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얀 필립 젠드커 지음, 이은정 옮김 / 박하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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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보이지 않아도 누군가는 들으리라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얀 필립 젠드커 지음, 이은정 옮김, 박하, 2014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은 독일 시사잡지 슈테른의 기자 출신으로 미국과 아시아 특파원을 지낸 얀 필립 젠드커의 첫 장편소설이다.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담은 독일소설이라고 소개되고 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아름답기 이전에 진한 슬픔이 배어있기 때문이고 독일 작가이긴 하지만 소설의 배경이 미얀마이어서 그렇다. 2002년 독일에서 출간되어 서점주인과 독자들의 입소문만으로 화제에 오르며 전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얀마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한 변호사의 삶을 살던 남자가 어느 날 흔적 없이 사라진다. 화자인 20대의 딸 줄리아는 아버지의 유품 속에서 미얀마의 한 여성에게 썼던 50여년 전의 편지를 발견하고 아버지의 행방을 쫒아 미얀마 껄로로 떠난다. 그곳에서 줄리아는 어느 날 갑자기 앞을 볼 수 없게 된 소년(틴 윈)과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소녀(미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게 된다. 귀로 세상을 느끼는 틴 윈에게 우 메이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사물의 참된 본질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법이란다. 우리는 오히려 감각 기관 때문에 길을 잃지. 그 중에서도 특히 눈은 우리를 잘 속인다.”(149) 틴 윈은 보지 못하는 대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더 깊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 둘은 서로에게 눈과 발이 되어주며 물리적 거리의 장애와 시간의 부식력을 거스르며 하나의 영혼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완벽하게 보여준다. 이 소설은 어깨를 빌려주고 옆구리를 내주는 사소한 사랑의 방식에도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감동과 매혹을 넘어 닿을 수 없는 경이감까지 불러일으킨다.

 

미얀마로 여행계획을 세워놓고 가이드북보다 먼저 손이 닿은 책이다. “이 도시에서 좋은 시간 보내십쇼. 깔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19) 길을 잃고 두리번거리는 줄리아에게 낯선 미얀마 청년이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며 하는 말이다. 애초 계획하고 있던 양곤-바간-낭쉐 여행일정에 깔로를 추가하기로 마음먹은 게 아마 이 대목을 읽을 쯤 이었나보다. 틴 윈은 35년 만에 미미 옆으로 돌아왔고, 둘은 그 다음날 함께 세상을 떠났다. 그날이 15일이다. 한 달 후에 나는 미얀마에 있을 것이고, 일정을 짜다보니 공교롭게도 15일 쯤에 깔로에 닿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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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동의보감 내경편 낭송Q 시리즈
허준 지음, 임경아.이민정 풀어 읽음, 고미숙 / 북드라망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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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생을 하노라

 

낭송 동의보감 내경편

허준 지음, 임경아.이민정 풀어 읽음, 고미숙 기획, 북드라망, 2014

 

작년 봄에 한 달 동안 인도를 여행했다. 갠지즈 강을 거닐다가 치렁치렁한 머리칼이 고목나무에서 흘러내린 듯 허리까지 내려와 있는 사두(힌두 탁발승)와 마주쳤다. 얼굴에는 경극 배우처럼 두꺼운 분칠을 했고, 몸에는 갖가지 요상한 악세사리를 두르고 있다.

 

나마스떼!(안녕하세요)” “어디서 왔는가?”

코리아

아니, 네가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묻는 것이다

모르겠다

궁금하지 않은가?” “궁금하면 50루피!”

사실은 너는 네가 온 곳을 알고 있다. 단지 그 사실을 네 자신이 모를 뿐이다”“살람 알레이쿰!(당신에게 평화를)”

 

평화는 모르겠고 화가 살짝 나는 게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미 50루피는 그의 손에 쥐어진 다음이었다. 아이 엠I am을 찾을까 했다가 루피만 날렸다.

 

갠지즈 강에 석양이 지는 것을 보려고 다시 가트로 나갔다가 그 사두를 다시 만났다. 오늘 하루 영업(?)을 결산이라도 하는 듯 가트 옆에서 지긋히 눈을 감고 앉아 명상을 하며 이따금씩 만트라(신성한 주문)를 내뱉는다.

하리 옴! 옴 나마 시바야!”

 

슬그머니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 옆으로 몰래 다가가 결가부좌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동의보감>을 공부하다 읽은 주역周易64를 입에서 나오는 대로 제멋대로 읊어 댔다.

 

중천건 중지곤 수뢰둔 산수몽

수천수 천수송 지수사 수지비

풍천소축 천택리 지천태 천지비

 

사두가 놀랐는지 눈을 번쩍 뜨고 지금 외는 주문이 뭐냐고 묻는다.

궁금한가?

궁금하면 50루피!”

 

사두는 그제서야 상황을 알아채고 그 턱없이 크고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씩 웃는다. 내친김에 손바닥을 비벼 눈자위를 비비고, 콧등을 문지르고, 이를 부딪치는 고치법 등 <동의보감>에서 배운 몇 가지 양생술을 시범으로 보여줬더니 따라한다. 물론 50루피는 여전히 그의 손에 있는 것이 생업적 사기로 번 돈을 반환할 의사는 없어 보인다. 20134월 어느 봄날 갠지즈 강가에서 우리 둘은 그렇게 한바탕 웃고 헤어졌다.

 

아유르베다는 우주와 인간을 상호 연관 지어 고찰하는 고대 인도의 전통의학이다. 인도와 네팔 등에서 5천년 이상 동안 일상생활에서 활용되어 왔는데, 아유르베다의 핵심을 한 마디로 말하면 균형이다.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영적인 기운의 상호 균형이 깨졌거나, 또는 개인과 자연환경의 균형이 깨졌을 때 질병이 생긴다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우주의 기운이 우리 신체와 연결되어 있듯이 몸과 마음이 서로 소통한다고 말한다. 희로애락과 오장육부가 연동되어 움직이며, 감정은 삶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화를 자주 내면 간이 상하고, 너무 기뻐하면 심장이 다치며, 두려움이 지속되면 신장에 병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유르베다가 표방하는 인간은 소우주이고 질서는 건강이고 무질서는 병이라는 철학은 한의학과 일부 통하는 지점이 있다. 서양의학도 다르지 않다. 네델란드 출신의 헤르만 부르하페(16881738)라는 의사는 죽어서 의학사상 최고의 비밀이라는 두툼한 노트 한 권을 남겼다. 이후 이 노트는 경매에 붙여졌는데 그 노트를 펼치자 아무것도 없는 백지의 노트 맨 끝 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한 줄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머리는 차갑게 하고, 발은 뜨겁게 하며, 몸속에는 찌꺼기를 남겨주지 마라. 그러면 당신은 세상의 모든 의사를 비웃게 될 것이다." 차가운 기운은 위로 올라가게 하고 뜨거운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게 하는 것,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편안하게 복부는 따뜻하게 하는 것이 건강의 지름길이라는 것으로,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수승하강水昇下降이나 두한족열頭寒足熱과 같은 의미다.

 

<동의보감>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기록유산으로, 동아시아 2,000년의 의학지식을 집대성한 동양의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책이다. 조선조 광해군 2년인 1610년에 허준이 장장 14년에 걸쳐 완성한 책으로, 25권에 달하는 엄청난 스케일로 목차만 무려 100쪽이 넘는다. 특히 중국에선 30여 차례 간행될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일본에서도 한의학의 표준적 모델이 되었다. 의서임에도 보다는 생명활동에 중점을 두고 병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양생법을 강조하고 있다. <동의보감>은 단순한 의학서가 아닌 삶의 비전서, 혹은 양생술의 지혜가 가득한 인생사용설명서라고 할 수 있다. 양생법은 말 그대로 잘 사는 방법인데, 태어날 때 천지로부터 받은 기운을 잘 아끼고 보양하라는 것이다. 계절의 변화에 맞게 잠자고 일어나며, 음식은 담박하고 적당히 먹으라는 등 일상적인 실천지침을 제시한다. 낭송 동의보감 내경편<동의보감> 중 몸 안의 세계를 다룬 내경편에 있는 내용을 가려 뽑아 낭송하기에 알맞게 그 편제를 새롭게 만든 발췌 편역본이다.

 

하루 중의 금기는 저녁에 배부르게 먹지 않는 것이고, 한 달 중의 금기는 그믐에 만취하지 않는 것이고, 인 년의 금기는 겨울에 멀리 여행하지 않는 것이고, 평생의 금기는 밤에 불을 켜고 성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89)

 

그런데 왜 낭송인가? 여기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대체 공부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 교과서를 달달 외고 문제집을 술술 풀고 계산을 척척 해내는 게 공부가 아니라는 것쯤은 다들 안다. 그렇다. 공부는 쿵푸다. 몸과 마음을 새롭게 만드는 것을 넘어 온전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공부의 핵심은 역시 소리요 청각이다. 신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낭송이라는 전통의 공부법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니체는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것도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비유컨대,‘정신은 몸의 의지를 수행하는 손이라는 것. 그러므로 영혼과 육체는 분리되지도 않고, 분리할 수도 없다. 고로, 나는 신체다!

(고미숙,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북드라망, 2014, 2021)

 

올 한해 시절인연이 닿아서인지 동의보감을 좀 더 가까이서 공부하게 되었다. 낭송과 산책이 최고의 용신이라는 걸 믿기에 날씨가 좋을 때면 사시사철 화보를 펼쳐 보여주는 남산길을 산책하며 동의보감을 읊조리곤 했다. 몸은 삶의 유일한 현장이자 무대요, 존재와 우주가 교차하는 접점이다. 낭송은 아주 구체적이면서 신체적인 활동이며 몸이 좋아하는 독서법이다. 백미보다 현미가 몸에 좋은 것처럼 묵독보다 낭송이 몸에 더 잘 호응한다. 묵독은 이야기에 담긴 긴장과 갈등, 지혜와 성찰의 호흡을 제거한다. 그런데 낭송하는 순간 책속에 몽글몽글하게 웅크리고 있던 활자들이 그 뜻을 곧게 펴고 책 밖으로 걸어 나온다. 내용을 이해하고 못하고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건 그 파동과 기를 몸이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말을 하려면 입과 귀를 써야 한다. 입과 귀가 움직이면 뇌가 충전된다. 그리고 뇌를 자극하면 심장을 거쳐 신장으로, 허벅지와 발바닥까지 그 기운이 전달된다. 그래서 낭송을 일종의 양생비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유일한 부작용은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나쁜 중독이든 좋은 중독이건 중독은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 낭송에 빠지면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입 밖으로 소리 내서 읽으려고 달려들지 모른다. 비록 그것이 가계부와 애 성적표일지라도. 그러니 일단 신체와 궁합이 잘 맞는 좋은 고전을 고른 다음에 머리로 바짝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낭송을 통해 몸에 새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핵심은 외는 것이다. 다 외워야 낭송이 가능하다. 암기와 암송은 다르다. 암기가 음소거 상태에서 의미 단위로 텍스트를 먹어 치우는 것이라면, 암송은 소리로써 텍스트를 몸 안에 새기는 행위다. 그렇다. 뼈에 새기려면 외워야 한다.

(고미숙,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북드라망, 2014, 115)

 

이 책을 포함한 낭송Q시리즈는 낭송을 위한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꼭 소리 내어 읽고, 짧은 구절이라도 암송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머리와 입이 하나가 되어 책이 없어도 내 몸안에서 소리가 흘러 나오는 것, 그것이 바로 낭송이다. 1신형新形, 내 안의 자연에서는 인간과 우주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명은 어떻게 탄생하고 살아가는지 소개한다. 세상과 고립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1부를 소리내서 읽어 보자. 또 자괴감에 시달리거나 남 탓을 하고 싶을 때는 꿈에서 똥까지 몸 속 무수히 많은 존재들을 탐구한 6부를 큰 소리로 읽다보면 속이 후련해진다. 내형편에 이어 외형편, 잡병편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어쩐지 을미년乙未年 새해가 든든해지는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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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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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

언제부턴가 남루한 일상과 지리멸렬한 삶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어중간한 존재로 사는 쓸쓸함과 피로감이 미역줄기처럼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어느 날 아침 토스트를 굽다가 식빵이 톡하고 튀어 나와 식탁 아래로 굴렀다. 커피도 떨어지고 냉장고 안도 텅 비어 있었다. 갑자기 인도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들레르처럼.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가장 빨리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구하고 짐을 꾸렸다. 불룩해진 배낭에서 옷가지를 빼고 몇 권의 책을 채워 넣었다.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도 그중 하나다. 앨리스 먼로는 우리 삶이 그래서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살아야 하는, 온통 비밀로 둘러싸여 있는 것임을 말해 준다. 그저 지키고 남아있고 바라보고 돌아오고 기다리는 것들로 인생이 채워져 있다며, 너무 많이 흔들리지 말라고 낮게 속삭인다.

중요한 건 행복해지는 거야.” 그가 말했다. “뭐가 어떻든 간에, 그냥 그러려고 해봐. 넌 할 수 있어. 하다보면 점점 쉬워질 거야. 주변 상황과는 아무 상관 없어.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넌 모를 거야. 모든 걸 받아들이면 비극은 사라져. 혹은 가벼워지지. 어쨌든 그러면 그저 그 자리에서 편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돼.”

(앨리스 먼로, 디어 라이프, 문학동네, 2013, 142)

 

먼로의 소설은 여행 내내 위태로운 내 발걸음을 위무慰撫해 주었다. 읽을 때마다 매번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는 느낌과 함께 내가 살아냈던 인생의 어떤 한 장면과 마주치게 하면서, 삶 속으로 무찔러 들어와 균열을 냈다.디어 라이프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416) 먼로는 삶은 우리보다 강하다고, 그러니 살아내는 것이 삶이라고 말하고 있다. 델리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마지막 쪽을 덮으며 한쪽 여백에 이렇게 적어 넣었다. “용서하라, 사랑하려면! 사랑하라, 용서하려면!”지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지우지 못한 그 사람에게 올해가 가기 전에 전화를 걸어야겠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브라마의 도시 푸쉬카르에서 낙타를 타고 들판을 가로질러 사막으로 갔다. 들판에서 만난 목동들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게임을 하거나 다운로드한 음악을 듣느라 염소 떼를 돌보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염소들이 제멋대로 멀리 달아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염소들이 저렇게 흩어지는데 괜찮아? 안 쫓아가도 돼?”

여전히 스마트폰에 코를 박은 목동이 답한다.

“No Problem! 저들이 가는 방향이 내가 가려던 쪽이예요.”

 

여행은 자주 멈추고 자꾸 뒤돌아보게 만든다. 이름 모를 역을 지나칠 때마다 낯선 전율과 흥분이 눈을 찌른다. 발걸음은 더뎌지고 감상은 농밀해진다.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새삼 외로움이 더해지는 게 기어코 휴지 한 장을 더 꺼내 빈자리까지 닦아낸다. 그러나 하나는 적지만 둘은 너무 많은 게 여행 아닌가. 때론 비어있는 자리가 더 많은 말을 건넨다. 빈자리와 대화를 나누는 것에 익숙해지는 게 여행이다. 불안과 주저와 한숨이야말로 살아있다는 증거이니, 그럴 때마다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푸쉬카르에서 아그라를 거쳐 카주라호에 도착했다. 50루피짜리 자전거를 빌려 타고 한가롭게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이방인들이 점령해 버린 관광지를 벗어나 자연 속에 자리 잡은 마을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나타냈다. 울타리 없이 짐승을 기르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사진 찍히기를 두려워하는 우물가의 여인들을 지나치기도 했다. 카주라호는 궁색한 시골벽촌 이지만, 여전히 북인도 최고의 사원 유적지다. 노골적인 에로틱한 힌두사원 조각을 보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각상들은 인도 최초의 성애서인 카마수트라에 실려 있는 것들로 일반적인 종교에서 금기시하는 성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한 체위의 남녀 미투나상(교합상)들이 너무나 리얼하다. 남녀 둘만의 교접에서 더블Double은 물론, 동성애와 심지어 수간까지 등장한다. 이쯤 되면 19금이 아니고 49금이다. 그러나 신의 허락 아래 이루어지는 투명한 사랑의 행위라니 어쩔 것인가. “어떡하나요, 사랑 없인 살 수 없고, 사랑만으로도 살 수 없으니.”‘외로움이 지나쳐 애로움으로 변했는지, 카주라호에서의 마지막 날 밤 꿈속에 현란한 미투나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참지 않았다.

 

몽정은 나의 외가外家. 몽정이 육체의 정열이 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그 육체를 사용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중략) 몽정은 타인의 몸과 나누는 성교가 아니다. 자신의 육체와 벌이는 성교다. (중략) 몽정은 자신의 몸을 그리워하며 몸을 지나간다. 몸에 잔설殘雪을 남긴다.

(김경주, 밀어, 문학동네, 2012, 3539)

 

사막에서 사람들이 타고 온 낙타들이 저녁이 되면 둥글게 모여서 울곤 했다. 그 모습이 마치 캄캄한 어둠속에서 낙타들이 집단적으로 수음을 하는듯한 몽롱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밀어는 인간의 몸속에 억겁으로 뒤엉킨 시차의 눈을 달래며 엄혹하고도 정밀하게 써내려간 육체의 서사시다. 신체 각 부위에 명명된 인간의 욕망과 고뇌의 흔적들을 하나씩 호출한다.

 

밤기차를 타고 콜카타에 도착했다. 한때는 대영제국의 전 세계 영토 중 런던을 제외하고 가장 컸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20세기 초반의 한 언저리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퇴락해가는 슬픈 화양연화花樣年華의 기억을 간직한 도시다. 집과 사람이 함께 쓰러져 가고 있는 슬럼가를 곳곳에 품고 있다. 역에서는 꼬질꼬질한 옷과 때 묻은 손을 한 아이들이 기부나 후원을 뜻하는박시시!’를 외치며 맨발로 앞을 가로막는다. 인도 아이들의 눈은 정말 엄청나게 크다. 아마 다른 민족에 비해 몇 배는 더 검고 몇 배는 더 흰 눈동자를 가진 듯하다. 그 큰 눈에 자신들의 모든 감정을 한껏 담아 손바닥을 내미는 아이들의 눈동자는 낙타의 그것처럼 허망하고 공허하다.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맞추지 않는 것으로 일단 피해 보지만 여자들은 빈손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의 등짝을 후려쳐 아이들을 관광객 앞으로 다시 내몬다.

 

나는 라면이 끓는 사이, 그들의 눈을 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나눠 먹어야 마땅했지만 그 소중한 그것을 나눠 먹는 일은 가당치 않은 일이었으므로 나는 그저 약간의 사례를 하고는 다 끓은 라면을 들고 찬바람까지 일으키며 그곳을 빠져 나왔다. 내가 떠나자 아이들이 라면 봉지와 스프 봉지를 차지해 핥으면서 다투기 시작했다.

(이병률,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2012, 7#)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71억 인구의 12%에 해당하는 84200만 명이 기아에 내몰리고 있다. 5초마다 10살 이하의 어린이가 못 먹어 죽어가고 있고, 해마다 630만 명의 어린아이들이 5살이 되기 전에 굶어 죽고 있다. 축복받은 땅일수록 저주받은 땅이고, 풍요로운 곳일수록 굶주림이 많은 곳인가. 세상의 거의 모든 신이 깃들어 사는 이곳 인도에 거의 모든 가난과 비참함이 동거하고 있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콜카타를 떠나기 전날 비가 내렸다. 우산을 쓰고 비오는 콜카타를 찍겠다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한다. “카메라와 사람 둘 다 젖지 않으면서 좋은 사진을 찍는 것은 불가능하다.”우산을 던져놓고 셔터를 눌렀다.

 

이러면 어떨까요. 모두를 던지는 거예요.

그 다음은 그 이후의 모두를 단단히 잠그는 거예요. (중략)

삿포로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이병률,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2012, 11#)

 

인도에서 한 달 쯤 시간이 지나자 입고 갔던 옷들의 단추가 하나둘씩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자주 멈추고 자꾸 뒤돌아보긴 했지만 그건 다른 빛깔의 희열이고 충만함이었다. 그러나 여행에서 막 돌아온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여행이라고 했던가.어디론가 짧은 편지를 썼다. “당신이 그곳에 있다는 말을 듣고 삿포르 대신에 상하이행 항공권을 끊었습니다. 12141155분에 푸동공항에 도착하는 OZ 363편입니다. 삿포르는 아니지만 공항에서 당신이 눈을 맞고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상하이에도 눈이 올까요?”--

     

리뷰한 책들

디어 라이프, 앨리스 먼로, 문학동네, 2013

밀어, 김경주, 문학동네, 2012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병률,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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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낭송Q 시리즈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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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라고 한다. 경제력과 체력만 있으면 과거 고려조선시대 왕들보다 호사하며 살 수 있다. 지금 시대의 대통령보다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던 과거 유럽의 황제들도 여러 모로 오늘날 선진국의 평균적인 시민보다 가난했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조차도 가장 좋은 교통수단은 마차였고 주치의는 무능했으며 화장실에선 수돗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저승 앞을 흐르는 삼도천의 뱃사공 카론의 눈에 일찍 띄는 것처럼 억울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길어진 여생을 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의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태평성대 아닌가. 굶어 죽지도, 전염병이 휩쓸지도, 전쟁을 겪지도 않는 시대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이 얼마나 난세이고 혼세인지를. 무엇이 문제인가?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미숙,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북드라망, 2014, 179)

 

길어진 인생을 위해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하는 것은 연금과 일자리가 아니라, 길어진 삶이 지닌 가능성을 어떻게 꾸려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다. 매일 등산을 갈 수도 없고, 손자 손녀를 무릎에 올려놓고 바라보는 재미도 잠깐이다. 그렇다고 매번 새로운 아이템item을 쫒으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버겁다. 되도록 빨리 아이 엠i am을 찾는 공부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스는 2030년 안에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직업적 격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시간을 보람 있게 쓸 수 있게,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게, 웃을 수 있게,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가장 큰 존경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일종의 삶의 질 향상사쯤이 될까. 구체적인 직업을 생각해 보자. 예술가, 철학자, 영화제작자, 축구선수, 심리치료사는 살아남을까? 그럴 것이다. 정치인과 은행가도 살아남을까? 그러길 바란다.

 

크리슈나무르티는 말한다. “자신의 가슴을 타인의 노래로 채우지 마라!” 그렇다. 가지나 잎을 따는 사람은 절대로 꽃이나 열매를 가질 수가 없는 법이다. 나를 구원할 이는 오직 나뿐이다. 그 누구도 나의 삶을 대신해 줄 수 없다. 우리가 우리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첫걸음은 우리 스스로가 내딛는 공부다. 기존의 공부에 대한 통념을 전복하고, 공부에 대한 새로운 통찰에 다가서야 한다. 바로 남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자기 자신과 경쟁하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를 변혁하고 삶을 벼리는 새로운 공부의 방식이다. 다행히 디지털 문명 덕분에 누구든 어디서건 최고의 지성에 접근할 수 있다. 대신지금 당장’‘여기서시작해야 한다. 살아 있다는 건지금, 여기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 강력한 의지는 삶을 항상 현재적인 것으로 만든다. 하루가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의역학에서는 40세가 되기 전까지는 발산 운동이 지배하므로 활발히 움직이고 일하며, 40세 이후에는 수렴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로 서서히 활동을 줄이고 힘을 기르는 수렴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40세 이후에 공부 욕구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인지 모른다. 나는 올해 쉰을 살았다. 주역에서 50을 기본수라고 한다. 인생에서 50이라는 시기는 매우 중요하다. 자연과 인생을 시작과 끝을 놓고 볼 때 중간을 매개하는 숫자가 50이다. 우리는 매년 사계절을 경험하지만 특히 봄여름에서 가을겨울로 넘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의 변곡점을 어떤 식으로든 겪어야 제대로 마디를 넘을 수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 그럼 대체 공부란 무엇인가? 교과서를 달달 외고 문제집을 술술 풀고 계산을 척척 해내는 게 공부가 아니라는 것쯤은 다들 안다. 그렇다. 공부는 쿵푸다. 몸과 마음을 새롭게 만드는 것을 넘어 온전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공부의 핵심은 역시 소리요 청각이다. 신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낭송과 암송이라는 전통의 공부법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니체는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것도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비유컨대,‘정신은 몸의 의지를 수행하는 손이라는 것. 그러므로 영혼과 육체는 분리되지도 않고, 분리할 수도 없다. 고로, 나는 신체다!

(고미숙,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북드라망, 2014, 2021)

 

몸은 삶의 유일한 현장이자 무대요, 존재와 우주가 교차하는 접점이다. 낭송은 아주 구체적이면서 신체적인 활동이며 몸이 좋아하는 독서법이다. 백미보다 현미가 몸에 좋은 것처럼 묵독보다 낭송이 몸에 더 잘 호응한다. 묵독은 이야기에 담긴 긴장과 갈등, 지혜와 성찰의 호흡을 제거한다. 그런데 낭송하는 순간 책속에 몽글몽글하게 웅크리고 있던 활자들이 그 뜻을 곧게 펴고 책 밖으로 걸어 나온다. 내용을 이해하고 못하고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건 그 파동과 기를 몸이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말을 하려면 입과 귀를 써야 한다. 입과 귀가 움직이면 뇌가 충전된다. 그리고 뇌를 자극하면 심장을 거쳐 신장으로, 허벅지와 발바닥까지 그 기운이 전달된다. 그래서 낭송을 일종의 양생비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유일한 부작용은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나쁜 중독이든 좋은 중독이건 중독은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 낭송에 빠지면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입 밖으로 소리 내서 읽으려고 달려들지 모른다. 비록 그것이 가계부와 애 성적표일지라도. 그러니 일단 신체와 궁합이 잘 맞는 좋은 고전을 고른 다음에 머리로 바짝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낭송을 통해 몸에 새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낭송에 가장 적합한 텍스트는 동양고전이다. 그중에서도 춘향전이나 심청전같은 우리말의 보고인 판소리계 소설이라면 금상첨화다.

    

낭독이나 낭송은 혼자 할 수도 있고, 같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낭독과 낭송은 그 자체로 다중적이며 공동체적 행위다. 함께 읽어야 하고, 서로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다. 감동을 주는 요긴한 방법 중 하나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서로 들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낭독이나 낭송은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이 길을 오래 걸어가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같이 하는 것이 좋다. 광장이나 마당을 통해 일종의지성의 코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크기는 삶의 크기와 정비례한다. 말 그 자체가 명령서이면서 실천윤리이다. 그래서 스마트폰이 발달할수록지혜로 삶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욕구는 더 커지게 마련이다. 창조의 언어인 로고스logos를 통해 개인의 운명과 삶의 배치를 바꾸는 것, 그것이 디지털 문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윤리적 선택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는 점점 더불통의 시대로 변하고 있다. 폭언과 무언 사이를 허망하게 왕복달리기 하기 일쑤다. 신체를 소외시킨 우리 시대의 화법이 호흡은 짧고 서사는 빈곤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신은 어쩌면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인간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핵심은 외는 것이다. 다 외워야 낭송이 가능하다. 암기와 암송은 다르다. 암기가 음소거 상태에서 의미 단위로 텍스트를 먹어 치우는 것이라면, 암송은 소리로써 텍스트를 몸 안에 새기는 행위다. 그렇다. 뼈에 새기려면 외워야 한다. (고미숙,『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북드라망, 2014,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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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거나 혹은 떨리거나 - 박일호 기행 서평집
박일호 지음 / 현자의마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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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후반전을 준비하기 위해 떠난 한 달 간의 인도여행! 그곳에서 길어올린 빛나는 사유가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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