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일찍부터 읽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평소에도 워낙 '기차'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터라 제목에 '기차'가 들어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끌렸습니다.

 

기차란, 문명의 상징임과 동시에 '떠남' '동경'과 같은 함축적인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죠.

저는 특히 새벽 동틀 무렵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를 참으로 좋아합니다. 마치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러나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 어떤 '대상'과 조우하는 것 같은 아련한 느낌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느낌, 저만의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이 작품 속에는 저처럼 '기차'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일단, 프리츠 오르트만이라는 저자가 그렇습니다.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독일 작가인데요, 소설가로 불리기보다는 교사로 불리운 세월이 훨씬 더 길고 자연스럽지 않나 싶습니다. 그는 1925년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해안가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킬에서 성장했으며, 전쟁 포로로 수감되었다가 풀려나 박사 학위를 받고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작품을 쓰다가 1995년 사망합니다. 작품으로는 소설집 <럼주차>와 장편 <여러 색깔 유리잔>등이 있다고 합니다. 

 

아주 간단한 약력이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극히 일부이자 거의 전부라 하겠습니다. 나도 죽으면 이처럼 몇 줄의 간략한 객관적인 사실만으로 남겨지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웬지 '센치'해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왠지 모르게 이 사람 자꾸만 끌립니다. 여덟 편의 단편으로 엮어진 작품집을 다 읽고 나서도 자꾸만 떠오릅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을 생각하는가 싶으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오르트만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을 작가와 연관시키는 일은 흔하지만, 오르트만처럼 작품 속 등장인물과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는 드문 편이지요. 어쩌면 철저하게 베일에 싸인 작가의 개인적 삶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누구이며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며 살다갔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곰스크행 기차를 애타게 기다리는 주인공도 오르트만이고,,,

목적지를 모르는 여객선 위의 여행가이드 역시 오르트만이요,,,

럼주차를 마시기 위해 위험한 바다를 건넌 사람 역시 오르트만이 아닐까 착각 또 착각 하게 됩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곰스크로 가는 기차>와 <배는 북서쪽으로> 그리고 <두 시절의 만남>이라는 작품이 저에겐 특히 인상적이더군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곰스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나' 역시 철든 이후 줄곧 곰스크로 가기를 꿈꿉니다. 마침내 사랑하는 아내와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오르지만 그만 도중에 내렸다가 기차를 놓치고 맙니다. 평생 동안 곰스크를 꿈꿨지만 '나'는 결국 어느 낯선 마을에 정착하여 평생을 살게 되지요.

 

 

'곰스크행 기차인 줄 알고 탔는데, 곰스크행 기차가 아니다?!'

심지어는' 어디로 가는지 목적지조차 알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제서야 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잊고 지냈던 자신의 꿈과 마주하는 경험을 즐긴 듯 합니다. 길게 길게 책장을 넘기면서 말이지요. 다음 장의 내용은 궁금하지도 그닥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어느 순간,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소망을 떠올리면서 추억에 잠깁니다. 그리고 불연듯 지금 나의 삶이 바로 내가 꿈꿔왔던 '곰스크'라는 걸 깨닫게 되지요. 그러니까 '곰스크'란 모든 사람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꿈의 상징인 셈이지요. 

 

 

우린 모두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거나 ,

아니면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배를 타고 있다. 

 

 

한편,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이어 실려 있는 단편 <배는 북서쪽으로>는 매우 의미심장한 작품입니다. 여객선에 탄 승객들은 하나같이 배의 목적지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이라고 우깁니다. 유일하게 배의 목적지를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 선장 또한 "나에겐 정해진 항로가 있고 그걸 따를 뿐"이라는 말로 목적지를 대신합니다. 승객들로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와 함께 연관지어 보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한층 명료해집니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주제는 '사람은 누구나 결국은 스스로 선택하고 원하는 삶을 살게 된다'로 귀결됩니다.  곰스크행 기차를 놓쳤기 때문에 자신이 곰스크에서 꿈꾸던 삶을 살게 된 주인공이 만약 곰스크행 기차를 쭉 타고 갔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무사히 곰스크에 도착했을까요? 아니 중요한 건 곰스크라는 목적지 자체가 아니라 꿈꿔왔던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오르트르는 <배는 북서쪽으로>라는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인생이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기차(혹은 배)와 같다. 

다만, 승객들 각자가 바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을 뿐이다.

 

 

석장이 채 안되는 짧은 단편 <두 시절의 만남>은 성공한 중년 사업가와 무전 여행을 하는 젊은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사업가는 목적지도 없이 여행하는 젊은이의 자유를 부러워하면서 자신이 젊은 시절 품었던 꿈을 떠올리고, 젊은이는 사업가의 돈과 멋진 차를 보면서 앞으로 그와 같은 성공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꿈을 품습니다.

 

저 역시, 얼마전 20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의 눈부신 젊음과 모든 것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가능성을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제가 보낸 찬사에 "저는 선생님이 부럽습니다"라는 답변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 역시 새파랗게 어리고 젊은 시절 연장자에 대해 같은 마음을 품었었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프리츠 오르트만의 <두 시절의 만남>은 바로 이와 같은 세대차이(?)를 놓치지 않고 깔끔하게 포착한 작품입니다.  만약, 그가 좀 더 많은 작품활동을 했더라면 '꽁트'라는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살짝 들었습니다. 

 

꿈이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닌 갖지 못한 것을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꿈이 이루어진 그 순간이 바로 꿈이 깨어지는 순간이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새벽을 울리며 다가오던 기차소리는 영원히 꿈을 향해 달려가는 내 마음의 기적소리였다는 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