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의 짧은 역사
토마 피케티 지음, 전미연 옮김 / 그러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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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 피케티가 쓴 팸플릿. 그러나 선동적이지는 않다. 비슷한 류의 팸플릿인 공산당 선언이 얼마나 선동적인지를 생각한다면.



나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길고 장황하고 버겁다고 하기에. 이 책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쓴 책이다. 짧고 쉽게 피케티의 이론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피케티는 전통적 의미의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사민주의나 심지어 수정자본주의-케인스주의- 쪽에 가까워 보인다. 내가 이해하기에는.



그의 주장은 이러하다.

1. 18세기부터 지금까지 역사는 불평등에서 평등으로 뚜렷하게 전진해왔다. 인류는 소수가 부와 권력을 독점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그것을 나눠가졌을 때 더 강력해지고 더 번영해왔다. 성장과 분배를 대립항으로 놓는 건 잘못이다. 실제로 분배가 잘 이루어질 때 경제도 더 빠르게 성장했다. 오히려 분배 없는 성장이 불가능하다.

2. 그 변화는 공짜로 이뤄진 게 아니다. 차별받는 사람들의 집단행동이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왔다. 이는 지금도,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3. 고삐가 풀려 통제가 되지 않는 사적 소유는 위험하다. 그러니 국가가 누진적 세금-재산세와 소득세, 상속세-을 강화하여 정부의 재정 능력을 키우고 과감하게 시장 장악력을 키워 자원을 재분배할 수 있는 통제력을 되찾아야 한다.

4. 자본은 이미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증식하고 있으므로, 이를 개별 국가 차원에서 길들이고 다루는 건 불가능하다. 민족 국가 체제를 뛰어넘는, 더 국제적이면서도 더 민주적인 다양한 대안을 상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피케티는 195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의 시대를 무척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특히 이 시기 미국의 케인스주의 자본주의 질서를, 피케티가 가까운 미래에 인류가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질서인 이른바 ‘민주적 사회주의‘의 한 형태이자 과정으로 평가하는 지점이 무척 신선했다. 아. 이렇게 볼 수도 있는 거구나.


피케티가 생각하는 대안들을 다루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잘 읽히지 않았다. 팸플릿은 역시 팸플릿인 건지, 문장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모든 대안들은 근본적으로 서구 선진국 정부의 ‘혜안‘과 ‘선의‘, ‘양보‘에 기대지 않으면 실현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는 점에서 뭔가 무척 공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래서야 원, 세상이 진짜로 바뀌기는 하겠어? 하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다만 생태적 관점에서도 지금 자본주의에는 미래가 없으며, 정부가 조세 재정 능력 확보를 통해 사적 소유의 고삐를 강하게 틀어쥐는 방식으로 과잉 생산과 소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강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지금 지구 환경이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아무래도 지금껏 부자 나라와 부자들이 방해 없이 마음껏 먹고 마시고 싼 것들이 누적된 피해를 입혀서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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