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마르크스에서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
로버트 서비스 지음, 김남섭 옮김 / 교양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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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는 어느 불운한 철학자의 기록에서 발췌되어 무분별하게 편집되고 적용되어 계급 투쟁과 권력의 도구로 쓰였다가 폐기처분된 이론이다.

'공산주의'라는 단어부터 부정확하고 자의적으로 통용될 정도로 미숙하고 오류 투성이인 사상이 체계적인 연구나 검증을 거치지도 않고 한 세기에 걸쳐 인류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폐해를 끼쳤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레닌의 권고는 앞뒤가 맞지 않았고 모호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공산주의 정책을 요청하는 한편으로 사회주의 개혁과 '유럽 사회주의 혁명'도 요구했다. 극좌 진영에서는 오직 좀 더 지적 수준이 높은 활동가들만 이 레닌의 이론에 담긴 의미를 파악했다.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항상 사상과 방법이 다양하게 존재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심지어 아나키즘 같은 용어들이 어느 정도 겹치지 않은 때가 한 번도 없었다. 레닌은 자신의 정당과 사상을 나머지 정치적 좌파와 구분하기 위해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특히 마르크스주의 논쟁을 독점하고자 했다. -111쪽


볼셰비키는 1917년에 스스로 '러시아공산당'으로 이름을 바꿈으로써 다른 사회주의자들과 차이를 강조했다. 레닌의 이론적 논설은 이 분열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레닌과 볼셰비키에게 '사회주의'란 미래의 인류 발전에서 '공산주의'의 하위 단계였다. 그러나 볼셰비키는 여전히 자신들을 공산주의자일 뿐 아니라 사회주의자라고도 불렀다. 그 결과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은 자기 나라의 사회당을 공산당과 구별할 수 없는 당으로 색칠할 수 있었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된 혼란이었다. -174쪽


마오쩌둥은 자신의 국가를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아니고 '인민민주주의'도 아닌 '인민민주주의 독재'라고 규정했다. 소련의 정치 사전에는 없는 용어였다. 조용히 그는 소련의 정신적 보호와 감독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마오쩌둥은 농민들이 주요 혁명 계급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지주들을 파멸시킬 의향은 있지만 자본가 계급 일반과는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오쩌둥은 자신이 사용하는 수단이 독재적이긴 해도 그것이 자신의 뒤에 인민들ㅡ또는 그 구성 분자들의 대부분ㅡ을 단결시키고 있다고 역설했다. -446쪽




자연의 법칙이란, 말그대로 '자연히 되는 것(自然)'이다. '자본주의의 멸망ㅡ>프롤레타리아 혁명ㅡ>공산주의 사회'가 자연의 법칙이라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것이지 않겠는가.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연의 법칙처럼 인류의 역사 발전에도 일정한 법칙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내놓은 가정은 불완전했고 모호했는데 사상적으로 완전해지기도 전에 불안정한 세기말이라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야심가들에 의해 재해석되면서 왜곡, 확산되었다.



레닌은 무장 봉기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의해 '부르주아 국가'가 산산이 부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서진 자리에 완전히 새로운 국가가 창설되어야 했다. 그는 이 새로운 국가가 1905년과 1917년에 러시아에서 목격했던 토대, 즉 소비에트 위에 건설되기를 기대했다. 소비에트는 노동자와 병사들이 스스로 선출하고 조직했기 때문에, 레닌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적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중핵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었다.

레닌은 그것은 무조건 독재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외의 다른 어떤 것도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보장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중간 계급과 상층 계급은 필연적으로 반혁명을 지지할 것이며 그들이 머리를 쳐들 때마다 억압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시민권은 철회되어야 했다. 레닌은 독재가 국가 터러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무심결에 말을 흘렸다. 그러나 레닌은 이 말을 일단 소비에트가 권력을 잡으면 '인민들'의 권력이 반혁명 세력에 단호히 맞설 것이라는 예측과 결합시켰다. 혁명은 꽤 쉬운 일이 될 것이다. 내전이 발발하더라도 곧 종결될 것이다.

<국가와 혁명>은 좌파 정치의 담론을 영구히 변화시켰다. 1917년 이후 모든 사회주의 그룹이 반박 대상으로라도 레닌주의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사상을 형성할 수 없었다. 신성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텍스트에 끊임없이 의존하면서 레닌은 자본주의 통치를 전복한 후에는 두 개의 역사적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고 상정했다. 제1단계는 사회주의 단계이며 제2단계는 공산주의 단계일 것이라고 마르크스주의는 가르치는 것 같았다. 첫 번째 단계 자체는 중간 계급의 권리를 억압하고, '능력에 따라 각자로부터, 노동한 만큼 각자에게로'라는 원리를 시행하면서 급진적인 사회, 경제적 개혁을 도입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시작할 것이었다. 사람들은 사회의 이익에 기여한 만큼 보상받을 것이다. 당국의 강제적 요구 사항이 축소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득한 기억이 되면서,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될 것이다. 이것은 공산주의 그 자체일 것이다. 가정부도 자신에게 맡겨진 행정 업무를 처리할 것이다. 역사는 종말로 다가갈 것이다. 그리하여 공산주의 체제의 작동 원리는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능력에 따라 각자로부터 필요에 따라 각자에게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예언은 실현될 것이다.

이 담론은 마르크스주의를 성급하고 특이하게 해석한 것이었다. 레닌은 평화적인 사회주의 전략은 결코 실행 불가능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뒤따를 폭력적 봉기만이 유일하고 가능한 발전 경로라고 절대적으로 고집했기 때문에 공격받기 쉬웠다. 이에 못지않게 논쟁적인 점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가르침'에 대한 자신의 이해만이 유일하게 옳다는 주장이었다. 레닌은 그들의 '제자'로서 부끄럼 없이 앞장섰다. -109~110쪽




루터의 종교 개혁이 중세를 끝장내고 새로운 사상(프로테스탄트)을 탄생시켰지만 마녀사냥과 신대륙 침략이라는 비극을 초래했던 것처럼, 근대가 끝나갈 무렵인 19세기 말 공산주의는 만인이 평등한 공동체 즉 종교에서 주장하던 천년왕국 건설을 기치로 내걸고 기존 질서를 무너뜨렸지만 (일당, 일인) 독재로 귀결되고 말았다. 차이가 없는 만인평등은 개인차를 무시하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는 것과 인간은 개개인의 차이와 능력을 인정받는 사회에서 더한층 성장할 수 있음을 이보다 더 여실히 증명할 수는 없었다.



똑같이 만민평등과 천년왕국을 주장했지만 공산주의 혁명에선 종교에서는 배제되었던 '폭력'이라는 조건을 포함시켰다. 육체적인 고달픔을 마음의 평화에서 찾아왔던 신앙심 깊은 인간은 더이상 찾아 볼 수 없었다. 신이 죽은 자리엔 이성과 과학 대신 혁명(독재)과 폭력이 자리잡으면서 인간성이 말살되어 갔다. 다시 야만의 시대로 되돌아간 것이다.



또 다른 요인은 혼란스런 변화의 시기에 필요한 정신적 위안을 소비에트 체제가 대부분의 국민들에게서 빼앗았기 때문이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항상 먼 미래의 낙원을 예언했다. 종교 집단은 인민위원의 강압에 신음했다. 억압하지 않았더라면 없어졌을지도 모를 관습적인 믿음들이 새로운 열풍을 맞았고 주의에는 미신이 비이성적이라고 알려줄 사제나 이맘, 랍비가 거의 없었다. 이 추세는 도시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더욱 심해졌다. 그것은 1970년 대 중반 캄보디아에 폴 포트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세상 모든 곳의 공산주의 지도자들에게 기분 좋은 추세였다. 농민들은 집단 농장을 떠나 유급 일자리를 구하고자 도시로 흘러들었다. 농촌에서 지배적이던 태도도 따라서 도시로 옮겨왔고 그 태도는 제거하기 힘들었다. 종교의 자리를 비운 공산주의 관리들은 러시아에 기독교가 확산되기 전에 존재했던 관념들로 그 자리가 채워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259쪽


너무 합리적이어서 레닌의 계획과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당을 떠날 뿐이었다. 옛날에, 그러나 그리 멀지 않은 옛날에 천년왕국 운동들이 있었고 볼셰비키는 이 운동들 가운데 일부를 찬양했다. 그들은 16세기 독일 뮌스터의 제세례파를 찬양했다. 또 프랑스혁명의 자코뱅 테러리스트들을 찬미했다. 톰마소 캄파넬라와 토머스 모어는 그들의 독서 목록에서 두드러진 인물들이었다. 볼셰비키는 거의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영향을 받은 만큼이나 완벽한 사회에 대한 이들의 오랜 꿈으로부터도 영감을 얻었다. 볼셰비키는 이 꿈을 실현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114쪽




인류의 목표는 종교에서 위안을 얻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 있지 종교적 소망을 실현시키는 데에 둬서는 안된다. '병들고 가난한 자'들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사회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그런 사회는 당연히 발전할 수 없고 오래 존속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주-자본주의사회는 능력에 따른 개인차를 존중하되 그 과정과 결과가 공정해야 한다.



과거 신분사회에서 신분이 세습되었듯이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의 세습을 당연시 하고 있는데, 이것이 불평등의 또다른 기원이 되고 있다. 왕의 아들로 태어나 왕이 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여겼다면 부자의 아들로 태어나 부자가 되는 것 또한 부당한 것이어야 한다. 모든 불평등을 없애고 완전 평등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들이 전부 실패로 판명난 지금, 인류 사회에서 불평등 자체는 영원히 소거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 불평등이란 세습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차이에서 발생해야함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난 두 세기가 수 천 년 인류사회를 지배해온 신분의 세습을 철폐하는 과정이었다면, 앞으로의 세기는 자본의 세습을 막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천년왕국을 부르짓는 사이비 종교가 그렇듯이 공산주의는 언제든지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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