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앞의 몇 권의 책에서 차고 넘치도록 읽고 적었으므로 여기서 또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레닌의 희망은 희망으로 그쳤고 소비에트민주공화국연방은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 체제로 돌아선다. 일당독재를 넘어 일인독재는 2차세계대전(러시아식으론 '대조국전쟁'이라고 부른다)의 승리로 면죄부를 받는다. 또다시 승리는 러시아 편이었고, '절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명성은 공인되었고, 이런 뜻밖의 전쟁과 승리의 역사가 오늘날 러시아인에게 어떤 유전인자를 물려줬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레닌 사후 러시아는 국가사회주의체제로 이행해 빠른 경제성장에 올인했고 '또다시' 성공한다. 이 역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성공이었다.
스탈린의 뒤를 이은 흐르시초프와 브레즈네프까지 30여 년 동안 러시아는 마치 스스로 이룬 성취가 외부 세계로부터 오염되는 걸 막기라도 하려는 듯 스스로 크렘린이라는 요새에 갇혔다.
자체적인 봉쇄와 고립이 성공적으로 장기간 지속될 수 있었던 데에는 당시 국제 상황이라는 운도 따랐다. 1970년 대 중동 위기로 러시아의 천연가스 가격이 고공 행진을 하면서 국민들을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경제는 성장을 멈췄지만 등 따뜻하고 배부른 국민들을 러시아 관영TV 앞으로 끌어모으기는 쉬웠다.
하지만 이런 가식적인 평화도 오래가지 못했다. 러시아의 고질병이 도진 것이다. 또다시 경찰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면서 다른 나라의 분쟁에 개입한 게 화근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등은 전세계의 이목이 순식간에 소련에 향하도록 만들었음과 동시에 견고했던 크렘린이라는 요새에 수많은 금이 가있다는 것도 노출시켰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좀더 현대적인 나라로 만들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개혁 개방이 필요했는데, 개혁 개방은 오히려 그동안 감춰뒀던 러시아라는 국가의 단점들을 낱낱이 공개하는 계기가 되어 버렸고, 결국 소비에트연방은 해체된다.
1990년대는 '제2의 동란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배고프고 지친 인민들을 이끌어줄 새로운 지도자, 모욕받은 러시아인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워줄 강력한 차르가 또다시 필요한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혁명이 필요한 순간에 레닌이 있었듯, 바로 이때 적임자가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