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364일 블랙 로맨스 클럽
제시카 워먼 지음, 신혜연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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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날 밤, 내가 죽었다.

 

조용한 마을 노앙의 해안가 선착장에서 물에 빠진 시체가 발견된다. 시신은 지난밤 18번째 생일을 맞아 친구들과 보트에서 생일파티를 벌였던 금발의 소녀 엘리자베스 밸처였다. 보트에는 파티의 잔상인지 술과 마리화나로 잔뜩 어질러져 있었다.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모였던 친구들은 지난밤의 비극은 알지도 못한 채 술과 마약에 취해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어째서 18번째 생일날 그렇게 무참하게 죽어버린 것일까? 정황상 사고사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간단히 결론을 내리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소녀의 죽음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다.

 

자살일까? 금발의 미소녀는 부유한 집안과 멋진 남자친구, 우정이 돈독한 친구들에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동경까지 그 나이 때에 누릴 수 있는 모든 호사를 누리는 아이였다. 자살이라기엔 동기가 부족하다. 그렇다면 타살일까? 그날 밤 그녀와 함께한 이들은 모두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녀를 생의 유일한 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멋진 남자친구 리치, 어릴 적부터 최고의 친구였고 지금은 사랑하는 가족이 된 의자매 조시, 마찬가지로 어릴 적부터 붙어 다녔던 절친이자 좋은 사람인 캐롤라인, 닭살 스러운 커플이지만 항상 어울려 다녔던 메라와 토퍼. 그들 가운데 누구에게도 동기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들 외의 누군가가 늦은 밤 개인 소유의 보트에 침입해서 살인을 벌였다고도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그날 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보트 살인사건? 이것은 추리소설 입니까?

 

줄거리를 요약하고 보니 영락없는 추리소설이다. 소녀가 죽었다. 사고사로 보기도, 자살로 보기도, 타살로 보기도 애매하다. 이 이야기는 결국 그 화려한 인생을 살았던 소녀가 왜 그렇게 홀로 아무도 모르게 죽어갔는지에 대해 추적해 가는 이야기다. 소녀조차 자신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소녀의 과거 회상을 쫓아가며 그날 밤 죽음의 진실을 추리해 내야 한다. 하지만, 홈즈나 왓슨 같은 재기 넘치는 탐정은 등장하지 않는다. 죽음을 추적하는 것은 소녀 자신이고 그녀의 조언자격은 투덜이 소년이 한명 따라 다닐 뿐이다. 그렇다. 이것은 추리소설이 아니다. 그렇다고 미스터리 소설도 아니다. 영혼이 등장하지만 호러 소설도 아니다. 예쁜 여자주인공이 등장하고 잘생긴데다가 순정파인 남자주인공이 등장하는 로맨스 소설인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시작부터 어긋나 있다. 일단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면 마땅히 등장해야 할 요소들이 끼어들 틈이 없다. 애초에 여주인공은 죽어버렸고, 그녀의 절절한 로맨스 상대는 죽어버린 그녀를 그리워하며 건장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영혼인 그녀가 기억하는 그녀의 인생은 상당히 단편적인 데다가 기억의 공백이 많아서 살아 있던 동안의 사랑의 기억을 반추할 거리조차도 부족하다. 그녀가 되짚어 보는 그녀의 인생이란 사랑에 가득 차 있다기 보다는 의심과 왠지 모를 불안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이어서 도저히 핑크빛의 무언가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로맨스로 흐르게 돼 있다는데 이 이야기는 로맨스 소설이라고 말하고 있으면서도 뭔가 뜨듯 미지근한 느낌이다. 사랑을 이야기하기에는 미스터리가 너무도 많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것들이 흥미로운 것이다. 속이 간질간질한 뻔뻔한 애정묘사는 없다. 다만 몇 가지 의문들이 길게 꼬리를 늘이고 이어질 뿐이다. 그녀는 어째서 죽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헤매는 것인가. 어째서 육신을 떠나 자유로운데다가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영혼의 상태인데도 정작 죽음의 순간은 기억해내지 못하는가. 시종일관 그녀와 투닥거리는 의문의 소년 알렉스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는 그녀보다 1년 전에 죽은 동급생이었다. 그의 생에 그녀와의 접점은 거의 없었다. 그런 그가 어째서 그녀의 곁을 지켜주는 것일까? 이런 의문들이 계속 이어지면서 정말이지 다음 장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 모든 의문들은 그녀가 사라진 이후에 남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미처 알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과거의 단편들에서 조그만 퍼즐같이 떨어지는 단서들이 감질나게 모아지며 극적으로 해소된다. 그 과정을 따라가며 다양한 가능성을 추리하는 뜻밖의 재미를 안겨주더라.

 

일단 이것은 로맨스 소설입니다.

 

죽음 이후에 생전의 기억들에 공백이 생겨버렸고, 영혼이 된 나는 원하기만 하면 생의 어느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의 일을 엿볼 수 있다. 기억하지 못하는 아기 때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것도 가능하다. 철저히 제 3자의 입장이 되어 나의 일생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것이다. 관찰자인 나는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할 수도 있고,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리즈(엘리자베스 밸처)는 영혼이 되어 전혀 몰랐던 자신을 만나고, 알지 못했던 진실들을 마주하고 사랑을 그리워하고 또 떠나보내게 된다. 그 과정이 마치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탐정에게 하나하나의 소소한 단서가 주워지는 것처럼 구성되어서 이게 추리소설인지 로맨스 소설인지 헷갈릴 정도다.

 

하지만 이것은 어쨌든 로맨스 소설이라는 점이다. 소녀가 본인에게 향했던 진실하고 순수한 사랑을 사후에 알게 된다는 점은 조금 비극이지만, 그런 비극도 훈훈하게 느껴질 만한 애절한 이야기이다. 한편으로는 소녀가 자신을 이해하고 과거를 반성하는 과정에서 좀 더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성장 소설 같기도 하다. 결국은 사랑이다. 추리소설적인 요소들이 분명 있지만 추리소설은 아니라는 점이다. 치밀하고 정교한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조금 모자랄 듯도 싶다. 나름 반전까지 갖추고 있지만 조금 투박한 느낌이다. 하지만 어리고 상처 많은 소녀가 잊고 있었던, 또는 미처 깨닫지 못한 자신으로 향했던(계속 자신을 향할) 사랑을 알게 되는 과정이 주가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뭐 그런 점은 별로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읽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겠지만, 로맨스 소설로는 꽤 독특하고 수준급의 몰입도를 자랑하는 이야기이다.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의 추리물이었다는 점은 다소 아쉽지만, 예상을 뒤엎는 로맨스 소설이었다는 점에서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어쨌거나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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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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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번역소설이 참 많다. 또 많이 읽힌다. 나도 번역소설을 즐겨 읽는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집어 들고 좀 멍했다. ‘눈에 보이는 듯한’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도 알 것 같은’ 그런 풍경들이 떠오르더라. 이래서 다들 김훈의 문장이라고 말하는가 보다 했다. 번역소설들의 문장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지만, 우리작가가 우리의 이야기를 풍부한 우리 글로 쓴 책은 역시 뭔가 달랐다. 문장도 문장이지만 생소한 표현이나 단어들을 만나는 것도 다소 신선한 충격이었다. 소설을 읽으며 사전을 뒤적였던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 책은 신유박해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종교적이라고 하기는 뭣하다. 다만 너무 절박하기 때문에 살기 위해 신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과 신을 저버려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처절하게 신을 찾고 더 나은 세상을 바랐지만 결국 좌절하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사공, 마부, 노비, 어부, 궁녀, 관원, 선비, 관리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산발적으로 이어지지만 결국에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고단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팍팍한 인생들이 정약전이 흑산 으로 유배를 떠나 배반의 삶을 이어가고, 황사영이 백서를 쓰고 발각되어 순교의 길을 걷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한데 뭉쳐져 있다.

 

성리학 질서는 무자비한 것이 아니고, 천주의 교리가 사특한 것도 아니다. 배교한 것을 꼭 씻지 못할 치욕이라고 할 수 없고, 순교를 거룩한 희생이라고 추켜세우고 싶지 않다. 나는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이 모든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저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였다. 정순왕후의 자교는 신속하게 붕괴되기 시작하는 신분질서로 인한 교란과 사회의 혼란 속에서 지도자로서 살아내기 위한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 궁궐에 있는 사람보다 참혹한 현실을 더욱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황사영이 천주에 대한 굳은 믿음과 구원의 희망을 품게 된 것은 어쩌면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삶에 당연한 수순이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배교하고 흑산 으로 유배를 떠나는 정약전에게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본능적인 의지를 보았다. 마노리의 삶도, 강사녀와 갈갈녀 그리고 기구한 박한녀와 이 이야기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인 박차돌의 행동도 결국은 모두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몸짓이었다. 이들의 처절함이 지독한 기근과 광포한 학정에 신음하던 많은 백성들의 삶과 겹쳐지면서 보두 다 안쓰럽고 불쌍했다.

 

되돌아보면 나쁜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스러지는 그런 일들이 있다. 안타깝다, 안쓰럽다는 말로 덮을 수 없는 비극을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그저 괴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손에 잡힐 것 같이 생생한 생의 모습만이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복잡한 구성과 일일이 이름을 적어내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인물들이 들고 나는 통에 어리둥절했다가 차츰차츰 이어지는 그들의 이야기에 조금 소름이 돋았다.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로 전해지는 것 같은 치밀한 묘사가 상상해 본적도 없는 슬픈 영상들이라 가끔은 읽기가 괴로웠다. 나한테 문장을 보는 눈 같은 건 없지만 확실히 다르다는 건 알겠더라. 여러 가지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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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 측 증인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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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에 대한 암시가 있어요. 아직 책을 읽지 않으신 분은 이 글을 조심하세요!**

 유명 미스터리 소설 작가들의 극찬도 극찬이었지만 입소문만으로 10만부가 넘게 팔린(총 2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1960년대 쓰여진 추리소설이란 소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더라도 저는 이 책을 읽었을 겁니다. 너무 궁금하고 기대가 되는 책이었거든요. 그간 이 책에 대한 서평이 무수히 올라왔지만 보지 않고 묵묵히 견뎠습니다. 혹시나 네타를 당할까봐 겁이 나더라고요.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또 누군가에게 ‘네타’가 될 지도 모르는 글을 게시하려고 한다니 복잡한 기분이 드네요. 나름대로는 최대한 에둘러서 써 보겠지만, 눈치 빠른 분들은 금방 알아채실 것 같아 미리 알려드립니다. 
 

 

애절하고 가슴 시린 법정 드라마!?

이 이야기는 존속 살해 협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끝까지 그의 결백을 믿어주었던 단 한사람의 도움으로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난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증거와 증인들의 진술이 피고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심지어 그의 변호인조차 변론을 포기한 사건에서, 누명을 쓰고 사형대에 올라야 하는 그 부조리하고 억울한 일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변호측 증인의 진술에 의해 뒤집어 지고 진범이 밝혀지게 된다는 스릴 넘치는 법정 드라마예요.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험한 인생을 살아온 스트립 댄서 미미 로이는 방탕한 재벌가의 외아들 야시마 스키히코를 만나 동화 같은 결혼을 하게 되요. 딱히 신데렐라를 꿈꿨던 적이 없는 미미 로이는 그녀를 반대하는 시아버지와 시누이 사이에서 조마조마한 신혼생활을 보냅니다. 재벌가의 엄청난 재산 보다는 따뜻한 가정을 원했던 그녀에게 야시마가는 냉담할 뿐인데요. 그녀로 인해 그녀의 남편과 시아버지 사이의 골은 더욱 더 깊어져만 가는 가운데, 그녀의 시아버지가 별채에서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최근 시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남편이 의심을 받을까 걱정이 된 미미 로이는 경찰에 위증을 하게 되는데요, 이는 뜻밖의 문제를 불러오고 맙니다. 

그녀의 위증으로 단순해 보였던 사건은 복잡하게 꼬여 버렸고, 그들 부부는 위기를 맞고 맙니다. 과연 진범은 누구일까요? 단단히 뒤엉켜 버린 사건을 명쾌하게 풀어낼 결정적 단서를 지닌 변호측 증인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책을 덮고 나서 이 책의 서평들을 쭉 둘러보니 ‘꼼짝없이 당했다’는 분들도 많았지만, ‘트릭이 시시했다’ ‘어디서 본 듯한 전개였다’라는 평을 남기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저는 꼼짝없이 당했습니다. 아니, 이미 이 책을 받아 읽기 전부터 속고 있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네요. 감히 추측컨대, 아마 이 책의 트릭을 간파하신 분들은 이미 수많은 추리 미스터리 물을 두루 섭렵하시어 이 분야 ‘고수’의 반열에 올라선 분들이거나, 유달리 기민하고 감이 좋은 분들이거나 아니면 보통 사람 수준 이상으로 합리적인 사고를 하시는 분들일 겁니다. 왜냐하면 이 책 속의 이야기가 품고 있는 트릭은 사람의 심리적인 면과 인지적인 습성을 아주 교묘하게 이용하여 만들어낸 견고한 속임수였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저지른 첫 번째 실수

레이몬드 챈들러는 그의 에세이(「심플 아트 오브 머더」. 북스피어. 2011년)에서 당대의 유명 탐정소설들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이와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이 모든 탐정소설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렇다 ― 수수께끼로서는 충분히 지적이지 못하고, 소설로서는 충분히 예술적이지 못하다. 지나치게 진부하고, 실제 세상을 반영하지 못한다. 정직하려고 는 하지만, 정직함이란 본디 예술의 영역이다. 실력이 떨어지는 작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직해지며, 괜찮은 작가들은 무엇에 정직해야 할 지 모르기에 정직해지지 못한다. 작가는 게으른 독자를 속여 넘길 만큼의 복잡한 살인 계획이 경찰까지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독자는 디테일에 집착하지 않는 반면 경찰은 디테일이 본업이다.  

<레이몬드 챈들러 「심플 아트 오브 머더」 p. 24>

그는 에세이에서 당대의 명작이라고 손꼽히는 탐정소설의 허점을 꼬집고 폐쇄적인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 제한적인 문학에서 어째서 명작다운 명작이 나올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해 열변을 토해냈는데요, 그 원흉으로 지목된 이유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게으른 독자’였습니다. 독자가 이미 심리적으로 속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죠. 작가가 어떤 허술한 구성으로 말도 안 되는 트릭을 만들어 낸다고 한들, 독자는 그것에 어떠한 딴죽도 걸지 않는 다는 겁니다. 결국 작가도 독자를 속이기에만 급급해져서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소설’같은 이야기만을 만들어 낸다는 거예요.

저는 이 글을 읽고 아주 무릎을 탁 쳤답니다. 속고 싶어 하는 독자, 디테일에 무관심한 독자, 미스터리에 어떠한 현실적인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 게으른 독자가 바로 저였거든요. 이 책을 읽을 때도 그랬어요. 제가 필사적으로 혹시나 어딘가에서 암약하고 있을지 모를 네타폭탄들을 피해왔던 것도 그 때문이었지요. 미리 알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나는 기막힌 반전을 기대하고 있었고, 작가가 준비한 반전이 무엇이든 나를 완벽하게 속여주길 바랬거든요. 머리가 멍해지는 충격을 원했던 겁니다. 이미 마음속에서는 ‘자, 나는 속아줄 만반의 준비를 갖췄어. 어서 나를 속여줘.’ 라고 외치고 있었으니 작가가 어떤 단서들을 흘려놓았던들 깊게 파고들 생각을 안하고 있었던 거죠. 비단 저 뿐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독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범하고 마는 아량 아닌 아량이고, 실수 아닌 실수인 거죠.

이렇게 준비된 판에 작가는 작지만 결정적인 트릭을 더합니다. 실은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거지만, 그런 단순한 것일수록 꾸며내기 어려운 법이지요. 그래서 이 작가에 대해, 이 작품에 대해 다들 그렇게 극찬을 해 댔나 봅니다. 저도 완전히 납득해 버렸습니다.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기 때문에 바닷물에 소금한줌 던져 넣은 것처럼 교묘하게 장치하기 어려웠을 ‘그것’을 작가는 아주 담담하고 재치 있게 해냈더군요. 중간 중간 힌트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작가는 나름대로 이야기의 전개 사이사이 성의껏 힌트를 뿌려뒀습니다만 ‘이부분은 조금 이상하네’ 하고 넘어갈 뿐이었고, 게다가 이미 속을 마음인 독자는 결국 속게 돼 있었지요.  

 

의식하지 못하고 저지르는 두 번째 실수

작가가 이야기에 장치한 ‘것’은 사람에게는 아주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거든요. 우리는 대부분 아주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효율적으로 행동하려고 합니다. 하루에도 수백 번 부딪치는 돌발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앞으로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백퍼센트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스스로에게 이득이 가는 방향으로 행동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그런 상황판단은 대부분 아주 즉각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행동 경제학 에서는 그런 인간의 인지적인 특성을 ‘휴리스틱’이라고 부른답니다. ‘휴리스틱’ 이라는 말은 ‘생각의 지름길’ 혹은 ‘직관적 판단’이란 말로 바꿀 수 있는데요. 이 휴리스틱 이라는 것은 그간의 개인적인 경험과 학습에 의해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참고 데이터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을 판단해야 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 휴리스틱을 적용합니다. 대게는 경우는 문제가 없습니다만, 몇몇 예외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휴리스틱으로 인해 오히려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휴리스틱에 의한 인지과정은 습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설사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됐더라도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인지 알기 어렵고 그것을 금방 바로 잡기가 쉽지 않아요. 결국은 애초에 어디에서 부턴가(생각보다 훨씬 이른 어느 부분일 수도 있고요) 속아버리게 되는 것이죠.

이 책은 이런 추리 소설 물을 읽는 독자의 특성을 아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이죠. 이 책의 해설을 덧붙인 미치오 슈스케의 표현을 빌리자면, ‘독자 스스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입니다. 작가는 아주 대략적인 틀만 보여줄 뿐입니다. 하지만 그 ‘틀’이라는 것이 워낙에 탄탄했기 때문에 독자는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작가의 의도대로 붓을 놀려대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트릭이라면, 이런 이야기라면 독자는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는 겁니다. 독자들이 인간인 이상, 우주 멀리 어딘가에 전설처럼 존재한다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별 같은 데서 사는 초 합리적인 외계인이 아닌 이상 속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할겁니다.

나는 이 책을 읽기도 전에 속아버렸습니다. 정말 비참하게 당했습니다. 그래서 유쾌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내 생에 최고의 미스터리를 꼽는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수도 있는 그런 책을 만난 것 같아요. 모든 트릭을 알게 되고 나면, 정말 ‘작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까지 읽어왔던 텍스트가 전혀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하거든요. 마치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생경해 지죠. 그렇게 갑자기 낯설어져 버려서 이내 소름이 돋아버리는 거예요. 물론, 시시하게 읽힐 수도 있는 책입니다.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힐 수도 있고요. 저는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서평을 읽는 누군가에게 이 허접한 글이 이 책을 읽는 ‘흥미진진함’을 빼앗아 버리는 글이 되 버리진 않을지, 조금 걱정은 됩니다. 나는 최대한 에둘러 쓰려고 노력했답니다. 그 노력만은 알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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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소설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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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소설 ―

묘한 제목이었다.

일부러 소설이라고 내걸고 있으니 소설일 테지만, 이런 제목을 좋아서 붙이는 사람이 있을까. 순문학인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엔터테인먼트에서 이런 프레젠테이션은 어떨까. 제목은 그렇다 치더라도 모든 것이 싫은 느낌이었다. 그런 의미로는 제목에 맞는 장정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 용케 출판사가 승낙해 주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p. 358)

 
   

  

나는 오늘 같은 비오는 겨울날이 싫습니다. 짜장면 위에 고명으로 얹어진 오이도 싫고, 일요일 이른 아침의 약속도 싫고, 밤바다도 싫고, 뱃대지가 빵빵해져서는 거미줄에 간신히 매달려 뒤뚱거리는 거미도 싫어요. 허리가 끊어지고 밑이 빠질 것 같은 달거리통도 싫고, 손톱 가에 이는 손 가시도 싫고, 운동화 밑창에 굴러다니는 모래알도 싫습니다. 누군가에게 빌려준 책이 정체모를 얼룩을 달고 되돌아 왔을 때, 남의 얘기는 듣지도 않고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과 오랜 시간 붙어있어야 할 때, 날은 추운데 버스가 연착될 때, 식당 밑반찬에서 머리카락이 나왔을 때 ― 정말, 싫은 것을 얘기하자니 한도 끝도 없네요. 네, 다 싫습니다. 정말 싫어 죽겠어요. 단지 귀찮을 뿐이기도 하고, 혐오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섭기 때문이기도 하고, 성가시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저 싫은 것도 있어요. 나는 그런 것들을 ‘싫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는 것들이죠. 아주 일상적인 일이기도 하고요. 의식하지 않으면 ‘그랬었나?’하고 그냥 넘겨버릴 수도 있는 문제들이지만 싫은 것들은 비상하게 내 의식을 파고듭니다. 손가락 끝에 살에 박혀든 가시처럼 계속, 내내 신경이 쓰이는 거죠. 뭐, 신경 쓰지 말아야지, 잊어버리자 하면 금세 잊혀지기도 합니다만 그런 건 아무래도 ‘싫은 느낌’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를 써 봐도 그 ‘싫은 일’이 계속 된다면 상당히 골치 아프겠죠? 매일이 싸늘하고 비가 추적거리는 날씨에, 허리가 끊어지고 밑이 빠질 것 같은 고통을 일 년 내내 달고 살아야 하고 눈에 띄는 사방에는 뒤뚱거리는 왕거미들이 득실거리고 운동화를 신을 때 마다 모래를 밟아야 한다면 저는 정말 미쳐버릴 지도 모릅니다. 그런 일이 계속 된다니. 아 ― 정말 싫을 것 같아요.

 

괴이를 사랑하는 작가가 그리는 음울한 괴작

이 책이 딱 그런 이야기입니다. 싫어서 견딜 수가 없는 일들이 지독하게도 반복되는 그런 괴이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이지요. 그 ‘싫은’ 일들은 어떠한 전조도 없이 불쑥 그들의 일상에 나타나 지독하고 징그럽게 평범했던 일상을 헤집어 놓습니다. ‘싫은’ 일들이 일상을 좀먹는 동안에도 뜻밖에 황당한 재앙을 당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싫은’일들이라는 것이 너무도 기괴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죠.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 하거든요. 남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없고, 싫은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떠한 제스처도 취할 수가 없어요. 애초에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유산으로 아이를 잃고 위태로운 부부생활을 이어오던 가정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머리가 크고 기괴한 아이는 그저 어디선가 불숙 나타났다가 사라질 뿐이죠. 갑자기 나타나는 끔찍한 외모의 아이 때문에 신경쇠약증에 걸릴 지경이지만 유령도, 외계인도 그렇다고 인간도 아닌 아이를 내쫓을 방법이 없습니다.[싫은 아이] 돌봐주고 있는 그 노인은 기괴한 냄새를 풍깁니다. 불쾌한 남세죠. 노망이 든 것도 아니건만 노인의 기행은 날이 갈수록 정도를 더해가고 노인을 돌보는 ‘나’는 신변의 위협까지 느낍니다. 나의 조부모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남편의 조부모도 아니죠. 그렇다면 과연, 노인은 대체 누구인 걸까요?[싫은 노인] 모든 것을 잃은 ‘나’는 더 이상 불행해 질 수 없겠다고 느낄 정도로 불행합니다. 노숙자로 전락한 나는 ‘하룻밤만 묵으면 행복해 질 수 있는 호텔’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나는 우연히 그 호텔에서 숙박할 수 있는 티켓을 얻게 되고, 찾아간 호텔에서 행복해 질 수 있는 경악스러운 방법을 듣게 됩니다. 왠지 ‘싫은 문’ 앞에 선 나.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나는. [싫은 문] 싫은 후배에게 불단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나’는 불단을 맡은 이후로 계속 싫은 기분을 느낍니다. 기괴한 냄새가 나는 그 불단은 과연 뭘까요? 그건 뭐였을 까요?[싫은 조상] 우연히 사귀게 된 그녀는 생김세도 귀엽고 똑똑하고 요리도 잘하는 최고의 여차진구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 헤어질 것입니다. 아니 헤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싫은 여자친구] 퇴직 후 마누라도 죽고 오랫동안 산 집에 홀로 남겨진 ‘나’는 이 집이 너무도 싫습니다. 아니, 이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개인적이고 기괴한 일들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저 싫은 일들일 뿐입니다. 견디거나 무시하거나 하면 결국 별 것도 아닌 일들이지요. 이대로, 나는 괜찮을 까요?[싫은 집] 최근 ‘나’의 주변사람들은 내게 이상한 상담을 해오더니 결국 모두 불행해 졌습니다. 착란을 일으키거나 실종되거나 자살했거나 죽어버렸죠. 그들이 상담해 온 너무도 이상한 ‘싫은 일’들이 마음에 걸립니다. 나는 지금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상사와 출장을 가고 있습니다. 이 순간이 미치도록 싫습니다. 얼마 전 헌 책방에서 구입한 ‘싫은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 너무도 이상합니다. 최근 불행해진 그들의 기묘한 이야기가 이 책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 ‘싫은 소설’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나.[싫은 소설]

싫어서 싫어서 싫어서 싫어서  싫어서 싫어서 싫어서 견딜 수가 없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p. 259)

그들은 결국 견딜 수 없어졌어요. 그래서 아주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죠. 아~ 정말로, 정말이지 싫은 소설입니다. 

 

“이 세상에 이상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네, 세키구치군” 정말 당신이 그 교고쿠도 시리즈의 교고쿠 나츠히코가 맞긴 한거야?

나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팬입니다. 왕팬! 을 자처할 정도는 아니지만, 교고쿠 나츠히코의 출세작이기도 한 『우부메의 여름』을 읽고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 빠져들게 된 이후로 그의 작품이라면 앞뒤 안 재고 사들이고 읽었어요.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읽었거나 소장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의 이야기가 좋습니다. 아주 기괴한 사건을 사실은 별 것 아닌 일로 만들어 버리는 재주가 있거든요, 그 사람. 20개월이나 출산을 하지 못하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 라든지, 상자에 곱게 담겨 버려지는 토막 난 시체에 대해서라든지 흉측하고 기이한 사건들이 이 사람의 손을 거치고 나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일이 돼 버려요. ‘이상할 건 아무것도 없다’라는 주의예요. 그게 너무도 박식하고 논리적이어서 읽는 사람의 혼을 아주 쏙 빼놓죠. 나는 이 작가의 그런 지적이고 논리적인 면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나는 아마도 또 그런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이 책을 집어 들고, 첫 번째 이야기를 읽어내고는 조금 어리둥절해 졌죠.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세세하게 물고 늘어져서 설명하고, 가르치려는 것 같은 문체라든가 기괴한 분위기라든가 어딜 봐도 그의 소설인데 이 이야기는 너무도 낯설었다는 것이죠.

“당신은 늘 설명이야. 뭐든지 다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세상은 그렇게 합리적인 것만은 아니잖아. 그런 건 설명할 수 없어도 상관없지 않아?” (p. 26)

‘이 세상에 이상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네, 세키구치 군’ 이라고 외치던 교고쿠도는 사라지고 ‘이 세상은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아, 설명할 수 없어도 상관없지 않아?’라고 외치는 낯선 이가 이 책에 있더라고요. 이 책에 주인공들이 미신을 맹신하거나 오컬트 마니아라던가 그런 건 아닙니다. 그들은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하고 상식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하죠. 그들을 미쳐 날뛰게 만드는 건 그들의 상식을 벗어나는 이 세상의 이상한 일입니다. 뭔가 일일이 설명하려는 작가가 이 책에는 거의 뒷짐만 지고 있어서 좀 어리둥절해 지기도 하고, 편하게 읽히기도 했어요. 뭐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낯설었달 까, 신선했달 까.

원인도 없고, 이유도 없고, 당장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사회적으로 심각한 일도 아니고요, 지극히 개인적이고 혼자만 피해를 입는 그런 싫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당장 어찌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할 방법도 없는 일들을 그저 받아들이고 견디고 무시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맞는 최후는 꽤나 참혹하죠. 말 그대로 싫은 소설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싫다―’라는 말이 절로 흘러나오죠. 뭐, 유쾌하진 않습니다. 분명 재미는 있지만 상당히 찝찝한 뒷맛이 남는 재미고요. 하지만 교고쿠 나츠히코의 팬임을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하겠습니다. 아니, 꼭 읽어보세요. 첫 번째 이야기를 견딜 수 있으면 아마 괜찮으실 겁니다. 다만, 교고쿠 나츠히코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집어 드는 건 좀 참아주세요. 이 작가가 정말 싫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정말, 싫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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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소설집
김경욱 지음 / 창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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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이후로 정말 오래간만에 집어든 단편소설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이 책으로 김경욱이라는 작가를 첫 대면 한 것이었다. 단편소설만큼 작가의 스타일이 고대로 묻어나는 장르도 없다지만 단편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영 달갑지만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건조한 듯 하지만 명료하고 깔끔한 문체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미스터리 같은 느낌의 전개도 좋았다. 짧지만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도 상당했다. 읽기 시작하면 술술 잘 넘어간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날 때 마다 찾아오는 그 온갖 감상들이 좀 괴롭달 까. 묘하게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별것 아니지만 고백하건데 나는 단편소설이 두렵다. 상당히 현학적인 문제를 내가 소화하지 못할 문장으로 꼬아놓는 난해함 이라던가, 이야기에 빠져들 만하면 끝나버리는 허무함 이라던가, 뭔가 압축적으로 이런 저런 단서들을 마주한 것 같은데 끝은 휑하니 비어있는 그런 어중간한 느낌들이 싫다. 내가 읽었던 단편집들이 모두 그러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단편집을 들었을 때 내가 싫어하다 못해 두려워하는 그런 패턴이 조금이라도 읽히면 그만큼 난감한 일이 또 없다. 그럴 때는 유일한 구원인 해설을 열심히 뒤지게 되는데 해설마저 난해하다면 나는 정말 울고 싶어진다.

아. 걸려 버렸다. 나는 다시금 단편소설 공포증에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우선 내가 학을 떼는 타입1은 이 책에는 해당사항이 없었으나 애매한 타입2, 3이 딱 이 책에 맞아떨어졌다. 대뜸 누가 내게 이 이야기들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한다면 ‘허무하다’ ‘휑하다’ 이 말만 간신히 내 뱉을 수 있을 것 같다. 거기다 한마디 더 보태자면 어둡고 삭막하고 우울하다. 뭐 이정도? 무엇보다 인물들이 너무도 무기력 하달까. 이율배반적이라고 해야 할까. 거기다 책속의 현실이 정말 현실감 있게 무겁다. 그래, 가진 것 없고 모자란 사람들에게 현실은 뭣같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현실이 뭣같아도 ‘세상은 똥이요!’라고 내뱉어 버리는 것 보다 ‘그래도 희망’같은 동화적인 마무리가 나는 좋단 말이다. 아니, 솔직히 조금 기대했달 까. 내 취향이 너무 유아적이라고 비웃어도 할 말 없지만. 그런데 왠지 나는 이야기가 마무리 될 때마다 ‘세상은 똥이요!’라고 외치고 싶어 졌다. 아하, 참으로 씁쓸하게도. 

이 9편의 이야기는 쓴맛이 난다. 여기에는 성폭행 당한 손녀를 위해 복수를 꿈꾸는 노인도 있고, 지독하게 되물림 되는 가난에 찌든 남자들이 있고, 상위 1%가 되기 위해 볼썽사나운 발버둥을 치는 남자도 있고, 잠재적 범죄자들에 둘러싸여 불안한 또 다른 누군가의 잠재적 범죄자도 있고, 몰락한 늙은 권투선수가 있고 쓸쓸한 부자가 있다. 그들의 뒷모습은 왜 이다지도 불분명하고 씁쓸한 것일까? 이게 다 매정한 신에게는 손자가 없는 탓일까?

많이 읽어보지도 못한 내가 이 책의 호불호를 판단한다는 것은 좀 웃긴 일이거니와 솔직히 나는 이 책에 대해 어떤 정의도 내릴 수가 없었다. 다만 참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하필 이런 무거운 느낌으로 처음 김경욱 작가를 대했다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린다. 그의 다른 책들은 좀 다른 느낌일까? 조금 궁금해지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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