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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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납 같은 밥을 먹었네.˝


잘 읽혔지만 읽기 거북했다. 재미없었던 건 아니다. 슴슴하게 간이 된 음식을 씹는 것처럼 잔잔하게 재미있었다. 그러나 읽기 힘들었다. 납 같은 밥을 나도 함께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일까?


다른 서평들에서 왜 하나같이 ‘선생님 안에 내가 보였다‘라고 하는지 알겠다. 그의 욕망, 질투, 비겁함, 우유부단함, 그리고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하다 잘못을 키워가는 어리석음까지. 소설의 유려한 문장에 빠져들수록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움을 거울 보듯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았다.


소설을 다 읽고 책을 덮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조금 개운해진 것 같다. 아. 이래서 다들 소설을 읽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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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의 짧은 역사
토마 피케티 지음, 전미연 옮김 / 그러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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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 피케티가 쓴 팸플릿. 그러나 선동적이지는 않다. 비슷한 류의 팸플릿인 공산당 선언이 얼마나 선동적인지를 생각한다면.



나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길고 장황하고 버겁다고 하기에. 이 책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쓴 책이다. 짧고 쉽게 피케티의 이론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피케티는 전통적 의미의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사민주의나 심지어 수정자본주의-케인스주의- 쪽에 가까워 보인다. 내가 이해하기에는.



그의 주장은 이러하다.

1. 18세기부터 지금까지 역사는 불평등에서 평등으로 뚜렷하게 전진해왔다. 인류는 소수가 부와 권력을 독점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그것을 나눠가졌을 때 더 강력해지고 더 번영해왔다. 성장과 분배를 대립항으로 놓는 건 잘못이다. 실제로 분배가 잘 이루어질 때 경제도 더 빠르게 성장했다. 오히려 분배 없는 성장이 불가능하다.

2. 그 변화는 공짜로 이뤄진 게 아니다. 차별받는 사람들의 집단행동이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왔다. 이는 지금도,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3. 고삐가 풀려 통제가 되지 않는 사적 소유는 위험하다. 그러니 국가가 누진적 세금-재산세와 소득세, 상속세-을 강화하여 정부의 재정 능력을 키우고 과감하게 시장 장악력을 키워 자원을 재분배할 수 있는 통제력을 되찾아야 한다.

4. 자본은 이미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증식하고 있으므로, 이를 개별 국가 차원에서 길들이고 다루는 건 불가능하다. 민족 국가 체제를 뛰어넘는, 더 국제적이면서도 더 민주적인 다양한 대안을 상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피케티는 195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의 시대를 무척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특히 이 시기 미국의 케인스주의 자본주의 질서를, 피케티가 가까운 미래에 인류가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질서인 이른바 ‘민주적 사회주의‘의 한 형태이자 과정으로 평가하는 지점이 무척 신선했다. 아. 이렇게 볼 수도 있는 거구나.


피케티가 생각하는 대안들을 다루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잘 읽히지 않았다. 팸플릿은 역시 팸플릿인 건지, 문장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모든 대안들은 근본적으로 서구 선진국 정부의 ‘혜안‘과 ‘선의‘, ‘양보‘에 기대지 않으면 실현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는 점에서 뭔가 무척 공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래서야 원, 세상이 진짜로 바뀌기는 하겠어? 하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다만 생태적 관점에서도 지금 자본주의에는 미래가 없으며, 정부가 조세 재정 능력 확보를 통해 사적 소유의 고삐를 강하게 틀어쥐는 방식으로 과잉 생산과 소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강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지금 지구 환경이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아무래도 지금껏 부자 나라와 부자들이 방해 없이 마음껏 먹고 마시고 싼 것들이 누적된 피해를 입혀서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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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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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몇 번 쓰려다가 못 썼다. 다만 이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왜 이제서야 제대로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었을까?

소설을 읽고서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피어올랐다. 어렵다. 글로 제대로 못 옮기겠다.



역사 교사라서 매년 5.18을 가르친다. 이 소설 앞에서 고개를 차마 못 들겠다. 너무 부족하게 가르쳐온 것 같아서. 아니 그전에 나부터가 5.18을 굉장히 도식적으로,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나 싶어서 말이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이 구절에 닿은 순간,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냥 슬픈 게 아니라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광주가 진압되고 나서 온 나라가 상갓집이 되었다는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다. 처음에 듣고서 나는 솔직히 조금 유난스러운 표현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소설을 읽어보니 이제는 알겠다. 당시 온 나라가 상갓집이었겠구나. 전두환 정권을 몰아내기까지 80년대의 시간은 하나의 긴 장례식이자 장송곡 같은 무언가였겠구나. 나는 이제서야 이 소설을 통해 그 시대, 그 세계와 잠깐이나마 만났다. 그냥 어디선가 스쳐 들어본 이야기 같은 게 아니라.

5.18은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었다‘라는 한 문장으로 간단히 요약해버릴 수 없는, 수많은 사연과 감정을 품고 있는 이야기다.

1980년 5월에 광주에서 싸우다 스러져 간 사람들, 그들을 유독 앞장서서 비상식적으로 잔인하게 진압했던 군인들과 한편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일부 군인들, 전남도청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스쳐간 수많은 표정들, 살아남은 사람들이 당했던 모진 고문과 차마 말하지 못할 슬픈 나날들. 단지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존엄을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다울 수 있는 권리를 모조리 빼앗기고 고깃덩어리처럼 매달리고 짓밟혀야 했던 사람들. 남겨진 유족들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메워지지 않는, 산산이 찢어진 가슴.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보고 싶은, 하염없이 보고 싶은, 어느 날 갑자기 내 나라의 군대가 죽여버린 소중한 사람들.



이 소설은 한강 작가가 어린 시절 살던 집에 이사 와서 살던 소년들의 이야기다. 소년들이 겪은 광주 이야기고, 그들이 살아간 도시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과 함께했던 광주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즉,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이 된 소년의 죽음이 더 이상 더럽혀지지 않게 해달라는 부탁을 들었고, 그래서 관련 사료집과 자료들을 열심히 공부하여 이야기의 뼈대를 튼튼하게 세워냈다. 누가 감히 이 소설에 ‘역사 왜곡‘, ‘조작된 이야기‘ 따위의 딱지를 붙이는가.



이 소설은 또한 사람이 얼마나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다양한 감상을 느끼고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을 테다.

한강 작가 노벨 문학상을 받고서 그의 책 판매량이 100만 부를 돌파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한강이 쓴 책에 대해 읽어본 사람도 많고, 읽어보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무척 많다. 그래. 나는 앞으로 이 소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반응하는가를 보고, 상대방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늠해 보게 될 것 같다. 인간적인 교류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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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전쟁 -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를 탄생시킨 향신료 탐욕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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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바다를 목숨을 걸고 누비는 사내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다. 어디선가 선선하고 약간은 짠 바람이 불어와서는 콧잔등을 살살 긁는 느낌. 하지만 향신료를 향한 탐욕 때문에 살던 집이 불태워지고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하는 원주민들의 이야기는 슬프다. 인류의 역사란.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책이다. 하지만 15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대항해시대에 대한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얻고 싶다면 이 책을 발판 삼아 다른 책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저자의 필력은 좋지만 글이 좀 산만하고, 알고 싶지 않은 개인사나 자기 자랑도 군데군데 섞였다.


다만 17세기와 18세기 전반을 주름잡던 네덜란드가 얼마나 대단했고, ‘무시무시했는지‘에 대한 서술은 탁월했다. 차라리 영국이 착해 보일 정도라니, 말 다 했지. 그리고, ‘카레‘는 사실은 인도 전통 음식이라기보다 인도 향신료에 푹 빠진 영국인들이 새롭게 표준화하여 만들어낸 창작품 쪽에 가깝답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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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함의 힘 - 회복탄력성에 대한 오해 그리고 강인함의 비밀
스티브 매그니스 지음, 이주만 옮김 / 상상스퀘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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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자기 계발서도 하나씩 읽어두는 게 좋다. 그렇게 골라 든 자기 계발서가 괜찮은 책이라면 더 좋다. 이것저것 현실적인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니. 내 생각은 그렇다.


이 책은 자기 계발서의 탈을 썼지만 ‘어깨 뽕‘이 안 들어갔다. 성공한 인간으로서의 정답 유형을 정해두고 거기에 모든 논의를 수렴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책에서 길어올릴 수 있었다.

강인한 인간이 되려고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말고, 그럴 시간에 자기의 솔직한 모습을 알아보라고 한다. 그냥 덮어놓고 알아보라고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나는 그중에서 자기 자신과 하는 대화, 즉 ˝혼잣말˝이 가장 눈에 띄었다.
˝이봐. 이게 그렇게까지 그럴 일이야?˝


강인한 사람이 되려면 자기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게 이 책의 핵심이고, 이 책이 강인함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으로 내세우는 과학적 방법이다. 그렇다고 우격다짐으로 마음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억누르고 외면하고 다그치라는 말이 아니다. 자기감정이 실제로 어떤지 알아차리고, 자기감정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차려야 한다. 자기를 잘 알아차려야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야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시야를 넓혀볼 수도 있고, 반대로 한 군데로 집중할 수도 있으니. 모든 것은 거기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렇다. 이 책이 내세우는, 과학적으로 감정을 다루는 방법은 불교 수행을 닮았다. 이 부분이 이 책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자기 계발과 불교라는, 어떻게 보면 서로 대척점에 서있는 두 개의 영역을 이렇게 잘 엮어놓은 책은 처음 본다. 생각해 보면 진정한 자기 계발은 불교를 통해 이룰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염불 말고 수행 말이다. 설득력 있게 불교적인 마음 수행을 권하는 내용을 읽으며, 구체적인 것들을 몇 가지 따라 해보기로 했다. 그에 대한 후기는 나중에... 나무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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