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한국으로 떠났어요 - 조선족,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보리 청소년 7
조선족 아이들과 어른 78명 지음, 길림신문.인천문화재단 엮음 / 보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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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중 수교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1992년 수교이후 양국 관계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 한국에게 중국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중요한 국가가 되었으며, 미우나 고우나 중국인들과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 양국 관계가 긴밀해진 만큼 재중 교포인 조선족 사회도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다. 한국의 높은 경제 수준 덕분에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소수민족이 되었다는 점은 '빛'이라면,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경계인으로 겪어야 하는 소외와 차별 그리고 조선족 사회의 해체는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엄마가 한국으로 떠났어요>는 조선족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학부형 그리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길림신문사가 주최하고 인천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백일장 대회에서 입상한 작품들을 엮은 문집이다.

 

 

한국으로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조선족 아이들의 애틋한 마음과 학생수 부족과 교원난으로 위기에 처해 있는 조선족학교와 조선어 교육의 앞날을 우려하는 선생님들의 안타까움 그리고 돈벌이를 위해 다들 한국으로 떠나는 와중에서도 가정과 교포 사회를 지키기 위해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내는 조선족 학부모들의 솔직한 고백을 접할 수 있다.

 

 

 

우리 어머니는 너무 불쌍한 분이시다. 한국으로 돈벌이를 떠난 아버지가 근 10년 동안 무소식이자 어머님께서는 우리 두 형제를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말할 수도 없다. 매일매일 아버지 소식을 기다리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신 어머니, 할 수 없이 오늘 또 한국으로 떠나는 것이다.

엄마가 기차에 오르기 전에 나는 엄마한테 매달리며,

"엄마, 아빠처럼 우리를 버리면 안 돼요, 엄마까지 없으면 우리는 못 살아요."하며 목놓아 울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어머니가 나를 두고 먼 곳으로 떠나간다. 돈이란 도대체 무엇인데 이토록 우리를 힘들게 하는지, 우리는 왜 산산히 흩어져 살아야만 하는가?

 

 

 

-장춘시 이도구조선족소학교 5학년 손설화의 <엄마가 한국으로 떠났어요> 中-

하루 마지막 수업 시간이 끝났다. 담임인 나는 습관처럼 교실로 갔다. 헌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모두들 울고 있었다.

(......)

"선생님, 선생님도 우리 학교가 없어지면 우리 따라 가시지 않나요?"

"수업 시간이 끝날 무렵 영어 선생님이 마지막 수업을 해 주신다고 하시며 또 우리 따라 가실 수 없다고 작별 인사를 했어요."

(......)

실은 이날 나도 아이들에게 마지막 수업을 하였지만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종일 기분은 별로였고 마음속 어딘가가 꽉 막히면서 아팠다.

돌이켜 보면 교편을 잡은 지도 벌써 옹근 27년째다. 이 학교에서 쭉 있으면서 요즘에 와서는 조선족 교육이 진통을 겪고 있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 산거 지구 조선족 사회 발전과 더불어 많은 학생, 특히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거나 가정 형편이 괜찮은 학생들이 도회지 학교로 전학해 가는 바람에 우리 학교는 점점 가련하고 썰렁하기 그지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이번 시간에는 무엇을 가르쳐 줄까 하고 기대하고 있는 아이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 척박한 땅에서라도 좀 더 무엇을 거두어 보려고 열심히 가꾸었는데 그 결실을 보지도 못한 채 끝장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류하현 삼원포조선족학교 김병순, <같이 울었다> 中-

 

 

내몽골 초원 가운데 우리 민족이 집중되어 사는 곳은 그래도 흥안맹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을 때는 도시에만 조선족이 5천명이 있었고 가까운 교외에 크고 작은 조선족 마을이 열 개나 되었다. 조선족 학교도 알뜰하게 만들어졌고, 민족 운동회요 친목회요 하면서 조선족 모임도 자주 가지면서 '가갸거겨'우리말 향기를 물씬물씬 풍기며 즐겁게 살아왔다.

그러던 것이 한국 붐과 도시 진출 바람이 일면서 조선족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집과 땅을 버리고 돈벌이 간 조선족들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젠 그 흥겹던 굿거리장단도 희미해지고 그냥 이름만 '조선족촌'이지 실은 한족 마을이나 다름없다.

(......)

가장 가슴 아픈 것은 허리끈을 졸라매고 세웠던 조선족 학교가 우리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교원으로 일하는 우란호트시 조선족중학교는 내몽골에서 유일한 조선족완전중학교지만 지금은 학생이 이백 명이 되나마나 하다. 전교 교진원 마흔 두명 가운데 한족교원이 열다섯 명이고 또 조선말을 모르는 조선족 교원은 열일곱 명이고 조선어로 강의할 수 있는 교원은 열두 명밖에 안 된다. 우리 말을 하는 교원이 모자라서 조선족 교원을 받아들이려고 노력은 하지만 오려는 조선족들이 없고 오히려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

(......)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안목도 문제다. 연해 도시에서는 한족 학생들도 한국어를 배운다고 열을 올리고 있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중국에 살면서 한국어가 뭘 필요하냐'며 팔짱을 끼고 있다. 혹 한국 유학을 가거나 하는 막부득이한 경우에 부랴부랴 '가갸거겨'를 배우는 사람들이 잇지만 그것도 가물에 콩 나듯 한다.

이 상태로라면 내몽골에서 우리 민족 말과 글이 얼마나 더 버텨낼 수 있을까? 60년 전 조선족 어르신들은 우리 민족 말과 글만은 꼭 후대들에게 전수해 주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빈주먹으로 한 장 한 장 벽돌을 쌓아 흥안맹 우란호트시에다 하나뿐인 조선민족학교를 일떠세웠다. 대동란 시대에도 된서리를 맞아 엉망이 되었지만 끈질긴 민족심으로 한 세대 한 세대 이어 지금까지 버텨고 오지 않았던가!

 

 

 

* 대동란: 중국 문화혁명.

 

-내몽골자치구 우란호트시 조선족중학교 김혜연, <우리말, 우리 글 지키는 초병>-

 

해외 출국 회오리 바람에 휩쓸린 둘레 사람들 때문에 나 또한 몇 번이나 담장 위의 갈대마냥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곤 했다.

어린 자식 울음소리를 등 뒤에 남기고 매정하게 떠나 버리는 사람들. 삼사 년이라고는 하지만 가고 난 다음에는 그것이 기나긴 여정이 돼 버리고, 그사이 아장아장 걸음마 하던 어린것은 초,고중생으로 훌쩍 커 버린다. 아이들 성장 과정은 눈물로 얼룩져 있고, 부모 사랑 대신 돈이 뒤따라오기 때문에 아이들은 인정과 배려심이 없고 도덕성도 심히 모자라게 된다. 매번 학부모회의 때마다 소개되는 결손가정에 대한 내용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저리면서도 부모가 함께하는, 몇 명밖에 안 되는 가정 속에 내 가정이 들어 있어 다소나마 위안을 느낀다.

풍족한 돈이 없어도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아빠, 엄마 사랑을 매일매일 줄 수가 있어서, 곁에서 지켜 줄 수가 있어서 마음이 든든하다.

 

 

-장춘시 최초영, <작은 사랑, 작은 행복> 中-

 

 

 

 

이 책을 읽고 나면,

북한 사투리가 섞인 독특한 억양으로 한국말 아닌 한국말을 구사하는 조선족들이 더 이상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으며, 웬지 모르게 70년대식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다소 촌스러운 모습조차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어린 아이들을 맡겨 놓고 돈벌이를 위해 어렵사리 한국행을 선택한 이들은 우리보다 더 못나지도 더 잘나지도 않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지금 재중 교포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야말로 언젠가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동포들을 대하는 우리의 참모습이 아닐까 싶다. 역사적 비극이 만들어낸 민족 분열을 고착화시키지 않으려면 한국에 나와 있는 조선족부터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하루 빨리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요즘 한창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올바른 정착은 바로 우리와 같은 민족인 조선족 동포들을 이해하고 감싸안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같은 한민족도 보듬지 못하면서 어떻게 피부색도 말도 다른 타민족을 보듬어 안을 수 있단 말인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살아온 조선족들은 사실 항일 독립 운동의 자손들이거나 독입운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이들의 후손들이다. 그러므로 국가적 차원에서 이들에게 약간의 법률적 편의를 제공하고 경제적 도움을 주는 정책은 필요하다고 본다.

 

 

<엄마가 한국으로 떠났어요>는 일러두기를 통해 조선족 사회의 표기법을 최대한 존중하였음을 밝혀두고 있다. 예를 들면, 과당(수업) 과문(교과서 본문) 교원절(스승의 날) 등 중국어에서 영향을 받은 단어들과 '흑룡강성(헤룽장성) 길림(지린) 연길(옌지) 등등 외래어 표기법 원칙을 따르지 않고 한자 독음 그대로 표기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한국에 나와 있는 교포들 역시 한국어와는 다른 조선어 문법으로 인해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은 외국어를 새로 배우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국어 문장을 자주 읽고 쓰다보면 몇 개월만에 충분히 교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한국에 나와 있는 대다수 교포들이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 사회에 동화되려고 하기보다는 어서 빨리 돈을 벌어 중국으로 귀국할 생각만 하는 것같아 아쉽다. 한국인에게 같은 민족으로 인정받고 대우받으려면 조선족들 역시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한국을 이해하되 중국과는 구별되는 민족적 정체감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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