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코드 - 너와 나를 우리로 만나게 하는 소통의 공간
신화연 지음 / 좋은책만들기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부끄러움이란 감정은 부정적이고 나약하며 원활한 사회생활을 방해하는 불편한 감정이자 약자의 감정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정말 과연 그럴까? 심리학 전공자의 눈에 비친 부끄러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저자에 따르면,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발생하는 것은 우리의 행동이나 경험이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행동이나 경험과 어긋났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부끄러움은 내 인식의 넓이 안에 다른 사람의 시각이 함께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존재의 한계를 깊게 그리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강자의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머릿속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변했다.

 

 

부끄러움이란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이 얼마나 충격적인 인식이요 발견인가. 인간 존재의 깊이와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감정으로 부끄러움은 약자의 감정이 아닌 오히려 강자의 감정이란 주장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서양의 '죄책감'과 동양의 '수치감'을 비교하면서 동서양의 문화적 특징을 설명한 점이 이채롭다. 서양은 고해성사등을 통해 잘못을 스스로 고백하는 '개인의 목소리'에 초점이 맞추어진 반면, 동양은 '시각'을 중시해서 '얼굴이 빨개진다'거나 '어떻게 하늘 아래 낯을 들고 다니느냐'는 등 '타인의 눈'에 초점이 맞추어진 '부끄러움 코드'가 발달해 왔다는 주장은 신선하면서도 일견 타당성있게 받아들여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심리학자답게 저자는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에 대처하는 방식이 결국 개인과 사회 그리고 인류 전체의 행복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고 주장한다.

 

 

부끄러움이 긍정적으로 발현되어 미안해-> 괜찮아 -> 관계회복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회피한다면 타인에 대한 공격이나 자신에 대한 공격 혹은 비난이나 책임회피 등으로 나타나고 결국 정상적인 관계가 회복되지 못하면서 여러가지 사회문제를 발생시킨다. 모든 형식의 폭력과 분노는 사실 무력하고 못마땅한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이자 폭력이지 않은가.

 

 

이 밖에도 부끄러움을 언급하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부끄러움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까지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해준다.

 

 

조물주의 피조물인 아담과 이브는 조물주의 말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는다. 아담과 이브는 결국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조물주로부터 달아나고 만다. 여기에서 조물주의 말이란 사회나 집단이 개인에게 부여하고 기대하는 행동양식으로 대치된다. 즉, 사회나 집단의 바람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 발현되는 것이 바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아담과 이브는 부끄러움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잘 알다시피,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아담과 이브는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옷으로 몸을 가렸다. 조물주는 자신이 만든 완전무결하고 자랑스러운 피조물을 옷으로 가린 것이다!

 

 

조물주의 현신(現身)인 인간이 옷으로 부끄러움을 가렸다는 건 신이 자신의 피조물의 부끄러움에 깊이 공감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거부되지 않고 다시 신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면서 부끄러움이라는 기제를 통해 자기 한계를 극복하는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저자는 부끄러움이 어떻게 표현되고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과 인생이 결정된다고 보았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주변사람들과 사회로부터 거부되고 왜곡 증폭된다면 폭력을 낳지만, 받아들여지고 공감된다면 훨씬 더 성숙한 인간과 대인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갖는다는 건..

그만큼 남들보다 더 뻔뻔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남들보다 더 많은 재산이나 지위를 얻은 사람들을 보면, 남다른 재능이나 노력도 물론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차마 하지 못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마 남의 손가락질과 비아냥이 무서워 머뭇거리는 사이에 '과감'하게 나서서 결국 제 것으로 차지하고 만다.

 

이런 모습을 가리키며 손가락질과 비아냥을 퍼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움이 인다.

 

우리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부끄러워서 하지 못한 행위의 결과에 대한 한없는 부러움.

 

 

부끄러움을 안다는 건...

그만큼 솔직하다는 것이고 그만큼 인간적이라는 뜻이다.

 

 

부러움을 느낀다는 것 역시...

그만큼 솔직하다는 것이니, 또한 그만큼 인간적인 것이다.

 

 

그러나 부끄러움과 부러움에 어울리는 동사의 다름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부끄러움은 '안다'라고 한다. 즉, 배워서 아는 것이요 깨닫는 것이다. 반면, 부러움은 '안다'라는 동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부러움은 그저 느끼는 것이다. 즉, 본능적 욕구이다. 그렇다면 부끄러움과 부러움 중 어느 것이 더 고차원적인지는 분명해진다.

 

 

부끄러움과 부러움 사이의 적절한 조화 그리고 그 간극을 좁혀나가는 것이 바로 좋은 '인격' 을 형성하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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