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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의 매 - 시그마 북스 024 ㅣ 시그마 북스 24
대쉴 해미트 지음, 김희균 옮김 / 시공사 / 1996년 9월
평점 :
절판
Q: 대쉴 해미트? 그는 누구인가?
A: 레이먼드 챈들러와 더불어 하드보일드의 대가. 1894년도에 태어나 1922년도에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서 20년대 후반 탐정소설로
명성을 쌓음.
<몰타의 매>는 1930년도에 출간되었으니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기에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작가로서 최전성기에 쓰여진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하드보일드계 작품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이는 비록 탐정이 등장하긴 하지만 정통 추리소설처럼 '사건'과 '추리'를 쫒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범죄나 탐정' 등의 요소만 없다면 전통 소설에 더 가깝다. 하드보일드 작품의 묘미는 등장인물의 성격과 묘사 및
문체(대사)에 있다.
사립탐정인 사무엘 스페이드는 어느날 오쇼네시라고 자신을 소개한 젊은 여성으로부터 동생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녀가 동생을 데려간
인물로 지목한 더스비라는 남자를 미행하던 사무엘의 동료인 마일즈가 총에 맞아 죽고만다. 그런데 더스비는 마일즈를 죽인 용인자로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는데, 뜻밖에도 더스비마저 죽은 채 발견된다.
사무엘은 처음에는 마일즈의 부인인 이바 아처를 의심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무엘과 깊은 관계로 남편이 사라지면 사무엘이 자신과 결혼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런 이바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에게 여자란 그저 지나가는 차와 같은 존재일뿐이다.
한편, 더스비가 죽고 낯선 인물이 오쇼네시 앞에 기웃거리자 오쇼네시는 더더욱 사무엘에게 매달린다. 사무엘은 자신의 의뢰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자꾸만 그녀가 의심스럽기만 하다.
이런 와중에 골동품 중개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인물이 사무엘에게 제안을 해 온다. 1530년 성요한 성당 기사단이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에게 바쳤다는 황금상(일명, 몰타의 매)을 찾고 있는데, 오쇼네시가 홍콩에서 빼돌린 그 황금상을 찾아서 자신에게 넘기면 현금 1만불을
주거나 판매대금의 25%를 지불하겠다는 것이다.
우연히(?) 황금상을 손에 넣게 된 사무엘은 황금상을 굿맨(골동품 중개인)에게 넘겨주고 1만달러를 챙기려는 순간 황금상이 가짜라는 게
드러난다. 사무엘은 도망치는 굿맨 일당을 더스비 살인범으로 경찰에게 넘긴다. 그리고 남은 문제는 누가 마일즈를 죽였는가? 이다. 더스비가
죽였을까? 그렇지만 사건 정황상 더스비를 미행하던 마일즈가 어두운 언덕 골목으로 더스비를 따라갔을 까닭이 없다.
결국, 범인은 더스비를 따돌리려고 했던 오쇼네시였다. 말그대로 황금에 눈이 멀어 서로 협력하다 배신하고 서로 쫒고 쫒기며 죽고 죽이는 비정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오쇼네시와 뜨거운 사이였던 사무엘은 일말의 여지도 없이 오쇼네시를 살인범으로 경찰에 넘긴다.
하드보일드 소설은 지금까지 몇 편 읽지도 않았을 따름이지만 탐정들의 캐릭터는 대동소이한 것 같다.
바람둥이고 여자들에게 인기있으면서 냉정하다.
이는 아마도 남성들의 로망을 투영시킨 결과가 아닌가 싶다. 작가인 사무엘 대쉴 해미트 역시 주인공인 사무엘 스페이드와 같은 남자가 되고 싶지
않았을까? 작가가 등장인물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인다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으니 말이다...
정리 차원에서 줄거리를 써보긴 했다만,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은 내용도 등장인물도 아니다. 작품 속에는 사건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야기
한토막이 나온다. 사무엘이 오쇼네시에게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는데, 마치 커다란 망치로 머리 한대를 맞은 것같은 강렬함이 남는다.
1927년 당시 시애틀의 탐정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던 사무엘에게 남편을 찾아 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의뢰인의 남편인 플릿크래프트라는 성공한
남성은 아내와 5살, 3살짜리 두 아들을 남겨둔채 1922년 어느날 점심을 먹으러 간다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알고보니, 플릿크래프트는 찰스 피어스라는 이름으로 바꾸고는 다른 여성과 결혼해서 사내아이까지 한명 두고 있었다. 근데, 이 남자에게
사무엘이 가출한 이유를 묻자, 그는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공사중인 건물에서 철골이 떨어졌는데 다행히 맞지는 않았지만 철골이 떨어진 충격으로
보도 블록이 깨지면서 얼굴에 작은 상처를 입었단다. 상처는 아프지 않았지만 그 순간 플릿크래프트는 한가지 진실을 깨닫게 된다.
좋은 남편이고 시민이고 아버지인 그도 사무실과 음식점 사이에서 길을 가다가 떨어지는 철골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
것이다. 그는 인간이란 우연에 의해서 죽어가는 것이며, 그가 살아 있는 사실도 아직 우연이 그에게 덮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깨닮음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로 그를 괴롭힌 문제는 그런 식의 불합리한 운명이 아니었다. 그때 그 사건 이후로 그는 인간의 불합리한 운명을 쾌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를 괴롭힌 문제는 자기 주위의 사물을 가지런히 정돈해 놓고 보니까, 그는 점점 더 생명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시그마 출판사, 대쉴 해미트, <몰타의 매> p 92~93
中-
솔직히,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유명한 북 블로거들이 극찬한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혹시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건 아닌가 싶어
검색을 하던 중 알게 되었다. 내가 읽은 책은 도서관에서 빌린 것이라 1996년에 출판된 것이고, 2009년도에 열린책들에서 재번역 출판된
버전이 있었던 것이다.
"그가 아는 인생은 공평하고 정연하고 이성적이고 책임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철제빔의 추락이 인생은 본래 그런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훌륭한 시민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도 사무실에서 식당에 가다가 떨어지는 빔에 맞아 즉사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죽음은 그렇게 마구잡이로 찾아오며, 사람은 눈먼 운명이 허락하는
동안만 목숨을 부지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그런 운명의 불공평함이 아니었다. 최초의 충격이 지난 뒤 그 점은 받아들였다. 그를 괴롭힌 것은 그가 영위해 온 정연한 일상이라는 게 인생 본래의 길이 아니라 인생을 벗어난
길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열린책들, 대실 해밋, <몰타의 매> p85~86
中-
위에서 인용한 부분을 처음 읽었을때 살짝 '감'이 왔었지만,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웬지 모르게 집중이 안 되고 읽는 내내 너무 고역스러웠기 때문에 빨리 끝내고만 싶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독후감을 쓰기 위해 검색을 하다가
두번째 번역 문장을 접하게 되었다.
느낌이 너무 달라서 나조차도 깜짝 놀랐다.
분명 영어 원문은 같았을 텐데...
10여년이라는 시차를 감안하더라도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는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완성도 높은 번역본을 접했더라면 최소한 '하드보일드 작품은 이제 다시는 안 읽을테다'라고 결심하는 상황까지는 안 갔을
것같기 때문이다.
바로 직전에 읽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 독후감에서도 하드보일드 작품에 대한 실망과 혹평을 쏟아냈었는데....
혹시, 그 작품도 최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선도 아닌, 차선이나 차악의 번역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