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사>라는 대작을 남겼음에도 E.H 카는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대접은 커녕 공산주의자, 친소련학자라는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녔다. 그는 역사학계에서도 철저하게 외면받았는데 이에 대한 반론으로 쓴 책이 다름아닌 <역사란 무엇인가>다.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유독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만 유명한데, 일본인들은 그의 주장이 전범국인 일본의 항변을 암암리에 대변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선 어째서 E.H 카의 유명세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걸까? 도대체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E.H 카의 말은 참으로 옳다.
러시아 혁명을 냉전이 한창이던 1960~70년대에 바라본 것과 소련이 해체된 후인 1990년대 그리고 다시 한 세대가 더 흐른 현시점에서 바라볼 때 그 의미와 평가는 결코 같을 수 없다.
E.H 카는 당시 냉전의 프레임으로 러시아 혁명을 바라보고 평가했던 보편적 역사관을 기꺼이 외면했기에 외면당했다.
그가 30여 년에 걸쳐 냉철한 언어로 기록한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는 앞으로 19세기 초반의 역사를 배우고 연구하려는 후세들에게 바이블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E.H 카의 대표작은 <역사란 무엇인가> 대신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 혹은 그 요약본인 <러시아 혁명: 1917-1929>가 되어야 마땅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