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 페미나 상 수상작
샹탈 토마 지음, 백선희 옮김 / 이레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한편의 영화에서 시작되었다.

요즘 내 관심을 끌고 있는 레아 세이두라는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한 <페어웰, 마이퀸>이라는 영화였다.


그러나 영화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책 읽어 주는 시녀(시도니)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영화는 1789년 바스티유 함락도 절대 왕정의 상징인 베르사이유 궁전의 몰락도 인상적으로 전달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인간적인 모습과 심리를 그려내겠다던 감독의 의도도 제대로 들어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영화는 나에게 가슴 가득 아쉬움만 남겨주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나로 하여금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으니 나름 값(?)은 한 셈이다.

영화가 샹탈 토마의 소설 <마리 앙투아네트>를 근간으로 제작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바로 원작을 구해 읽기 시작했다.


소설은 1810년 2월 12일 예순 다섯번째 생일을 맞이한, 한 여인의 회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책 읽어 주는 시녀로 30세 초반 베르사이유에 들어가 왕비의 명으로 가브리엘 드 폴리냐크 부인의 탈출을 돕기 위해 궁을 빠져 나올때까지 약 11년동안 머물렀다. 반면, 영화는 시도니를 원작보다는 훨씬 젊은 시녀로 묘사하고 있다.

한편, 작품은 시도니의 시선으로 1789년 7월14일과 15일 그리고 16일 단 사흘 동안 일어난 일들을 시간적 흐름에 따라 나열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시녀의 시선이기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협하며 무엇보다도 그녀가 모시고 있는 여인 즉 마리 앙투에네트에 대한 시녀의 숭배와 복종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작가가 가공의 인물인 책 읽어 주는 시녀를 탄생시킨 의도는 명백해 보인다. 바로 마리 앙투이네트를 최대한 가깝게 그려냄으로써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전략(?)이었으리라. 그러므로 이 작품은 역자의 말처럼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이면서도 또한 역사적이자 전체적인 색채를 띄고 있다.


나는 영화가 아닌 소설 작품을 통해 마리 앙투아네트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참으로 호기심 많고 다정다감한 심성의 소유자였으며...

무감각한 남편(루이16세)과는 정반대로 매우 활동적이고 외향적이며 상냥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사치스럽고 포악하며 음탕하고 사악한 인물로 알려졌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사에 의해 즉 프랑스 혁명의 가치를 위해 목숨을 잃은 것도 모자라 철저하게 왜곡되고 비하되어왔던 것이다!

역사가 기록해야 할 건, 오히려 권력에 기대어 온갖 악덕을 일삼아 왔던 귀족들임에도 불구하고 역사라는 이름의 화살은 이처럼 종종 빗나가곤 한다. 


왕궁이 기울어가자 제일 먼저 탈출한 이들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방패막이로 삼아 부귀영화를 누려왔던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식을 두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목숨 챙기기에 급급했다. 그들의 모습은 일견 우습광스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참을 수 없는 창피함마저 자아낸다.

인간의 숭고함을 보여야 할 바로 그 순간, 동물적 본능에 지배받는 인간의 모습은 씁쓸함을 넘어 부끄럽기까지 하다. 이런 이들에 비해 마지막 순간까지 친구를 찾아다니고 그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은 순수함 그 자체다. 


비록 가상의 인물이긴 하지만 왕비의 책 읽어 주는 시녀 시도니가 왕비의 명을 받고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건, 어쩌면 왕비의 이와 같은 숭고한 아름다움을 거부할 수 없었기때문일지도 모른다. 

 

궁정 생활과 왕비에게 쏟는 집요한 관심 때문에 나는 왕비를 볼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는 능력과 더불어, 보기도 전에 그녀의 존재를 감지하는 신비스런 능력을 갖게 되었다. 문득 나는 그녀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곧 나타나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곤 했다. (...) 그렇게 왕비는 마법처럼 나타났다. 나는 왕비의 친구들이 묵는 숙소들 쪽으로 연결되는 일층 복도에 있었다. 왕비는 내게 등 돌린 모습으로 나타났다. 손에 촛불을 든 채 혼자 어느 문 앞에 서 있었다. 왕비는 문을 열어 주길 청하며 한참 기다리다가 다른 친구들 처소도 두드렸다. 두드리는 문마다 똑같은 침묵이 그녀를 맞이했다. 그러자 그녀는 인내심을 잃고 버럭 화를 내며 비난의 말을 쏘아부쳤다. 하지만 어느 문을 흔들려다가 그 문이 자물쇠로 잠긴 것을 확인하고선 그녀의 목소리도 처졌다. (...)

나는 왕비의 두 가지 걸음을 알고 있었다. 하나는 약간 느리면서 신중한 공식적인 걸음으로 그녀를 커 보이게 했다. 또 하나는 엉덩이를 가볍게 흔들며 매우 경쾌하게 걷는 사적인 걸음으로 노래하고 싶은 욕구가 들게 했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머뭇거리며 걷는 무거운 걸음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

그녀는 가브리엘 드 폴리냐크와의 이별을 견딜 수 있게 친구들이 도와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역할이 전도되었다. 그녀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이 필요했다.

(...)

나는 생각한다. 그녀는 걷지 못할 것이다. 그럴 용기가 없을 것이다. 내 혼란스런 머리 속에서 왕비는 의자에 앉은 채 내버려진 늙은 레이보 공작과 하나가 된다.

나는 눈을 감는다.

나는 그녀 때문에 운다. 그들 때문에 운다.

 

-샹탈 토마, <마리 앙투아네트> p257~ 260 中-

 

왕비에게 친구들이 필요할 때 그들은 없었다.

그들에겐 더 이상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비가 아니었다. 그저 폭도들에 의해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가련한 여인에 불과했다.

철저하게 버림받고 혼자가 된 왕비를 보며 눈물을 흘린 이는 단 한사람 시도니 뿐이었다. 시도니는 왕비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던 자신이 마지막으로 왕비의 청을 수락함으로써 왕비로서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지켜주고 마지막으로 왕비와 시녀로서 헤어짐으로써 왕비를 향한 자신의 숭배와 사랑을 보여준다.  

 

시도니는 왕비의 청을 수락함으로써 자신이 폴리냐크 부인으로 변장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폭도들에게 죽임을 당하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결정에 갈등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도망가지도 왕비의 명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나는 눈물이 쏟아졌다.

그가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내가 떠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나는 두려움 때문에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의무 때문에 떠나는 것이었다. 난 그저 복종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이미 무언가가 내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내 가슴을 찢어 놓고 있었다. 그 명령을 피할수도 있었을 텐데, 아니 피해야 했는데. 게다가 다른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 사람 행세를 하는 일이므로 내 역할은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꼭 나여야 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너무 빨리 복종했다. 잠시 멈춰서 생각을 했어야만 했다.

(...)

다시 한번 베르사유 바깥세상을 상상하려고 애썼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베르사유는 내 삶이었다. 평생 그랬듯이 나는 마지막 날이 어떠하리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어느 아침, 어느 오후, 어느 저녁이 마지막 날이 되리라고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밤의 다른 편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해보지 못했다. 어쨌든 내가 아는 바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샹탈 토마, <마리 앙투아네트> p292~ 293 中-


나 또한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 그리고 그녀들 때문에...



혹시, 영화를 보고 실망했다면 원작을 읽어 보길 권한다.

원작은 영화처럼 혹은 세간의 소문처럼 마리 앙투아네트의 동성애적 기질을 부각시키지 않으며, 몰락해가는 즉 비극으로 이어져 있는 계단으로 향하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어느새 나 역시 시도니처럼 왕비의 열렬한 숭배자가 되어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