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줌파 라히니는 인도계 미국인이다.

<저지대>는 그녀의 두번째 장편이라고 하는데 분량이 만만찮다. 무려 500페이지가 넘으며 70여년이라는 긴 세월을 다루고 있지만 오히려 등장인물은 열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작품은 영국으로부터 막 독립한 인도의 혼란한 정치적 상황을 날실로, 수바시와 우다얀 형제의 일대기를 씨실로 꼼꼼히 엮어진다.

 

독립 후 좌우 이념 대립이라는 현대사를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들 형제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공산주의자가 된 동생(우다얀)과 대학졸업후 미국으로 건너가 학자가 된 형(수바시)...

그리고 이 둘과 각각 시차를 두고 결혼한 여인(가우리)의 이야기는 평범한듯 평범치 않고, 비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사실적이다.

 

이념과 사상에 경도된 우다얀은 신념과 열정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고, 비겁했던 수바시는 동생에 대한 사랑(혹은 '속죄'?)으로 동생의 여자와 조카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다. 

 

그리고...

사랑을 위해 기꺼이 무슨 일이든 했던 가우리는 사랑(남편)을 잃고 나서야 진실을 깨닫는다.

사랑이란, 때론 얼마든지 무책임할 수 있으며 타인의 삶에 예측할 수 없는 폭력이 된다. 그리고 그걸 깨닫는 건 언제나 너무 늦은 순간임을...

 

 

역자처럼 나 역시 처음엔 모성애조차 거부하는 듯한 가우리의 모습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랑했던 남편이 세상에 남겨주고 떠난 유일한 혈육에 대한 지나친 쌀쌀함과 학문적 성취를 위해 가정을 저버리는 이기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 모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 수바시를 배신한 것 등등...

그녀의 행동은 용서되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주인공들의 삶이 종착역으로 향해 갈수록 이해불가 해독불가였던 그녀가 조금씩 이해되기시작했다.   

그녀의 혈육에 대한 냉정함과 가족에 대한 이기심과 심지어 성적인 일탈 등은 모두 자신을 배신한 사랑에 대한 자기학대식 저항이었음을... 

 

그러나 그녀는 과연 알았을까?

상처받은 자신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선택이 또 다른 사람에겐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는 걸...

 

 

화해의 여지를 남겨두긴 했지만 진정으로 가족간 친족간 사랑을 나누기엔 주인공들에게 남겨진 시간이 터무니 없이 짧아 보인다.

어쩌면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서로를 오해하고 원망하다가 각자의 삶을 마무리할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그들의 지나온 과거일뿐이다.  작가의 말처럼 인간은 예측가능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 딱히 극적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예상했던 대로 흘러온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내 미래를 예측하고 심지어 재단하려고 한다.

 

'우리가 이처럼 스스로를 예측할 수 없으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하는 건, 자신조차 스스로를 예측할수 없다는 낭패감과 불안감의 발로는 아닐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