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하나같이 비정상으로 그려진다.
외모가 추하거나 성격이 거칠지 않으면 요조숙녀 둘 중 하나로 그려진다.
그 당시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하고 요구했던 역할이라 하겠다. 즉 인류에게 꼭 필요한 출산과 육아 및 가정 살림을 담당하며, 남성이 자신의 삶을 살고 꿈을 이루도록 철저하게 봉사하고 보조하는 역할들 말이다.
2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여전히 여성에게는 가혹하고 불리한 것 같다.
찰스 디킨스와 비슷한 19세 초중반에 활동했던, 역시 영국의 여류작가 샬롯 브론테는 '커러 벨'이라는 남자이름으로 <제인 에어>를 발표해야만 했다.
섬세한 심리묘사로 유명한 그녀의 작품들은 당시 여성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랑에 목숨 거는 상류층 여성 아니면 엄청난 노동에 시달리는 하층민 여성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작품 속 주인공 '제인'는 오히려 당시 사회가 부여한 여성상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발표되자마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명전'의 반열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점이 역설적이게도 여성으로 태어난다는 건 희생과 헌신이라는 걸 말해준다.
여성이란 바로 희생과 헌신의 또 다른 이름에 다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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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나는 왜 바로 윗 문장에서 'ㅡ었'이라는 과거형 어미를 사용한 걸까...?
오늘날 사회는 더 이상 '여성'이란 희생과 헌신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기 때문일까....? 아님, 과거 한때의 '흑역사'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희망사항이라도 투영시켰기 때문일까...?
고전을 읽으면 사고력을 키워준다고 하는데, 이 책 정말 고전임에 틀림없다.
그저 소설책 한권 읽었을 뿐인데, 내 생각은 어느덧 여성주의에까지 뻗어나가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