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lor Purple (Paperback, International Edition)
앨리스 워커 지음 / Harcourt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영화의 원작은 앨리스 워커라는 흑인 여류작가의 작품으로 80년대 초반에 쓰여졌단다. 생각보다 최근(?)작이라서 다소 놀랐다. 그러니까 소설이 출간되고 퓰리처상 등을 수상하면서 바로 영화화 된 것이리라.


작품의 배경은 마차와 자동차가 공존하는 것으로 봐서 19세기 후반 혹은 20세기 초반-흑인마을에 자동차가 등장한다는 걸 감안하면 20세기 초반일 가능성이 크지만-미국의 흑인 가정이다.


처음에는 흑인 여성의 인권을 다룬 작품이라고 생각했었으나, 작품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흑인과 백인간의 인종차별문제를 바탕으로 하여,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과 근친상간 그리고 동성애까지......

소재와 내용만 놓고 본다면 막장도 이런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을 정도다.

그러나 결론은 '하나님도 백인이고 남자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바로 '와스프(WASP: 앵글로색슨 백인 신교도)'다.

잘 알다시피, 와스프는 미국 사회의 주류를 일컫는 말이다. 미국은 20세기부터 21세기에 걸쳐 세계 패권국가라는데에는 그 누구도 반기를 들지 못하리라. 그렇다면 오늘날 세계는 '미국인이면서 백인에 신교를 믿는 남성'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더 컬러 퍼플>은 소외받는 흑인 여성들의 기구한 운명과 극복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주인공인 씰리와 네티는 자매다.

언니 씰리는 의붓아버지-그 당시에는 생부인줄 알고 있었다.-에게 성폭행을 당해 아이 둘을 출산한다. 그녀의 엄마는 끝끝내 자매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은 채 병으로 죽고 만다. 네티 대신 아이들이 딸린 남자에게 시집을 간  씰리를 기다리는 건 남편의 학대와 끝없는 노동뿐이다. 남편은 첫사랑인 슈그를 잊지 못하는 상태에서 병든 슈그를 집으로 데려와 씰리로 하여금 돌보게 만든다.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더 말도 안되는 건 남편의 애인인 슈그를 향한 씰리의 '사랑'이다.

여성간의 우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겁고, 동성애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도 가벼운 뭐라 정의내리기 어렵다.


작가는 굳이 두 마리의 토끼를 쫒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앨리스 워커는 지나치게 욕심이 많았거나 아니면 의욕이 앞서지 않았나 싶다.

왜냐하면 이상에서 언급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네티가 언니의 아이들을 입양한 흑인목사 부부를 따라 아프리카로 선교를 가면서 아프리카 토속신앙와 개신교의 충돌(?)까지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앨리스 워커가 20세기를 대표적인 흑인 인권 운동가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흔히, 현장 운동가들은 예술과 문학보다는 이념과 행동을 더 중시하므로...



이 작품이 예상을 깨고 미국 사회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세상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절대 바뀌지 않는 단단한 세상이 어쩌다가 우연히 보여준 작은 '호의'가 아니었을까?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베스트북인 건 아니듯, 상을 수상한 수상작품들이라고 해서 모두 다 뛰어난 작품성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시대 상황과 출판사 및 문학상 주최측 사이의 오묘한 헤게모니로 인해 시공간을 뛰어넘는 명작은 쉽게 묻혀버리고, 대중의 관심과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킬 작품들이 환영받기 쉽다.


미국인들은 과거 흑인노예제도를 갖고 있었다는 점 때문에 흑인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극과 극'을 달리는 것 같다.

지나치게 우호적이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비판적이거나......


만약 작가가 인종문제든 남여차별문제든 어느 한가지 주제만을 선택하여 깊숙히 천착해 들어갔더라면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을 얻는 더 한층 뛰어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끝으로, 번역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역자인 안정효는 원문을 최대한 그대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직역(?) 번역가라 하겠다.

한편, 앨리스 워커는 작품 속에서 흑인토속영어(black folk English) 을 고스란히 재연해 놓았고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주인공 씰리가 하느님께 쓰는 편지형식을 취하고 있다. 문법도 맞지 않고 발음대로 적은 문장들이 대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씰리가 나이를 먹어가고 글자를 깨우치게 되면서 문장들은 서서히 현대 영어 문법에 가까워진다.


<더 컬러 퍼플>이라는 작품이 갖는 가장 큰 매력 중에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품이 중반부를 거쳐 후반부로 갈수록 서서히 완벽해지는 문장들은 주인공 씰리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색다른 감흥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마치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우리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박경리의 <토지> 등의 작품을 통해 걸쭉한 지방 토속사투리와 구한말에 쓰였던 사라진 옛표현들을 접하며 느끼는 감동처럼 말이다.


역자에게 가장 어려운 건, 원문 텍스트의 문체를 살려내는 일이다.

원 문 텍스트에 사용된 언어 자체의 특징과 매력이기때문에 또다른 언어로는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역자 역시 후기를 통해 이 점이 가장 고민스럽고 어려웠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는 원작의 문체적 특징을 최대한 살려내기 위해 역설적이게도 '문장 해체'라는 번역 기법을 채택하여 아주 훌륭하게 목적을 이루었다.

영어 번역가들 사이에서 이 작품이 '바이블'처럼 인정받고 있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소설가로도 널리 알려진 안정효의 세심한 번역이 없었더라면 <더 컬러 퍼플>은 어느 한 시절을 풍미하고 사라져 버리는 베스트셀러(?)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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