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태동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아......'

마지막 책장을 넘긴지 벌써 이틀이 흘렀건만 단말마의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는다. 마치, 작품속 주인공들처럼 하얀 어둠 속을 걷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총3권으로 이루어진 작품 중, 제1권을 다 읽었을 무렵 범인의 윤곽은 그려진다. 청초한 미모 뒤에 감추어진 사악함과 세상을 속이는 교활함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점점 더 악랄하게 변해가는 범인을 지켜보면서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래, 그랬었구나....'

범인도 범행 동기도 밝혀지면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가슴은 더욱 답답해지고 머리는 더욱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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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하라 전당포 주인 기리하라 오스케가 빈 건물 안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저항의 흔적도 범인의 발자국도 없다. 그저 빈 건물 안에서 뛰놀던 아이들의 발자국만 무성할 뿐. 오스케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만났던 니시모토 후미요는 열 두살 어린 딸 유키호를 남겨둔 채 의문의 자살을 하고, 담당 형사인 사사가키 준죠에 의해 강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데라사키 다다오 또한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오일쇼크로 강력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결국 전당포 주인 살인 사건은 흐지부지 미제사건으로 남겨지고......

 

후미요의 어린 딸인 유키호는 엄마가 죽은 후, 아빠쪽 친척인 가라사와 레이코의 양녀가 되면서 평범한 중학교 생활을 시작한다. 그녀를 둘러싼 소문들이 무성했지만 타고난 외모와 품위 있는 행동거지로 유키호는 학교의 인기스타로 부상한다. 심지어 근처 남학교의 남학생들이 하교길에 몰래 숨어서 유키호의 사진을 찍어가기도 한다. 그런 그녀 옆에는 언제나 단짝 에리코가 함께 한다.

 

한편, 아홉살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은 기리하라 오스케의 아들 기리하라 료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말수 적고 뭔가 어두운 구석이 있던 료지는 눈에 띄지 않게 학교 생활을 하지만 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컴퓨터를 익숙하게 다룰 줄 알고, 가끔 따분한 중년 여성들에게 젊은 남성들을 공급하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번다. 그의 친구 소노무라 도모히코 역시 료지의 검은 유혹에 걸려들어 그를 도와 컴퓨터 매장을 운영한다. 전당포 지배인으로 일했던 마츠우라가 나타나기 전까지...

 

세이카 여자대학에 들어간 유키호는 단짝 에리코와 함께 에메이 대학과의 연합댄스동아리에 가입하여 시노즈카 가즈나리를 알게 된다. 댄스 동아리 회장인 가즈나리는 모든 이들이 선망하는 유키호 대신 그녀의 단짝인 에리코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던 어느날 에리코는 중학교 시절 유키호의 경쟁상대였던 후지무라 미야코처럼 여자에게는 치명적인 불미스러운 일을 당하게 되면서 가즈나리 곁을 떠나고 만다. 

 

졸업후, 유키호는 댄스 동아리 선배인 다카미야 마코토와 결혼하지만 마코토는 유키호보다는 미사와 치즈루라는 파견사원을 사랑한다. 결국 마코토는 결혼식 전달 치즈루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그녀가 예약한 호텔에서 기다리지만 치즈루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주식투자와 부티크 운영으로 승승장구하는 유키호는 결국 마코토와 이혼하고 시노즈카 가즈나리의 사촌형과 재혼을 한다.

 

이 과정에서 가즈나리가 고용한 탐정 이마에다는 유키호의 과거와 그녀와 연관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불행해졌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러나 어느날 그는 행방불명되고 만다. 

 

컴퓨터 매장에서 사라진 기리하라 료지는 대학병원 약사로 근무하는 노리코 앞에 우연을 가장하여 나타나 자신을 아키요시 슈이치라고 소개한다. 노리코는 슈이치-기리하라 료지-에게 깊이 빠져들지만 빠져들면 들수록 그는 비밀투성이 의문투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9년 전 전당포 주인 살인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사사가키 준죠는 이미 정년퇴직을 했지만 끈질기게 범인의 행방을 쫒고 있다. 결국, 시노즈카 가즈나리와 함께 하나씩 하나씩 퍼즐을 맞추어 나간다.

 

사건이 미제에 빠진 건, 첫단추부터 잘못 채워졌기 때문이다.

사건 당일 오스케가 은행에서 찾은 백만엔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오스케의 유품인 라이터를 데리사키 다다오가 어떻게 갖고 있게 된 걸까?  첫만남부터 예사롭지 않던 분위기를 내품던 료지는 사건 발생 시간대에 정말 집에 있었던 걸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던 조숙한 소녀 유키호는 그때 정말 도서관에 간 걸까? 니시모토 후미요의 죽음은 사고사를 가장한 자살이 아니라 타살은 아니었을까? 범인을 왜 성인으로만 한정했을까? 어린 아이들의 사건 당일 알리바이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았다는 실수의 대가는 너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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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인군자이거나 아니면 바보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세상은 따듯한 빛이 가득한 엄마의 품속과 같은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상은 냉혹하다 못해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렇게 상처받은 영혼은 때론 자신의 아픔을 고스란히 또 다른 타인에게 되돌려주면서 '악'을 확대 재생산하기도 하지만,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여 악을 선으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창조해낸 인물-예를 들면, 유키호-은 안타깝게도 전자에 속한다. 세상으로부터 따듯한 빛을 받지 못한 불운을 타고 났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불운이 주변 사람들을 교묘하게 이용하거나 불행에 빠뜨리고 심지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생명까지 앗아가는 행동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어긋한 가치관을 소유한 인물은 어쩌면 약자에 대한 무관심과 이기적인 사회풍토가 만들어낸 '사회악'으로, 작가가 침잠한 점도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싶다. <백야행>은 트릭과 범인 및 범행수법 등이 상당부분 생략되어 있다는 점에서 본격파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사회파추리소설쪽에 보다 근접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작품의 도입 부분에 '오늘을 위해 마쓰모토 세이초의 신작을 읽지 않고 있었다'라는 문장은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마쓰모토 세이초에 대한 작가의 '오마주'로 읽힌다. 

 

미야베 미유키, 온타 리쿠등과 함께 일본 추리소설 3인방으로 불리우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세계는 상당히 거칠고 현실적 괴리가 분명 존재하지만, 그가 지향하는 주제는 악이 아니라 선인 것만은 확실하다. 밝음을 표현하는 건 빛이 아니라 오히려 어둠이듯, 악을 그리므로써 선을 구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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