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아사다 지로의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은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일곱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작품집이야. 

다 읽고 난 지금은...

뭐랄까,,,

마치 천둥번개 치는 날 역사 선생님을 조르고 졸라 이야기 한조각을 얻어 들은 것 같은 기분 같은 거.  딱 그런 느낌인 것 같아...

 

어딘지 모르게 작가 특유의 스잔함이 배어 나는,,, 나름 괜찮았어...

다만, 미야베 미유키의 <괴이>라든지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라든지 하는 작품집들과 소재와 주제가 겹쳐서 본의 아니게 비교하면서 읽게 되었지...

 

개인적으로 난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이 훨씬 더 재밌는 것 같아. 감동도 더 크고... 소재도 다양하며... 이야기 전개 방식도 훨씬 더 세련되었지...

 

근데 어째 이렇게 쓰고 나니 왠지 찜찜한 걸...

그동안 아사다 지로 좋아한다고 사방팔방 소문 내서 다들 알고 있을 텐데...

 

'이거, 뭐야? 언제는 아사다 지로 작품은 사랑입네 어쩝네 호들갑을 떨더니만...'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걸...?!

하지만, 글쎄 그게 그렇더라구... 

2000년대 초반,

아사다 지로 단편집들을 접했을 때의 감동은 여전히 기억에 생생하지만, 그로부터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의 또 다른 작품집을 읽었을 때는 그 느낌 그 감동이 아닌 걸...

이걸 내 탓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아니야...

사람 마음은 이렇게 변덕스럽고 시시각각 변하는 법이지...

사랑도 마음이 하는 거야...

그러니까 사랑도 변하지...

책에 대한 느낌이 변하는 거랑 똑같아...

그냥 그런거야...

 

 

자, 그럼 다시 작품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일곱 편 중, 첫번째 작품과 마지막 작품은 마치 액자소설 혹은 연작 단편이라고 할 법 한 것 같아.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모님과 엄마와 단 둘이 떨어져 사는 외로운 소년이 나오는데, 그들의 상황과 모습이 작품 속 이야기들과 잘 어우러져서 더한층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것 같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연로한 이모님은 어린 시절 본인이 직접 듣거나 보았던 이야기들을 방학을 맞이하여 본가로 놀러온 어린 조카들에게 들려주는데, 그게 참 하나같이 기가 막히는 이야기들이었지...

 

그러니까 주름살 자글자글한 이모님이 이불을 뒤집어 씌고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은 조카들만 했을 때였지...

어린 나이에 겪었기에 충격도 컸을 법하고...

어쩌면 어린 나이였기에 옳고 그름을 어른보다도 더 명민하게 구분할 수 있었던 거고...

 

암튼, 내 생각은 서양의 좀비나 귀신과는 달리 동양의 귀신들은 어딘지 모르게 어수룩하거나 제각각 사연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무턱대고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나름 슬픈 곡절로 인해 혼령이 되어 저승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이승을 헤매다가 사람들 눈에 띈 거지... 때론, 원한을 풀거나 복수를 하기 위해서  때론 선량한 사람들을 지켜주기 위해서 말이야...

 

그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나 첫번째 작품인 <인연의 붉은 끈>이 아닐까 싶어...

정말이지 가슴이 미어지는 줄 알았어...

 

돈으로 사고파는 몸뚱이의 여자는 인간이라기보다 물건이며 노예였다. 돈으로 팔려갔을 때에 부모와의 인연이 끊겼고, 유곽에서 밤도망을 친 것에 의해 포주와의 인연도 제 손으로 끊어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붉은 인연의 끈도 남자의 죽음에 의해 끊겨버렸다. 이 사건에 관여했던 사람들은 비정했던 것이 아니라 여자와는 어떤 인연의 끈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이모님은 등뼈가 부러질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 고개를 돌려 아이들의 잠든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너는 꼭 네 어머니 곁에 있어줘. 남들이 뭐라고 하건, 네가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더라도, 네 어머니의 손은 놓지 마라."

-아사다 지로, <인연의 붉은 끈> 中-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목숨을 끊으려고 산속 산장을 찾아 들어가 약을 먹었는데... 그만 남자만 죽고 여자는 목숨이 붙은 채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그런데 말이야. 사람들이 어떻게 했는지 알아?

산장 여관에 숙박하고 있던 의사의 도움으로 목숨을 살려보려다가 안되니까 그냥 여자의 숨이 저절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거야. 죽은 남자의 옆에 누운 채... 사람들이 자신을 죽은 사람 취급하는 가운데... 여자는 꼬박 나흘을 있다가 홀로 떠나지... 

 

그 모진 고통을 어떻게 참아냈을까...?

교제를 극구 반대하던 남자의 부친이 찾아와서는 아들의 시신을 거두어 가면서 숨을 헐떡거리는 여자을 내려다보았어... 부모 입장에서 보자면, 참 억장이 무너졌을 거야...

 

여자는 남자의 부친을 보자마자 두 눈을 번쩍 뜨고 힘겹게 입술을 움직였어...

살려달라고 목숨을 구걸했을까...?

아니야. 어린 이모님이 보기에도 그건 분명 '용서해 주세요'였어...

그런 그녀에게 남자의 아버지가 뭐라 했는지 알아?

이 또한 어린 이모님이 몰래 숨어서 똑똑히 보고 들었다고...

 

"너도 어서 죽어라!"

 

 

한편, 이 작품과 연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여우님 이야기>도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서우면서도 묘하게 아련하고 애잔하지...

 

여우 귀신이 씌인 어린 것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른들 눈엔 몹쓸 여우 귀신으로만 보였겠지만 동년배인 어린 이모님의 눈에는 배가 고파 힘겨워 하는 불쌍한 애기씨만 보였을 터...

 

보는 관점에 따라선,

귀신도 귀신이 아닌 사람이고... 사람도 사람이 아닌 귀신인 거고...

 

세상은...

그래서 더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건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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