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음모 - 위험천만한 한국경제 이야기
조준현 지음 / 카르페디엠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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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천만한 한국경제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비주류(?) 경제학자의 사회현실 비판서라 하겠다.


저자의 주장은 크게 다음과 같은 여덟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수출주도형 경제가 아닌 내수주도형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 법칙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셋째, 대기업 재벌의 존재는 우리사회에 득보단 실이 더 크다.

넷째, 생산성 향상은 노동의 양이 아닌 질이다. 

다섯째, 부동산 개발과 같은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는 더 이상 경제 성장을 이끌지 못한다.

여섯째, 부동산 불패 신화는 말그대로 현실이 아닌 과거의 '신화'일 뿐이다.

일곱째, 학교와 군대가 바뀌어야 한다.

여덟째, 통일의 편익과 분단 비용을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저자뿐만이 아니라 많은 학자들이 지적했던 내용들이다.

다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 이 분야의 '스타 학자'라 할 수 있는 장하준교수에 대한 비판이 눈길을 끌었다.

장하준 교수의 책을 재밌게 읽은 나로서는 솔직히 그가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세계화를 주장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보호무역주의를 옹호하는 것 같지도 않다.

아무튼 애매모호하던 장하준교수의 '본질'을 이 책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장하준 교수의 주장은 과거 6,70년대식 '국가주도형 국내산업보호주의'로 귀결되며, 저자는 이를 일컬어 '칠십 넘은 노인이 아흔인 부모앞에서 색동저고리를 입고 우유병을 빠는 망령 행위'라고 묘사했다. 말 그대로 '어른이 되었으면 어른답게, 노인이 되었으면 노인답게' 행동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는 뜻이다. 한국 경제가 성장했으니 이제 과거의 '박정희'식 개발정책은 더 이상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제상황도 바뀌었고 경제구조 또한 노동집약에서 자본, 기술집약으로 전환된 마당에 다시 과거로의 회귀는 누가 봐도 잘못되었다. 그런데 장하준 교수는 어떻게 한국사회에서 폭넓은 인기와 지지를 얻을 수 있는가? 승자(자본가)에게 유리한 규칙을 주장하는 그를 어떻게 일반 대중들이 지지할 수 있단 말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자본가보다 일반대중이 어리석기때문이다. 


이 밖에도 노동시장 유연화와 최저임금 인상 및 저출산 문제가 마치 우리 사회를 '벼랑'으로 내몰기라도 하듯 호들갑을 떠는 것 역시 승자의 음모에 다름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인구밀도가 세계 최고인 나라에서 자꾸만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는 주장은 알고보니 임금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산업예비군(일명 '실업자')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승자(자본가)의 음모'라는 지적에 100% 공감이 갔다. 

정부와 기업은 청년층을 치열한 취업경쟁속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생산성 향상'이라는 불로소득을 거두고 있다. 여기에 노년층 부양을 위해 더 많이 자식을 낳아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한 듯 보이지만,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부양의 의무를 국민에게 떠넘기려는 수작이며 기업이 지속적으로 저임금 노동자를 손쉽게 고용할 수 있도록 예비 실업자들을 더 많이 양산하라는 것임에 다름 아니다.


뿐만아니라 부동산 개발 등은 경제성장을 위한 투자라기보다는 부동산과 자본 등 노동을 제외한 생산요소를 소유한 이들의 '이익 실현'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는 점 역시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데 대중은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보수 정당에 표를 던지는 걸까?'

한마디로 어리석기때문이다.


근무시간 단축 문제도 그렇다.

대다수 국민들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여가시간이 많을수록 소비 즉 내수가 확대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수출지상주의의 세례를 흠뻑 받은 사람일수록 수출이 늘어나면 국민 생활의 질도 저절로 향상되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수출이 늘어난다고 해서 국민들의 소득이 더불어 늘어나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국민이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나라야말로 진짜 선진국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때, 풍부한 인구와 자원을 갖고 있었던 남미의 대국들이 지난 6,70년대에 수출주도형 정책을 채택하지 않은 것-물론 이미 수출대체산업으로 자리 잡은 기득권 세력 때문에 채택할수도 없었을 테지만-은 지극히 상식적인 선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알면 알수록 슬퍼진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지 못하니 화가 난다.

대안은 정녕 없는 걸까?

없는 것 같다.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게임의 룰'을 만드는 상황이 끝나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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