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마일 스티븐 킹 걸작선 6
스티븐 킹 지음, 이희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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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마일>은 1996년 3월부터 한달에 한권씩 연작 출판되었다가 나중에 합본이 나왔다. 책은 출판되자마자 킹의 명성에 걸맞게 날개 돋힌 듯이 팔려나갔고 동명 영화로도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미국인이라는 점은 어떤 의미에서는 상당히 큰 행운이라 하겠다. 가장 미국적인 것이 바로 가장 세계적이니 말이다. 만약 스티븐 킹이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출신이었더면 그가 지금과 같은 인기와 지위를 얻었을까 싶다. 

 

바꿔 말하자면, 이 세상 곳곳에는 스티븐 킹 못지 않은 재능과 창의성을 겸비한 작가들이 있지만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고작 자국에서 인정받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사람들이 셀수도 없이 많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태어나 작품 활동을 하는 이땅의 작가들은 이런 의미에서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 한편, 미국의 독자들은 영미 소설을 제외하곤 다른 대륙의 작가들을 접할 기회가 생각보다 적으므로 아무래도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계속 좁은 시야속에 머물다보면 스스로 도태되고 마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설이 길어졌다.   

 

<그린마일>은 장르소설과 본격소설의 경계에 서 있는 스티븐 킹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해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스티븐 킹은 1973년 <캐리>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70년대에는 주로 '공포괴기' 소설을 주로 발표했다. 80년대에 들어와서는 훨씬 더 중후해져서 <미저리> <사계> 등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킹 월드'를 만들어낸 바 있다. 1990년대는 작가가 '여성'적인 것과 '영'적인 것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 시기로 이해되기도 하는데, 이는 90년대에 <돌로레스 클레이본> <로즈메더>  <그린마일> 등의 작품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원숙한 사십대를 지나 노년의 문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오십대에 접어든 킹의 시야가 훨신 더 넓어지고 부드러워졌다고나 할까.

 

<그린마일>은 바로 이와 같은 작가의 인생 괘적 위에서 만들어졌기에 더욱 더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작품은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2년 콜드마운틴 주교도소의 E동 사형수 전용동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자, 삶과 죽음의 이야기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사형집형'이라는 행위를 통해 킹은 죽음이 아닌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인간의 비굴과 존엄, 인종차별 및 살인과 방화 그리고 진실과 거짓 등등... 이 세상에서 매일 매시간 매초마다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소묘처럼 그려진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하고 강렬하며, 필연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고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어쩌면 작가는 우리의 삶과 죽음이 바로 '이러하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루동안 예측할 수 있는 일들과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어느 정도 비율로 일어나고 있을까? 

실제로 우리의 삶은 전체적인 부분만 예측하고 조정할 수 있을뿐이다.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부분들은 하나같이 예측이 불가능하고, 예측한다하더라도 결과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아 무리 과학적 논리와 종교적 교리를 적용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탄생 자체가 하나의 '우연'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의 죽음 역시 '우연'일 뿐이다. 어느날 갑자기 길을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고...밥을 먹다가 갑자기 쓰러져 죽고... 때마침 날아온 벽돌에 맞아 죽고... 하필이면 못쓸 병에 걸려 죽고...

그러기에 삶과 죽음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바램이요 희망사항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작법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은 매우 흔하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만큼 진솔해서 청자의 시선을 붙잡기에 유리하다. <그린마일> 역시 이와 같은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폴 에지콤이라는 주인공이 자신이 40세되던 해에 일어났던 일들을 60년이 지난 1992년에 조지아 파인스 양로원에서 회상하면서 쓴 일종의 '회고록'이다.

 

폴 에지콤이 존 커피라는 사형수를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었으리라.

그 럼, 존 커피가 폴 에지콤의 요도염을 치료하고 무어스 소장의 부인인 멜린다 무어스의 뇌종양을 치료한 것도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퍼시 웨트모어와 브래드 돌런 같은 인물이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니 우연의 범주에서 예외로 치더라도 딸랑씨의 존재는 과연 우연인가 필연인가?

 

작가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는 것들을 믿게끔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인가보다. 스티븐 킹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믿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이런 의미에서 볼때, <그린마일>은 색다른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데 그건 바로 인간이 자신의 삶(죽음을 포함하여)을 스스로 조정하고 통제할 수 없으며 예측불허의 '우연(혹은 운명?)'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부조리의 역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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