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이타주의자 - 세상을 바꾸는 건 열정이 아닌 냉정이다
윌리엄 맥어스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윌리엄 맥어스킬은 옥스퍼드대 철학과 부교수이자 비영리 단체 '기빙왓위캔(Giving What We Can)', '8만시간'의 공동 설립자다. 먼저 이렇게 저자의 이력부터 살펴보는 건 이런 종류의 책들을 읽을 땐 자칫 분별력을 잃고 저자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따라가는 '좀비' 독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딱히 성공 확률이 높은 것 같지도 않지만...  

 

윌리엄 맥어스킬은 철학과 교수답게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기부 단체들을 소개 평가할 뿐만 아니라 기부자들의 심리까지 파헤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재해구호에 기부금이 몰리는 쏠림현상의 폐해와 공정무역상품 구매가 오히려 득(得)보다는 실(失)이 더 많다는 점이었다.

 

특히, 윤리적 소비를 한 경우 선행을 덜 실천하는 방식으로 '도덕적 허가' 효과가 발생한다는 지적은 날카로웠다. 즉,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착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져서 무례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기부라는 것 자체가 가장 저렴하게(?) '심리적 면죄부'를 구매하는 방식이라고 여겨왔던 평소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직업적으로, 그 만큼은 열정이 이끄는 삶을 살다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잡스의 배신(?) 또한 충격적이었다.

 

 

이상의 객관적 증거들로 볼 때 열정에 맞는 직업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거라 넘겨짚고 진로를 선택하는 건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일 자체에 대한 만족도가 높으면 열정은 자연히 뒤따라온다.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였다. 잡스는 젊었을 때 선불교에 열성적이었다. 인도를 여행했고 LSD(마약성 환각제)를 자주 복용했으며 삭발을 한 채 법복을 입고 다니는가 하면 승려가 되려고 일본행을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잡스가 기술 분야에 발을 들인 건 열정 때문이 아니었다.

올원팜 All-One Farm이라는 공동체 농장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기술에 밝은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의 사업을 부업으로 도운 게 계기가 됐다. 애플컴퓨터조차 우연의 산물이었다. 잡스와 워즈니악은 도락가들에게 서킷 보드를 판매하다 어느 컴퓨터 상점 주인이 완전 조립된 컴퓨터를 사겠다고 하자 돈을 벌려고 그 일에 뛰어들었다. 애플사와 컴퓨터 기술에 대한 잡스의 열정이 불타오른 것도 사업이 관심을 끌고 성공을 거둔 뒤부터다. - 211쪽

 

 

 

스탠포드대 졸업식장에서 열정이 이끄는 삶을 살라! 고 역설했던 스티브 잡스...

하긴, 어디 스티브 잡스뿐이랴.

수많은 정치인들, 성공한 CEO들과 종교 지도자들 역시 하나같이 열정을 강조하고 열정에 호소하지 않았던가. 자신들은 열정이 아닌, 냉정과 이성에 따라 살면서 말이다.

 

 

 

자, 이제 본론이자 결론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부를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저자는  여러 사업에 관여하는 대형화된 비영리단체들(예: 월드비전, 유니세프 등등) 보다는 비용효율성과 투명성이 높은 사업에 집중하는 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낫고, 재해구호보다는 개발도상국의 보건위생 향상에 애쓰는 단체를 선택해서 지속적으로 기부하는 편이 세상을 좀더 이롭게 바꾸는데 기여하는 최선의 방법을 제시해준다.  

 

 

따라서 자원봉사에 지원하거나 직업을 선택하거나 윤리적인 소비를 실천할 때는 늘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시간과 비용은 얼마나 들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그들의 삶을 얼마나 개선시킬 수 있을까?

이는 남을 돕는 일에 한정된 시간과 돈을 분배해야 할 때 고려해야 할 최우선 사항들이다. 이를 염두에 두었다면 이제는 가장 효율적인 선행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65쪽

 

 

 

만약 당신이 굶주린 아프리카 어린이가 나오는 광고만 보면 지체없이  ARS 번호를 누르는 유형이거나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기부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주는 편이라면 혹은 비영리단체에서 일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특히, 열정이 이끄는 삶이 전부라 믿고 그런 삶을 추구하는 유형이라면 더더욱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삶을 이루는 건 폭죽과 같은 한순간의 열정이 아니라 파도처럼 쉼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일상(습관)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더이상 열정에 휘둘릴만큼 젊지도 어리석지도 않지만 내가 하는 작은 선행들이 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혹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해가 되는 건 아닌지 늘 궁금했고 불안했는데 이 한 권의 책이 소중한 길라잡이가 되어주었다. 물론, 저자가 제시해준 방법들이 정말 최선의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지만...  

 

 

'I would never die for my beliefs because I might be wrong'   - by Bertrand Russel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