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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사회 -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
NHK 무연사회 프로젝트 팀 지음, 김범수 옮김 / 용오름 / 2012년 7월
평점 :
2010년 일본 NHK가 방송한 특집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은 책이다. 우리나라도 EBS의 <명의>처럼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왔거나 지속적인 관심을 일으킬 만한 방송 프로그램의 경우 이처럼 책으로 엮어내기도 하는데, 이는 영상매체보다는 책이라는 형식이 '시간적
제약'을 덜 받기 때문일 것이다.
무연사회(無緣社會)란, 말 그대로 인연이 끊어진 사회를 말한다.
이와 같은 무연사회는 필연적으로 '무연사(無緣死')와 '무연감(無緣感)'을 불러온다. 무연사란 '홀로 맞이한 죽음'과 '아무도
인수하지 않아 갈 곳 잃은 유골'을 모두 포괄하며, 무연감이란 가족 및 사회적 인연이 아주 미약하거나 완전히 끊어졌다고 느끼는 감정 상태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이었던 건, 혼자 살면서 늙어가는 노년층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도 무연감을 깊게 느끼고 있으며, 무연사를 자신의 머잖은
미래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NHK 취재팀은 무연사회의 등장과 심화를 핵가족화와 미혼율 및 저출산율의 증가 탓으로 돌리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일본의 무연사회를 야기시킨 가장 커다란 원인은 이와 같은 사회적 원인 뿐만 아니라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라는 일본인 특유의 인식과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이 책에는 '짐이 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가족이 없는 사람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 심지어 자식이 있는 경우에도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면서, 홀로 살다가 결국 무연사를
맞이하는 일본인의 모습은 같은 동아시아 국가이자 유교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다소 충격적이다. 특히, 우리 한국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남에게 절대로 폐를 끼치지 않는 일본인'의 모습을 성숙한 시민의식의 상징이자 본받아야할 태도로 인식되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인에 반해서 한국인은 지나치게 타인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수시로 사생활을 침해하는 예의 없는 민족이라고
여겨져왔지 않았던가?
명절이면 예외없이 나타나는 '교통체증'과 인맥, 지연, 학연 등의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식구 제사람 챙기기'라는 의식구조가
한국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배우지 않았던가?
사회보장제도와 시민의식이 우리보다 훨씬 발전한, 일본의 현실은 애잔함을 넘어 당혹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그리고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빨리 배우고 모방하는 우리사회의 특징(?)으로 볼 때, 무연사는 더 이상 이웃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 죽은지 한참만에 발견되는 소위 '고독사'가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지고 있는 현실 역시 이와 같은
불안감이 터무니 없지 않음을 말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또 다른 점은 고독하게 노년을 살아가는 일본의 노년층들은 비록 외로움을 느끼긴 하지만 극단적인 경제적 빈곤을
호소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무연사회 속 무연자들을 위한 NPO(비영리단체)의 결성과 활동이 매우 활발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최소한 일본에서는 비록 홀로 늙어 죽을 수는 있을지언정 굶어 죽을 걱정, 얼어 죽을 걱정만큼은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라는 부러움이 든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반해, 우리 사회는 다른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노년층의 외로움과 고독사라는 사회적 현상은 당연하거나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무관심 이면에는, 고독하게 살아도 좋고,,, 홀로 죽음을 맞이해도 좋으며,,, 죽은 후 유골이 무연고묘에
안장되어도 괜찮으니,,, 일단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만이라도 배 고프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게만 해달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이게
비단 나만의 환청(幻聽)일까?
일본의 현실에 애잔하게 떨리던 가슴이 우리의 현실 앞에선 여지없이 막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