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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털 같은 나날
류전윈 지음, 김영철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1958년에 출생한 류전윈(刘震云) 은 <허삼관매혈기>의 위화, <형제>의 쑤퉁 등과 함께 중국
대륙의 신사실주의 작가로 분류되지만, 주로 20세기 초중반을 작품의 시대적 배경으로 삼은 이들과는 달리 1980년대 중국
사회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一地鸡毛:닭털같은 나날》과《单位:기관》등의 작품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국가로부터 직장과 주거지를 배정받고 그저 하루하루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살아가는 80년대 중국 도시민들의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먹고 사는 의식주(衣食住)만큼 인간성을 원초적으로 건드리는 문제도 없다.
'곡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경제적으로 넉넉할수록 인간의 정신 세계 또한 너그럽고 윤택해지는 반면, 삶이 고달플수록 인간의 이기적인 면모가 유감없이 들어나는 법이다.
중국어를 접한 외국인들에게 가장 어려운 단어 중에 하나가 아마 '单位(기관)'일 것이다.
중국인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누구나 单位에 소속되어 집단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출생신고와 동시에 档案(당안)이 만들어진다. 档案은 우리나라의 호적과 엇비슷하지만 출생년도와 출생지
주민등록번호 그리고 부모의 이름 등만 간단하게 적혀 있는 호적과는 달리, 이 档案에는 본적과 부모이름 뿐만 아니라 출신학교 직장명
및 각종 공적과 죄과 등등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당안(档案)은 평생동안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 다닌다. 아이가 유아원에 들어가면 유아원으로 넘어가 보관, 관리되고 다시 유치원
소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등을 거쳐 직장에 들어가면 직장에서 보관 관리된다. 만약 직업이 없으면 거주지 관할 행정기관으로
넘어간다. 자자손손 대대로 한 곳에서 태어나 농사짓고 사는 시골 농민에게도 예외가 없다.
'기관(单位)'은 바로 이 당안(档案)을 보관, 관리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학생들에게 单位는 바로 현재 자신이 다니고 있는 학교이며, 직장인에게는 회사가 바로 单位인 것이다. 철부지
학창시절과 퇴직 이후의 기간을 제외하고, 인생의 거의 대부분과 가장 중요한 시기를 직장에서 보내기 때문에 중국어로 单位는
직장 혹은 회사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잘 알다시피, 과거 중국에서는 직장에서 직급에 따라 주거지를 정해주고 식량과 부식거리를 배급해 주었기 때문에 직장이야말로 개인의 의식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중국인들에게 있어, 单位는 바로 개인의 운명과 사회 생활을 결정해 주는 아주 중요한 곳인 것이다.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의식주 문제를 관장하는 이런 곳에서 부정과 부패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리라.
류전윈의 작품《기관: 单位》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单位에 목숨줄을 매단 채, 개인의 탐욕과 영달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현대 중국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해학적으로 중국 사회의 모순을 신랄하게 풍자한 작가들은 많다.
다만, 위화의 <허삼관매혈기>와 쑤퉁의 <쌀>이라는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이건 꾸며진 이야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있다면, 류전윈의 작품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작가에 의해 꾸며진 '허구'라는 사실 그 자체를
새까맣게 잊게 만든다. 나는 이 점이 바로 그의 작품이 기타 다른 신사실주의 작품들과 맥을 달리하는, 작가로서 류전윈의 뛰어난
점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제목을 굳이 '닭털같은 나날'로 직역할 필요가 있었을까?
'새털같은 나날들'이나 '소소한 일상'등으로 옮겼더라면 한국 독자들에게 좀 더 부담감없이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