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읽는 한국 근현대사 - 개정 증보판 페이퍼로드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최용범.이우형 지음 / 페이퍼로드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90년 대 이후 언론 표현의 자유와 함께 현대사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그동안 잘못 알려졌거나 몰랐던 현대사들을 기록하고 있다. 친일파가 청산되지 못하고 정치가 바로 서지 못했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쓰여진 반쪽짜리 역사 교과서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나에게 현대사는 마치 희뿌연 안개가 잔뜩 껴있는 것처럼 희릿하고 헷갈렸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 하나씩 퍼즐이 맞춰졌다. 그동안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미친듯이 분노하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제대로 알았으니 제대로 평가하고 분노할 수 있으리라.  

.

.

.

.

.

우리나라 근대사는 1876년 강화도조약을 기점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 책은 1863년 고종 직위 즉 흥선대원군의 집권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60년 세도정치를 끝낸 후 흥선대원군의 초기 10년 집권기는 어쩌면 근대화로 나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은 잘 알다시피 뼈속까지 전근대적 인물일 뿐이었다. 


젊은 고종과 민비가 흥선대원군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것까진 좋았으나 역시 미래를 내다보고 나라를 강하게 만들기에는 식견이 부족했고 주변엔 매관매직으로 제대로된 관리와 인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왕과 왕비 주변에 모여드는 건 권력의 단물을 빨아먹는 간신배들 밖엔 없었다.


그러나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게 되면서 외국을 경험하게 된다.

수신사와 신사유람단을 파견하면서 메이지유신으로 환골탈퇴한 일본을 보게 된다. 


어쩌면 이때가 마지막 터닝포인트였을 수도 있다.  

당시 일본에선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인물들을 중심으로 탈아입구론이 대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탈아입구론이란, 일본이 앞장서서 아시아의 영국이 되고 조선을 포함한 아시아를 서유럽처럼 발전시키겠다는 말 그대로의 '대동아발전론'이다. 만약 이때 1854년 미국이 일본을 강제 개항시켰을 때 일본처럼 개국을 택했더라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옥균의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나면서 조선은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만다. 

결과론적이지만, 갑신정변이 설령 성공했다치더라도 조선의 개국과 발전이 일본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일단, 조선에겐 일본이 15~16세기 서양과 교류했던 경험 자체가 부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일본은 짓밟고 올라설 수 있는 조선이라는 디딤돌이 있었고 임진왜란을 통해 일찌감치 이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지만 조선에겐 그런 존재 자체가 없었다.  

결국, 구한말 조선에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악의 상황과 불운의 연속이었다. 



20세기 초, 조선은 선진국처럼 발전과 경쟁의 역사 대신 대립과 저항의 역사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고, 이 시기의 역사에 대해선 지역이나 세대에 상관없이 심지어 남북한 모두 일치된 견해와 목소리로 가르치고 배운다. 물론, 개별 사안이나 사건 혹은 인물들에 관해선 자료 부족이나 해방 이후 시대적 정치적 이유들로 날조 왜곡된 경우는 예외로 한다.


문제는 해방 이후의 역사다. 

사람마다 세대마다 내용과 편차가 너무 커서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제각각이다. 

단일 민족이 그것도 현대사에 대해 이처럼 이질적이고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을까? 의아할 정도다.

나는 우리나라가 국토나 인구 및 경제력과 문화 수준에 비해 내부 분열이 심각한 원인 역시 해방 이후의 역사 인식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동아일보의 모스크바 3상 회의 오보 사건이었다.

1945년 12월16일 모스크바에서 미국, 러시아, 영국의 외상이 모인 회의로, 이 회의에서 미국은 신탁 후 독립을 주장한 반면 러시아는 즉각 독립을 주장했었는데 이 사실이 정식으로 공표되기 하루 전날 동아일보가 미국은 즉각 독립을 주장한 반면 러시아는 신탁 후 독립을 주장했다고 정반대로 보도를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단순한 착오였을까?'


조선인이 신탁통치를 반대할 것이라는 건 명약관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남북한 전역에서 동시에 신탁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그렇지만 바로 이틀 뒤, 소련이 들어와 있는 북한에선 찬탁으로 돌아선 반면 남한에선 반탁 시위가 확산되고 있었는데, 이때 친일파들이 모여 만든 한국민주당이 가장 활발하게 반탁 시위를 전개하면서 '찬탁=빨갱이, 반탁=애국자'라는 공식을 만들어내면서 친일파에서 반공친미파로 신분 세탁에 성공한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부터 외교독립 운운하며 있지도 않는 나라의 자치권을 미국에 구걸했던 친미파 이승만이 남한 단독 선거를 통한 정부 수립을 주장하고 나선다. 

한반도에 공산주의 독립정부가 들어설 것을 우려해서 신탁을 주장했던 미국으로선 최악을 피할 수 있는 차선책이었고, 8.15 해방 직후 미국이 자국의 이득을 지켜줄 대리인으로 내세웠던 이승만은 철저하게 미국과의 약속을 수행한 것에 불과했다.  전범국인 일본이 독일처럼 분할되었어야함에도불구하고 미국이 태평양 전략으로 일본을 살리고 조선을 희생시킨 것이다. 이처럼 미국은 본토를 공격한 적국임에도 처음부터 일본편이었고 오늘날에도 이 정책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결국, 우리는 강대국이 진행하는 게임판의 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것도 다른 말(일본)을 위해 내놓는 한낱 '쫄'에 불과했다. 


이준 열사가 죽음으로서 참가하고자 했던 헤이그만국평화회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외친 안중근 열사의 '코레아 우라!'...

끝까지 조선 독립군의 2차대전 참전를 반대했던 연합국들... 

상하이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김구선생님의 입국조차 막았던 미군정...


이 모든 게 그저 역사의 불운이요 우연이었을까?

주사기 던지기처럼 다시 던지면 또다른 경우의 수가 나올 수 있을까?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다면 전혀 다른 상황이 일어날까?

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다.

조선 스스로 변하지 않는 한, 상대는 바뀔지 몰라도 우리가 겪어야 하는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식민지배를 받았을 것이며, 분할되었을 것이고, 내전을 치러야했을 것이다. 


역사는 주사위 던지기가 아니라 힘의 원리로 움직이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동영상 한 편을 봤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부가 직접 연주하고 부른 존레논의 <Imagine>이었다. 처음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고, 의도를 알고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뿐, 그저 안타까운 연민이었다. 

그리곤 뒤이어 예기치 못했던 깨달음과 마주쳤다.


'이준열사의 할복 기사 사진과 내용을 접한 세계인들이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손가락 한 마디가 잘려나간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접한 세계인들은 어리둥절했겠구나!'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평화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타인의 시혜에 의한 행복 역시 그림의 떡일 뿐이다.

 



2010년 이후부터 각양 각색의 역사책과 강좌 및 관련 TV 프로그램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현대사에 대해 무지하거나 세대별로 다르게 알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 원인은 그동안 역사 교과서가 제대로된 역사를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만 탓할 게 아니다. 



그저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가르치는 게 전부가 아니라 앞으로 30년 60년이 흐른 뒤 내 자녀와 손주가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어떤 세상이길 바라는지 그때 그들에게 어떤 조상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한번쯤은 꼭 생각해봐야할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