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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푸 - 류전윈 대표소설선 ㅣ 글누림 비서구문학전집 4
류전윈 지음, 김태성 옮김 / 글누림 / 2012년 4월
평점 :
류전윈의 단편소설집이 최근 출간되었다.
<타푸:塔铺>와 <신병중대:新兵连>은 작가가 각각 1976년도와 1987년도에 쓴 작품으로 자전적 성격이 짙게 배어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타푸>는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다시 문을 연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입시 준비를 하는 70년대 중후반 중국 농촌 십대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고된 농사일과 빈곤에 내몰려 있는 농촌의 젊은이들에게 대학진학과 군입대는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인생으로 통하는 관문이기도 했다.
1958년 중국 허난의 옌진(延津)현에서 태어난 류전윈 역시 문화대혁명으로 진학시기를 놓치고 제도권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세대이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인 단편 <타푸>는 1978년 베이징 대학교에 입학한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힘든 집안 형편 속에서도 자식의 대학 진학을 위해 발에서 진물이 나는 것도 모르고 수십리 길을 왕복하여 '세계지리' 책을 구해다 주는 주안공 아버지의 모습은 진한 부성애를 느끼게 한다.
몸져 누운 아버지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대학 입시 당일. 원치 않는 사람에게 팔려가듯 시집을 간 리아이롄(李爱莲), 아내와 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결국 대학 입학이라는 꿈을 포기하고 마는 왕취안, 깊은 밤 굶주린 배를 움켜주고 몰래 매미를 잡아 불에 구워 먹다 들킨 모주어 등등...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꿈과 이상으로 활활 타오르던 70년대 중국 젊은이들의 모습 속에는 이념도 사상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보다 나은 삶과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모습일 뿐이다.
류전윈의 작품 특히 단편들은 평범한 중국인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삶에 대한 경건함과 생존에 대한 치열함이야말로 사상과 인종을 뛰어 넘는, 인류의 보편적 진리임을 보여주고 있다.
위화, 쑤퉁 등과 함께 중국의 신사실주의 작가群으로 분류되는 류전윈은 작품속에서 불필요한 과장이나 표현을 즐겨 사용하곤 하는데, 작품의 '리얼리티'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폄하하기보다는 차라리 중국식 리얼리즘의 한 특징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한편, <신병중대>라는 작품은 대학 진학과 함께 70년대 중국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인 군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신병중대>는 말 그대로 이제 갓 군대에 입대한 사람들이 3개월 동안 훈련을 받은 후 각 부대에 배치되기 직전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역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작가와 같은 세대들의 이야기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군단부로 배치받았다며 좋아하던 '왕디'가 장차 맡게 될 일은 중풍에 걸린 군단장의 아버지를 간호하는 것이며, 낮은 평가로 결국 남들이 꺼려하는 생산지로 발령난 위안셔우는 '절름발이 가운데 장군을 뽑는 격'으로 자대에 도착하기도 전에 부분대장에 임명된다. 인생을 살다 보면 때론 예기치않은 일들이 복을 불러오기도 하고 반대로 화근이 되기도 한다.
반면, 특별히 큰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건만 인생의 시계바늘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누구를 원망할수도 없고 되돌이킬수도 없다.
공산당 입당을 위한 '검증'을 견뎌내지 못하고 조사원을 향해 총을 발사한 후 도망쳤던 리샹진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그는 결국 15년 실형을 선고 받고 만다. 공산당에 보란듯이 입당하여 머리를 양가래로 딴 여자친구와 당당하게 결혼식을 올리고자 했던 리샹진의 꿈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편, 군단장의 지프를 운전하는 운전병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위안셔우의 '밀고'로 퇴소조치되었던 라오페이는 결국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우물에 빠져 죽은 채 발견된다. 라오페이는 비록 군복 바지를 거꾸로 입는 등 행동이 굼뜨긴 했지만 군인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오히려 '곧이 곧대로'인 그의 성격이야말로 군인으로서 적격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는 결국 군인이 되지 못했고 불명예를 안고 평생 살아가느니 죽음을 택하고 만다.
"동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모두들 당황했다. 군단장의 인사가 참모장이 말한 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참모장이 알려준 인사는 "동지 여러분, 수고가 많습니다."였다. 하지만 모두들 즉시 정신을 가다듬고 "수장님,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를 했다.
다행이 일치된 목소리였고 모두들 마음을 놓았다. 유독 '라오페이'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수천수만의 병사들과 달리 그 혼자만 "수장님, 수고가 많으십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다행히 한 사람의 다른 목소리를 군단장은 듣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중대장이 즉시 고개를 돌리더니 분노한 눈빛으로 '라오페이'를 노려보았다.
-류전윈, <신병중대> 中-
소대의 초급 간부 혹은 임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일명 '골간(骨干)'이 되기 위해 펼쳐지는 암투와 경쟁은 중국 사회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 하겠다. 권력이야말로 영혼을 갈아먹는 독충이다.
<타푸>와 <신병중대>는 류전윈 특유의 날카로운 현실비판의식은 다소 떨어지지만 20대의 풋풋함과 진솔함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반면, <우두머리:头人>은 어딘지 그의 장편 <고향하늘 아래 노란꽃:古乡天下黄花>과 구성이 엇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고향하늘 아래 노란꽃>은 분명 <우두머리>라는 단편 속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사하다. 그리고 <전언:口信>이라는 작품 역시 작자의 장편 <핸드폰:手机>의 제3장 '옌(嚴)씨와 주(朱)씨'의 내용과 완전히 일치했다.
어찌된 영문일까?
아마도 작가는 <우두머리:头人>라는 단편을 탈고한 후, 미진함이 남아 살과 피를 더해 장편소설로 다시 썼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반면, <전언:口信>이라는 단편이 장편소설 <핸드폰:手机>의 뒷부분과 100%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작가가 장편소설을 쓰면서 예전에 써놓았던 자신의 단편을 <핸드폰:手机>에 첨가한 측면이 강해 보인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표절한 것도 아니므로 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역자는 독자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역주나 역자 후기 등을 통해 최소한 이 점을 밝히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현대 소설을 집중적으로 번역하여 한국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선봉장에 서 있는 역자라면 최소한 독자들에게 위와 같은 '예의' 정도는 지켜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야 일본소설이나 영미소설보다 훨씬 더 낯설고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중국 소설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 읽으면서 서서히 열혈 독자층이 형성될터이니 말이다.
번역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언급하자면 이번 작품의 번역작업은 상당히 조급하게 진행되었고 출판 전 마무리 작업 역시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자의 번역 실력이야 이미 충분히 다른 작품들을 통해 '검증 '되었으니 '실력탓'을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암튼, 조사라든지 문장의 호응 관계가 부적절하거나 어색한 부분이 종종 눈에 띄어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