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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의 식탁 - 최재천 교수가 초대하는 풍성한 지식의 만찬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는 생물학자로서 과학을 대중들에게 좀 더 쉽게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으며,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통섭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얼마전 <다윈 지능>이라는 저자의 책을 통해 진화론에 대해 다시 한번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내긴침에 <통섭의 식탁> 이라는 저자의 책소개집까지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명사들의 서평이나 책 소개 모음집들은 멀리하는 편이다. 중구난방식으로 저자 자신이 읽었던 책들을 소개하고 있어 나와는 독서
취향이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는 이런 책들을 읽었다'식의 자기 자랑과 함께 출판사들의 상업성이 개입되어 있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최재천의 <통섭의 식탁> 역시 여타 서평집들이 갖고 있는 단점들을 전부 극복했다고 할 순 없지만, 자연과학
그 중에서도 '생물과 진화'라는 한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엮여져 있서 이 분야의 독서 초보자들에게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책을 다 읽고 난 이후에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소개된 책들의
목록을 부록이나 목차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알아 볼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상당히 많은 책들과 저자들의 이름이 소개
나열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모두 몇 권의 책들이 소개되어 있는지 조차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어림잡아 세어보니 백서른다섯권 정도의 책들이 소개되어 있는 것 같다. 더 읽어볼 책으로 소개된 책들 중에는 독립적으로 소개된
책들도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어 통일성이 다소 떨어졌다. 아마도 저자가 그동안 써왔던 서평들을 한데 모아 엮는 과정에서
발생한 편집상의 '실수'가 아닐까 싶다.
자, 이 정도로 책에 대한 '흠집잡기'는 그만 두기로
하자.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 속에 소개되어 있는 책들을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정도로 전부 다 읽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힌
나머지 취사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데에 따른 투정이리라.
엄선하고 엄선하여 꼭
읽고 싶은 책들만 골라본다면, 일단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만큼은 꼭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1976년에
쓰여진 책이 3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해당 분야 전문가로부터 명저로 언급되고 있다면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게 아닐까
싶다. 십 수년전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 소개되었을 때 읽었었는데 구체적인 내용이 남아 있지 않아 아쉽다. 지금처럼 서평이라도
써놓았더라면 좋았으련만...
그리고 <이타적 유전자>를 쓴 매트 리들리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도 빼놓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내가 이용하는 도서관에서는 소장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참고로, 매트
리들리의 <붉은 여왕>을 읽게 된다면, 제프리 밀러의 <연애>도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문명의 붕괴>도 놓치면 후회할 것 같다. 그리고 도모노 노리오의
<행동경제학>도 빼놓을 수 없을 듯. 이 밖에도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를 짚어보는 프랑크 쉬르마허의 <고령사회
2018>과 <가족, 부활이냐 몰락이냐> 역시 반드시 일독해야 할 책이리라. 그리고 가족 구성원 특히 형제간의
알력을 유전학과 진화론적으로 접근한 플랭크 설로웨이의 <타고난 반항아>와 더글러스 W 모크의 <살아남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도 함께 읽어볼 계획이다. 한편, 물리학 분야에서는 최무영 서울대 교수의 책들이 좋을 듯 싶다.
유일하게 인간만 정치적 동물이라고 여겨왔던 인류의 오만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프란스 드 발 <침팬지 폴리틱스>는 인간과
98%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침팬지를 통해 우리의 슬픈(?) 자화상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아 읽기 전부터 기대가 된다.
참고로 중국어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저자가 위화의 <인생>을 소개한 대목을 살펴보면,
푸구이라는 이름의 노인이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도박으로 거덜 난 다음, 평범한 농민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겪는 처절한 애옥살이를
야속하리만치 담담하게 그린 작품이다. 읽는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데 작가는 그저 밭이랑을 일구며 노래만 한다.
"황제는 나를 불러 사위 삼겠다지만
길이 멀아 안 가려네."
푸구이가 도살 직전의 늙은 소를 사들여 자기랑 똑같은 이름을 붙여주고 함께 늙어가며 부르는 이 노래는 읽는 이들을 묵연한 달관의
경지로 이끈다.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그 많은 재산을 주색잡기로 날려 보낸 푸구이, 노름으로 푸구이 집안의 재산을 앗아가 부자가
되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인민정부에 의해 악덕 지주로 몰려 총살을 당하는 룽얼, 달리기를 잘해서 어쩌면 쓰러진 집안을 도로 일으켜
세울지도 모르겠다는 기대했건만, 새로 부임한 현장의 부인에게 수혈을 너무 과다하게 해주다 죽은 아들 유칭, 그러가하면 유칭의
목숨 대신 살아난 부인의 남편은 알고 보니 그토록 찾았던 푸구이의 전쟁 천우 춘성, 그러나 그 역시 끝내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처럼 기구한 삶들을 그린 이 소설의 원제는 '활착(活着)'이다.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로 만들며 <인생>이라는 제목을 달아준 걸 우리말 역서에도 그대로 붙여 썼다. 장 감독은 <인생>으롤
199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지만, 나는 제목이 바뀐 것에 불만이 크다. '활착'이란 원래 "옮겨 심거나 접목한 나무가
뿌리를 내려 살아간다."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에는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부제가 은근히 따라다닌다. 하지만 나는 그
부제 역시 그리 탐탁지 않다.
-최재천, <통섭의 식탁> 中 p55~57 -
저자는 위화의 소설 <인생>의 원제목인 <活着>을 지극히 생물학적인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중국어에서 '活'자는 '살다'라는 동사이고 동사 뒤에 붙는 '着'는 '그런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부제인 '살아간다는 것'은
원제목을 최대한 직역한 것이며,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이 '活着'를 의역한 것으로 중국어 번역가들 사이에서는
원문의 의미를 상당히 잘 옮긴 번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만약, 최재천 교수의 말대로 원제목을 한자 독음 그대로
<활착>이라고 옮긴다면, 그 제목을 보고 얼마나 많은 한국독자들이 그 뜻을 이해할지 의문이다. 그렇지않아도 중국 소설이
의도와는 달리 촌스러운(?) 한국어 제목 등으로 독자들의 오해와 외면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중국어를 한자 독음 그대로 옮기는
번역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재천 교수의 <통섭의
식탁>은 자연과학 그 중에서도 진화와 유전에 있어서만큼은 최고라 할 순 없을지언정 최선의 상차림이라 하겠다. 책에 언급되어
있는 많은 학자들과 그들의 저작들을 모두 읽어볼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을 통해 최소한 자연에 대한 겸손함과 모든 생명체들과의 공생을
꿈꾸게 되었다.
인간은 불과 500만 년전에 침팬지와 같은 조상에서 분화되었으며, 현생 인류가
탄생한 건 그보다도 훨씬 최근인 약 20만 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지구의 탄생 역사를 하루로 친다면 20만 년이란 세월은 채
1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라고 한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표현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자, 한없이 겸손해지는 순간이다.
저자의 말처럼 동물과 인간 사이에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바로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리라.
"알면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