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 - 상 스티븐 킹 걸작선 2
스티븐 킹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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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은 1977년 작으로 1974년 <캐리>로 데뷔한 스티븐 킹의 초기 3대 호러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스티븐 킹은 <샤이닝>을 쓰기에 앞서 1975년 <세일럼스 롯(Salem's Lot)>을 출간한 바 있다.

 

 

<샤이닝> 역시 <캐리>와 마찬가지로 염력(혹은 초능력)을 갖고 있는 여섯살 소년 대니가 주인공이다.

대니의 아빠 잭 토런스는 유명작가를 꿈꾸면서 고등학교에서 작문을 가르쳤으나 학생을 무지막지하게 폭행하여 해고되고 만다. 잭은 아내 웬디, 아들 대니와 함께 생계를 위해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동절기 동안 폐쇄되는 콜로라도에 위치한 오버룩 호텔의 관리를 맡게 된다.

 

 

눈 덮인 겨울 산의 유서깊은 호텔에서 잭은 서서히 미쳐간다.

그리고...

급기야는 아내와 아들을 죽이려고 한다.

 

 

그를 광기로 몰아넣은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뜻대로 쓰여지지 않는 희곡작품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남편이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건 아닌지 혹은 아들을 구타하지는 않을지 끊임없이 경계하고 의심하는 아내때문이었을까.

혹은,

수많은 사람들이 생을 마감한 호텔의 어두운 과거를 알아버렸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고 종종 의식을 잃곤 하는 어린 아들의 존재때문이었을까.

.

.

.

잭을 광기로 인도한 건 다름아닌 소외와 환상이였다.

완벽하게 폐쇄된 공간인 오버룩(사회로부터의 소외를 상징)에서 잭은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두려움의 상징이었던 부친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다.

 

알콜중독에 실업자일뿐인 자신의 암담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고, 신뢰할 수 있는 남편이자 존경스러운 아빠의 자리를 되찾고 싶어했다. 이런 잭의 소망이 절실하면 절실할수록 그를 둘러싼 현실은 더욱더 그를 '저 멀리' 밀어냈다.

 

 

<샤이닝>은 폐쇄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가족간 폭력을 통해 인간 소외를 그리고 있다.

격리되고 소외되는 것에 따른 불안이야말로 단체생활을 하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불안 즉 공포 그 자체이리라.

 

 

공포는 스스로 파멸한다.

처음에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것들을 공격하지만 결국에는 스스로를 공격하여 죽음에 이르고 만다. <샤이닝>의 주인공 잭 토런스 역시 공포에 휩싸여 서서히 미쳐하면서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을 해치고 나중에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오버룩을 증기 폭발로 날려버리는 것처럼.

 

 

 

찰스 브록든 브라운과 에드거 앨런 포의 뒤를 잇는 미국 고딕 소설의 계승자로 불리우는 스티븐 킹답게 그는 자신의 두번째 장편 소설(<샤이닝>)에서 에드가 앨런 포우에 대한 '오마주'를 마음껏 선보이고 있다. <샤이닝>에서는 포우의 단편 중 구성과 작품성이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진 <붉은 죽음의 가면>의 한 장면이 마치 주문처럼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붉은 사신이 모두를 덮쳤다!'

'가면을 벗으십시오! 가면을 벗으십시오!'

그러자 반짝이는 아름다운 가면 뒤에 어두운 복도를 따라 시뻘건 눈을 크게 뜨고 죽일 듯이 대니를 쫗아왔던 그 형체의 여태까지 보지 못한 얼굴이.

오, 대니는 가면을 벗을 시간이 되면 어떤 얼굴이 드러날지 두려웠다.

 

 

-스티븐 킹, <샤이닝> 中-

 

 

 

 

스티븐 킹의 또 다른 초기 호러 작품인 <세일럼스 롯> 역시 인간 소외와 그에 따른 공포를 다루고 있다.

 

 

1975년에 출간한 <세일럼스 롯>은 일견 뉴잉글랜드의 한 마을에 출몰하는 흔한 흡혈귀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소설 또한 인간 교류가 단절된 현대 사회에 대한 저자의 심오한 성찰과 강력한 사회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앞으로 스티븐 킹이 즐겨 소설의 배경으로 사용하게 될 주요 모티브가 등장한다. 즉, 사람들이 서로 단절된 채 살고 있는, 그래서 악의 힘이 파고 들어갈 여지가 있는 뉴잉글랜드 시골의 어느 조그만 마을, 그리고 드디어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악에 대항해 싸우며 다시 한번 인간 교류의 회복을 시도하는 이성적이고 선량한 사람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각기 다른 문제점들과 감추어진 비밀과 드러나지 않은 악을 가슴에 품은 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며, 마을 전체의 분위기 또한 그러한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홀연 이 마을에 나타나 사람들의 피를 빨고 파멸시키는 흡혈귀는 그런 상황이 만들어 낸 필연적인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소설 속의 흡혈귀는 이미 신앙을 잃어버린 신부의 십자가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흡혈귀의 흡혈은 왜곡된 인간 교류의 상징이다. 진정한 교류는 남의 피를 빨아먹음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피를 남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남을 살리는 것일 것이다.

1983년에 저자 스티븐 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일럼스 롯>에서 진짜 무서운 것은 흡혈귀들이 아니라 대낮의 텅 빈 마을입니다. 옷장에 뭔가가 숨어 있고, 침대 밑이나 트레일러들의 콘크리트 더미 속에 시체들이 들어 있는 마을 말입니다. 내가 그 소설을 쓰고 있는 동안, 텔레비전에서는 워터게이트 사건 청문회가 계속되고 있었지요. 하워드 베이커는 이렇게 말하곤 했지요. '내가 알고 싶은 건 당신이 무엇을 알고 있었고, 언제 알았느냐는 것이오.' 그 말은 강박관념처럼 나를 사로잡았고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습니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저는 내내 감추어진 비밀과 백일하에 드러난 비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세일럼스 롯>은 텔레비전 영화(토비 후퍼 감독, 1979년)로도 제작되었는데, 원작의 음산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 시청자들로 하여금 뼛속 깊은 고독과 단절과 두려움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정작 무서운 것은 흡혈귀가 아니라, 흡혈귀를 불러들인 마을 사람들의 완벽한 단절과 어두운 비밀이라는 저자의 말은 <세일럼스 롯>이 단순한 공포 소설이 아니라, 중후한 예술적 주제를 가진 뛰어난 문학 작품이라는 사실을 잘 증명하고 있다.

 

 

-김성곤, <스티븐 킹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中-

 

 

 

 

나는 내가 이 글을 마치고 나서 <세일럼스 롯>을 읽을 것임을 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먼 훗날 다음과 같이 기억할 것이라는 사실도...

 

 

스티븐 킹의 <샤이닝>과 <세일럼스 롯>을 읽고 있던 시기.

한국에서는 지하철에서 침을 뱉었다고 뭐라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10여명의 행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른 일용직 근로자가 경찰에 붙잡혔고, 은둔형 외톨이가 아무 이유도 없이 슈퍼마켙 여주인을 흉기로 찔렀으며, 태풍이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가던 날 7살 어린 여자 아이가 가족과 함께 자고 있던 집안에서 이불째 납치되어 성폭행당했는가 하면, 아동용 포르노에 중독되어 있던 30대 아빠가 자신의 친딸을 성폭행했다는 사건들이 연일 신문지상을 뒤덮고 있다고......

 

 

 

지금 우리는 더이상 흡혈귀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흡혈귀보다 우리를 더 공포로 몰아넣는 건, 다름 아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위와 같은 '묻지마 범죄'다. 스티븐 킹이 자신의 작품 <세일럼스 롯>에서 진짜 무서운 건 흡혈귀가 아니라 흡혈귀를 불러들인 마을이라고 말한 것처럼 '묻지마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범죄와 범죄자 자체가 아니라 범죄를 불러오는 사회가 아닐까. 가족조차 서로 교류하지 않는, 인간미가 사라진 사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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