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소시오패스 - 차가운 심장과 치밀한 수완으로 세상을 지배한다
M. E. 토머스 지음, 김학영 옮김 / 푸른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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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무서운 책을 읽었다.

소시오패스(sociopath)가 직접 쓴 소시오패스에 대한 책이었다. 

 

저자는 백만 명 이상이 방문한 블로그 소시오월드닷컴의 운영자로 M.E. 토마스라는 이름은 물론 당연히 가명이다. 저자에 대해 공개된 건, 성별과 나이 그리고 종교와 직업 정도다.

 

내 호기심을 끌었던 건, 저자의 성별이 뜻밖에도(?) 여성이라는 점과 그녀가 금욕주의로 유명한 몬르몬교도라는 점이었다.

 

여기서 잠깐 소시오패스에 대해 언급하자면,  소시오패스는 사이코패스(psychopath)와 함께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일컬으며, 양자의 차이는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굳이 구분하자면, 사이코패스는 범죄 용어로 자주 등장하여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반면, 소시오패스는 드라마나 영화 속 캐릭터 등을 통해 최근에야 알려지기 시작한 용어라고나 할까? 다만, 내가 보기엔 사이코패스는 잔악한 범죄자의 전형으로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반면, 소시오패스는 '멋있고 쿨한 성격'으로 미화된 경향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전형적인 특징은 '공감 능력의 결여'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입장 등에 대해서 느낄 수 없고 느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은 극단적으로 이기적이며 대인관계를 이용하는데에 능숙하다. 공감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타인의 감정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하여 거짓과 위선으로 타인의 행동을 조정한다. 

 

클렉클리는 사이코패스를 겉으로는 다른 사람들처럼 느끼고 소망하며 기대하고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탈월한 능력을 갖춘 반사회적인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사실상 사회에서 그들을 분간하기는 어렵다. 사이코패스는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에 탁월하다. 클렉클리가 말하는 사이코패스는 비범하리만큼 매력적이고 위트가 있다. 또한 차분하면서도 말이 유창하고 절박한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물론, 이처럼 '온전한 정신의 가면' 뒤에는 거짓말쟁이, 교활한 조종자, 책임감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이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는 사람이 숨어 있다. 충동적이고 변덕스러워 잘 흥분하고 똑같은 실수를 여러 번 반복하는 사람, 자아도취에 빠져 감정적으로 진정한 유대감을 형성하지 못하고 문란한 성생활을 하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대개 자연스러운 감정을 조악하게 모방한다. 클렉클리는 이 독특한 인격적 특징의 조합은 사이코패스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범죄의 세계에서 악명 높은 사람들의 특징과도 일치한다고 인정했다.

나는 반세기도 훨씬 전에 쓴 클렉클리의 임상학적 프로파일보다 더 내 안의 소시오패스를 잘 설명한 글을 어디서도 찾지 못했다.

-M.E. 토마스 <나, 소시오패스> p55~56 中-

 

그런데 불행하게도 무한경쟁사회에서는 소시오패스의 특성들이 탁월한 성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사람들을 정리해고해야 하는 기업의 CEO... 

롤러코스터를 타는 객장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어마어마한 투자를 할 수 있는 펀드매니저...

의뢰인의 유무죄 여부는 중요하지 않고 얼마나 교묘하게 배심원과 판사의 공감과 동정을 얻어내느냐에 집중하는 변호사...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외과의사와 인정사정 보지 않고 빚독촉을 하는 채권추심원...

그리고 포커패이스에 능해야하는 운동선수와 달콤한 말로 대중을 선동하는 일부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까지...

 

이 책의 저자 역시 로스쿨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로펌회사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근무하다가 현재는 법학과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30대 초반의 새파란 나이에 그것도 보이지 않는 성차별을 극복해야하는 여성으로서 말이다.

 

이 쯤해서 고백해야겠다.

솔직히 나,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게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공부하지 않아도 우등과 수석을 놓치지 않았으며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에서 유일한 여성 드럼 연주자로 활약하다가 충동적으로 타악기를 전공으로 선택한 뒤, 대학 졸업후 빈둥거리다가 남들은 죽도록 공부해야 합격한다는 명문 로스쿨에 들어가는가 하면, '난다 긴다' 하는 수재들을 제치고 우등 졸업과 동시에 LA최고의 로펌에 신참 변호사로 입사한다. 그런데 일이 재미없어서 회사 경비로 테니스 레슨 비용을 결재하는 등 악행을 일삼다가 2년만에 해고된다. 그리고 대학교수로 화려하게 부활....

 

나는 필요하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삶의 성공 지표를 손에 넣었다. 시험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고 이력서는 완벽했다. 내 출세 곡선은 그야말로 눈부실 지경이었다. 사기처럼 보여 더 눈부셨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그런 게임을 좋아했고 어렸을 때도 전 과목 A학점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를 짜릿하게 만든 것은 A학점을 받을 최소한의 노력의 선이 어딘지 찾는 일이었다.

변호사가 되는 것도 똑같았다. 애초에 나는 진심으로 변호사가 될 마음이 없었고 그저 변호사처럼 연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p55~56 中-

 

소시오패스 기질은 내게 타고난 경쟁적 이점이다. 뇌에 독특한 사고방식이 내장되었다는 말이다. 나는 내 능력을 확신한다. 또한 나는 집단 내에서 영향력과 힘의 흐름을 결코 놓치지 않은 매의 눈을 갖고 있다. 덕분에 중대한 위기가 닥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장담컨대 세상에는 소시오패스에게 유리한 일이 매우 많다. 소시오패스인 나는 대중 앞에서의 연설이 두렵지 않고 감정적 폭식을 할 가능성도 별로 없다. 가끔은 내게 공포나 감정이 있는지 나조차 모를 때가 있지만 그런 것이 보통 사람과 달리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두려움이 없고 확신에 가득 찬 모습, 카리스마, 무자비함, 뛰어난 집중력처럼 21세기에 성공의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특질을 보이는 소시오패스는 성공 확률이 높다. 나는 이러한 특질을 이용해서 부적응 어린이에서 재능있는 연주자로, 성공한 법학도로, 두둑한 연봉을 받는 변호사로 계층 이동을 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특질이 장차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M.E. 토마스 <나, 소시오패스> p219 中-

 

게다가 그녀는 스스로 밝히길 타고난 미모는 아니지만 반짝이는 눈동자와 호기심 어린 표정 그리고 새하얀 이가 보이도록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수준높은 철학과 미학을 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윈드 서핑 등 악기와 스포츠에도 능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단연코 눈에 띄는 존재였다고 한다.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이성이든 동성이든 그녀에게 반해서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복종하는 사람들을 일일히 손으로 열거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단다.

 

사랑은 어려운 속임수가 아니다. 섬세함 같은 건 없어도 상관없다. 사람들은 사랑에 너무 굶주려 있기 때문에 평범한 술수, 즉 가벼운 접촉, 감정이나 관심을 표현하는 모호한 몇 마디, 헤어질 때의 열정적인 포옹 한 번이면 충분하다. 드라마 한 편만 봐도 사랑을 알 수 있다. 덧없는 탓에 세상에서 가장 감질 나는 것이 사랑이란 사실을 말이다.  (......)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아무라도 사랑할 수 있고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을 한동안(하룻밤, 일주일 혹은 몇 주라도)만이라도 삶의 이유로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수단에 비해 사랑이 더 많은 힘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을 더 많이 이용할 수는 있다. 사랑에는 당길 수 있는 지렛대와 누를 수 있는 버튼이 많고 방법도 무한하다. 사랑은 내가 일방적이고 직접적으로 고통을 야기했다는 씁쓸한 기분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나는 그들을 조종하거나 속였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 M.E. 토마스 <나, 소시오패스> p295~302 中-

 

 

이처럼 그녀는 고백과 변명 사이를 교묘하게 왔다갔다 한다.

심지어 그저 재미삼아 타인의 인생을 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살인이나 기타 치명적인 불법행위를 단 한번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을 강변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학교 선생님이 자신에게 모욕감을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선생님을 아동성희롱범으로 몰아 고소한다든지, 자신에게 빠진 남자를 꼬드겨 그 남자를 짝사랑하는 또 다른 여자에게 거짓 고백을 하게 만들어 그녀를 정신적으로 무너뜨려놓고도 일말의 반성이나 후회는 없다.

 

왜?

그녀는 소시오패스니까... 

 

특히, 나는 대다수 소시오패스들이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을 고려하여 자신의 성향을 부인하거나 감추고 싶어할 때 그녀는 당당히 소시오패스 관련 블로그를 오픈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넘치는 자신감과 우월감...

남앞에서 주목받고 싶어하는 욕구...

자신들은 비정상적인 뇌구조를 타고나서 어쩔 수 없다는 변명...

소시오패스를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것은 만인의 자유를 위해서도 옳지 못하다는 논리...

 

(신이시여, 이들을 어찌하시렵니까?)

(이들을 기어이 인류의 'X맨'으로 만드시렵니까?)

 

 

이기적인 소시오패스적 성향이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생존에 훨씬 더 유리하다. 그래서 어쩌면 소시오패스적 DNA가 끈질지게 살아남아 후손에게 유전되고 또 유전되어 먼 미래에 현생 인류를 대체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불을 사용할 줄 알았으며 혹독한 빙하기에도 살아남았던 네안데르탈인들이 자신들보다 훨씬 미개했던 현생인류에게 멸종당했고, 고도로 발달된 제국을 만들었던 잉카와 마야인들이 유럽인들에게 멸종되었듯이 말이다.

 

전체 인구의 4%, 즉 스물 다섯 명 중 한명이라는 그들...

지극히 소수여서 우려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도 인간이므로 다수로부터 이해받고 심지어 보호받아야 하는걸까?

인간에게 부여되는 생존추구권과 행복하고 사랑할 권리를 그들에게도 똑같이 부여해야 할까? 

 

이런 질문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얼마전에 본 영화의 한장면이 떠오른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에서 유인원의 우두머리 시저에게 총을 쏜 후 반란과 전쟁을 일으킨 코바가 인간의 도움으로 살아난 시저와 마지막 대결을 벌인다.

까막득히 높은 철제 빔에 간신히 매달린 코바가 마지막으로 시저의 양심에 호소한다.

"Apes do not kill Apes.(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

 

평소 자신의 신념이 담겨 있는 이 말을 들은 순간, 시저의 눈빛이 잠깐 흔들린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서 꼭 붙잡고 있던 코바의 손을 놓는다. 

"You are not Apes.(넌, 유인원이 아니다)"

 

 

소시오패스에게는 심장은 있지만 양심은 없다.

 

양심이란 때론 거추장스러워서 휴지조각처럼 내던지고 싶은 것이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반드시 부여잡아야하는 인간의 마지막 감각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양심을 일컬어 오감과 육감에 이은 제7감각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제 인간(human)을 정의하는데 있어서,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거나 직립보행을 한다거나 하는 특징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 바로 양심의 유무를 포함시켜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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