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쇼크 - 고령화, 쇼크인가 축복인가
테드 피시먼 지음, 안세민 옮김 / 반비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만큼 전세계를 무대로 고령화를 전반적으로 다룬 책은 없는 것 같다.

단행본으로는 다소 부담스러운 5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한줄로 요약하면, '이제 인류는 의료보건 기술의 발달(수명연장)과 개개인의 선택(저출산)이 불러온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을 피할 수 없다.'라고 하겠다.

 

 

날씨가 따듯한 남부의 플로리다 노인주거단지로 이주하는 북미의 노인들....

 

한때 독일 등으로 젊은층을 수출(?)했으나 노령연금을 받는 계층이 늘어나면서

제정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

 

'자식이 늙은 부모를 봉양한다'는 유교식 사고방식에서 일찌감치 벗어난 일본의 고령사회 풍경...

 

연금과 부동산 폭등 혜택을 누리고 있는 도시거주 노년층과 

외지로 떠난 자식이 보내주는 생활비로 간신히 살아가는 농촌 노년층의 격차가 극명한 중국...

 

 

각 지역마다 고령화는 발등의 불이 된 것 같다.

 

미국은 드넓은 영토와 자원 그리고 여전히 세계 각지역 사람들이 선호하는 나라로, 고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젊은 노동력 부족 문제를 그나마 잘 헤쳐나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미국 역시 일자리 창출과 빈부격차 등을 겪고 있지만,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노년층을 돌보는 일자리를 필리핀과 동유럽에서 건너온 여성 인력이 채우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때, 일자리에 대한 미국인 특히 젊은층의 눈높이는 여전히 높아 보인다.  

 

이에 반해, 일본의 경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얼마전 일본의 무연사를 집중적으로 다룬 NHK의 <무연사회>라는 책을 통해 일본 고령사회의 단면을 살펴본 나로서는 각 나라의 고령화 현황과 대응을 다룬 부분들이 유난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유럽과 북미 선진국과는 달리, 일본은 외국인 이민이나 인력을 받아들이는데 상당히 수동적인 나라다. 이와 동시에 '세계 최장수 국가'라는 타이틀도 함께 갖고 있다.

그렇다면 초고령사회인 일본은 고령 인구를 어떻게 부양하고 있는 걸까?

중국처럼 자식에게 부양의 책임을 지우는가?

 

<무연사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은 한국, 중국처럼 동아시아 국가지만 유교 전통에 입각한 가족 구조와 가치관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일본인들은 노후를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이들은 전후 고도성장을 통해 획득한 자산과 연금 등에 힘입어 전문주거단지나 각종 기관들이 운영하는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을 돌보는 인력은 외국인이 아닌 거의 일본인이라고 한다. 일본의 젊은층은 부모 세대가 공장이나 회사에 취업했던 것과는 달리, 제가방문목욕 서비스나 노인전문도시락 배달 등등의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다만, 한가지 특이했던 점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남미로 이민을 갔던 일본인 후손들을 역이주 시켜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미국, 스페인의 노인들이 타인종 혹은 타민족에 의해 돌봄을 받고 있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한편, 중국의 고령 문제는 중국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70억 세계 인구의 1/5 혹은 1/4를 차지하는 중국의 인구구조 변화는 전 세계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 자체적으로도 인구는 자고이래로 통치계급의 주요 현안이었다. 식량 부족 문제를 걱정했던 중국 정부는 1970년대 후반부터 '한자녀 낳기'정책으로 인구 증가를 억제해왔으나, 얼마 전 이 정책의 폐지를 공식 선언한 바 있다. 지난 30년간 젊고 값싼 노동력에 의지해 경제성장을 이룩한 중국으로선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는 부양해야 할 인구의 증가와 함께 일할 노동력의 부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릴 확률이 크다.

 

중국은 복지제도가 공평하고 일률적으로 갖추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역간 격차도 너무 큰 나라다. 여기서 지역간 차이란 도시와 농촌에 대한 차별적 정책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내가 알기로, 중국의 퇴직금제도는 도시 근로자 위주로 구축되어 있다. 이는 농지를 국가로부터 임대 형식으로 소유(?)하고 있는 중국 농민은 기본적으로 퇴직연한이 없을 뿐만 아니라 토지라는 생산수단을 갖고 있는 바, 연금이 필요없다는 관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의 도농 분리 정책은 소수의 도시인들에게 혜택이  쏠리는 결과를 초래했고, 국가로서는 통치세력을 지탱해주는 도시의 엘리트 집단만 부양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농민을 경제와 국가 발전의 '희생양'으로 삼은 측면이 없지 않다.  

 

물론, 저자는 중국의 농촌에는 여전히 자식이 부모를 부양한다는 유교적 전통이 짙게 남아 있어 정부의 이와같은 정치적 결정이 현재까지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문제를 야기시키지는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가르치는 윈샹옌의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사행활>이란 책을 인용하여, 외동이 자녀가 출산한 손주를 돌봐주느라 바쁘고 힘겨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중국 노인들과 부모로부터 경제적 도움과 무급 육아 및 가사 노동을 제공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중국 젊은층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중국의 노인 특히 농촌 노년층이 처한 비극을 놓치지 않는다.

끝으로, 저자는 현인류를 문명과 기술 발달의 혜택을 누린 첫번째 장수세대이며 고령화는 분명 인류 최고의 행운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러나라와 지역을 두 발로 뛰어다니면서 두 눈으로 직접 살펴본 저자에게 비친 고령화는 책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쇼크'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책에서는 한국의 상황을 직접 겨냥하여 기술한 부분은 없지만 한국 역시 고령화의 위협과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하겠다. 

일본처럼 노년층이 경제적 육체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경제력과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으면서, 동시에 부모 부양이라는 유교적 전통은 중국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노인으로 산다는 건 비애와 우울을 넘어 비참함의 극치가 아닐까 싶다. 

 

 

굳이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더라도, 무병장수와 수명연장에 사활을 걸었던 인류의 이기심이 결국은 고령화라는 비극을 초래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인류의 보건과 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했던 일부 정책 결정자들과 제약회사 및 의약분야 연구자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인류 발전과 진보를 기대했던 그들의 행동이 오히려 자칫하면 전인류를 혼란과 비극으로 빠뜨릴지도 모르는 고령화에 단초를 제공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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