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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함정 - 무엇이 우리의 판단을 지배하는가
자카리 쇼어 지음, 임옥희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한번 내린 비에 단풍잎은 무심히 떨어져 낙엽이 되고,
생각도 더 한층 깊어진다...
올
한해를 통털어 읽은 책 중 가장 인상적인 책 세권을 꼽으라고 한다면, 한권은 리사 맥클라우드의 <한쪽 눈을 감은
인간>이고 또 다른 한권은 바로 이 책이다. 자카리 쇼어의 <생각의 함정>. 마지막 한권은 글쎄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사실 이 책은 예전에 1/3정도 읽다가 포기(?)한 책이었다. 책장이 빨리 넘어가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리사 맥클라우드의 <한쪽 눈을 감은 인간>을 다 읽고 난 후, 쌓아놓은 책더미
속에서 다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지난번에 읽지 않은 부분을 다 읽고나서 다시 첫페이지로 돌아와 처음부터 '제대로' 읽었다.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국제정치를 연구하는 교수로서 저자는 동서양은 물론이고 과거와 현대를 넘나드는 풍부한 사례들을 연구하면서 인간이 그것도 현명하고
지혜롭다고 평가받는 지식인이 어떻게 인지 함정이라는 오류에 빠져 개인적 역사적 오류를 반복하는지을 꿰뜷어 보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이론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저자는 조지 오웰(본명: 에릭 블레어)이 자국(영국)의
식민지였던 버마에 파견되어 코끼리를 사살하는 에피소드를 예로 들면서 '노출불안'의 전형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때론 자신의
나약함이나 결함이 들어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불필요할만큼 과격한 혹은 무모한 행동을 취한다. <더 리더: 책읽어 주는
남자>의 주인공 한나 역시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죄를 뒤집어 쓰고 장기간에 걸친 고된 수형생활을
감내해내지 않던가.
'노출불안은 단순한 두려움 그 이상이다.
이는 단호하고 의지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자신의 위치가 약화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저자는 일갈한다. 노출불안은 이스라엘의 레즈볼라 공격과 미국의 이라크에서의 과잉진압 등을 불러왔다.
심경의 변화나 타협이 곧 나약함을 상징한다는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날때 노출불안의 인지 함정에서 벗어날 수있다.
그 다음으로 저자는 우리가 쉽게 빠지는 인지 함정으로 '원인혼동'을 들고 있다.
말
라리아가 썩은 물에 의해 걸리는 질병이라는 속설과 항우울제의 남용 등이 모두 다 원인혼동으로 야기된 심각한 폐해라는 사실을 안
순간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더 이상 극동지방의 보보가 살았던 마을의 사람들처럼 익은 돼지고기를 맛보기 위해 집을
불태우는 우를 범하지는 않지만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오인하거나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일을 빈번하게 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저자는 특히 '원인혼동'이 의학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저질러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정신질환이
가족역학관계로부터 기인한 병이라거나 유전적 질병이라는 것과 허리통증은 디스크의 기형으로부터 유래한다는 점 등이 그렇다.
인간이 이처럼 원인혼란에 잘 빠지는 이유는 문제나 상황을 분류하고 범주화시켜 단순하게 보려는 환원적인 사고방식 혹은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 때문이라고 한다.
위와 같은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평면적인 관점' '만병통치주의'라는 인지적 오류를 불러온다.
평
면적인 관점은 리사 맥클라우드가 주장한 '거울 이미지'와 똑같다. 즉, '상대방도 나와 똑같이 생각할 것이다'라는 인지적
오류야말로 프랑스와 미국이 객관적인 전력 우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인도차이나반도(와 베트남)에서 패배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평면적인 사고와 만병통치주의는 상상력의 여지를 처음부터 차단해버린다. 만병통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이 모든 사례에
적용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만병통치주의'란 과거에 맞아 떨어진 이론이나 방식을 고수하고
무조건 신뢰하는 것이다. 폴란드에서 성공한 경제이론이 소련에서도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제프리 삭스나 남미식 긴축재정과 개혁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경제위기에도 들어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IMF 역시 모두 만병통치주의라는 인지적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한편, 정보를 독점하려고 하거나 정보를 회피하는 '정보집착증' 역시 심각한 생각의 왜곡을 불러온다.
정보독점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에게만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엔 전체적인 소통 부재를 불러와 '득'보다 '실'이
많다. 정보회피 역시 유리한 판단을 내리게 할 수도 있는 정보를 외면하거나 무시함으로써 심각한 사태를 불러온다. 이와 같은
'정보집착증'은 국가와 정부를 포함하여 모든 회사와 단체 및 개인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고질병이라 하겠다.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대방(혹은 상황)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의도를 갖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대방과 같은 시선과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상대방의 의도를 알고
상대방과 같은 시각으로 사태를 바라볼 수 있다면 이분법적인 논리에서 벗어나 또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는 여유와 상상력이 작동할
여지가 커진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상대방도 나와 똑같은 걸 얻기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해 버린다.
그렇다면,
상대의 욕망을 제대로 알고 인정하는 것이 승리 더 나아가 대승적 승리의 첫걸음이라 하겠다. 상대의 욕망을 알려면 무엇보다도 거울
이미지를 깨뜨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리 열심히 거울을 들여다 본다한들 거울 속에 비춰지는 이미지는 상대방이 아닌 바로 나 자신임에
다름 아니다. 케네디가 당시 소련 지도자 후르시초프의 시선으로 사태를 바라봄으로써 쿠바 미사일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처럼 상대방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마지막 일곱번째
인지함정인 '정태적 집착'은 변화하는 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이다. 직류전류만을 고집했던 에디슨과 새로운 인터넷
세상의 도래를 보지 못했던 90년대 초반의 IBM이 바로 이와 같은 정태적 집착에 빠졌다고 지적한다.
'언제나 옛것이 좋다'라는 사고 방식으로 우리는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는 것들을 얼마나 고집스럽게 고수하고 있는가?
바로, 슈퍼밈이다. 슈퍼밈이란 사회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널리 만연하여 다른 모든 믿음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거나 억압을 가하는 모든 종류의 믿음, 생각, 행동을 거리킨다.
새로움에 호기심을 갖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려는 자세가 없다면 '정태적 집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기성세대는 이와 같은 인지적
착각으로 소중한 아들딸들과 후손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잘못을 수시로 범하고 있다. 일명, '경험주의자의 함정'이라고 하겠다.
경험한 사람과 상황을 참고하는 것은 좋으나 도가 지나쳐서 맹신하거나 다른 변수들에 대한 고려를 소홀히 하면 안된다.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진다고들 한다. 경험을 쌓으면 쌓을수록 당연히 좀 더 지혜로워져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과연 이 말이
사실인지는 그다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실제로 지혜는 경험 하나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는 성향을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을 수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현명해지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말하자면 경직된 사고에
빠져들지 않도록 경계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자카리 쇼어, <생각의 함정>p 301 中-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건, 역사로부터 배우기 위함임을 잊지 말아야 겠다.
자카라 쇼어는 이상의 일곱가지 인지 함정을 극복한 인물이나 사례로 마이클 메이, 시암(태국)의 국왕 뭉쿳, 루퍼트 머독같은 이들을
들고 있는데, 나는 여기에 저자인 자카리 쇼어도 포함시키고 싶다. 그는 맹인이지만 정상인보다 훨씬 더 멀리 더 넓게 바라 보았을
뿐만 아니라 정상인들에게 '눈뜬 장님'이 되기 않는 방법까지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동안 나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서 살아온 것 같다.
상대방의 의도와 동기를 내식대로 해석하고 분노하고 화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까지 변연계의 작동에 따라 움직이는 그저
한마리의 파충류에 불과했다면 이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