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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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랑이다

 

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문학동네, 2013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장편소설 롤리타에 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누군가는 비정상적 소아성애증을 뜻하는롤리타 콤플렉스라는 용어까지 낳을 정도로 추잡한 중년 남자가 12살 짜리 여자아이에게 성적으로 집착하는 구역질나는 이야기라고 했다. 반면 충격적이고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은 독창적인 사랑에 대한 연구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의 후유증으로 사춘기 이전이나 사춘기에 접어든 9세에서 14세에 이르는님펫이라고 부르는 어린 소녀들에게 집착하며 사랑의 욕망을 느끼는 험버트가 주인공이다. 어느 여름날, 37살의 험버트에게 치명적인 매력과 마력을 가진 12살 소녀 롤리타가 나타난다. 롤리타에게 완전히 매혹 당한 험버트는 그녀 곁에 머물기위해 롤리타 엄마와 재혼하여 롤리타의 의붓아버지가 된다. 롤리타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자 험버트는 롤리타와 함께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사랑을 나눈다. 험버트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배심원들을 향해 감옥 겸 정신병원에서 길게 늘어놓은 독백이 이 소설의 중심 내용이다. 낭만적이고 시적이며, 성애적이자 희극적이고도 비극적인, 포에로틱한poerotie한 이 소설의 스토리를 요약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읽을 수 밖에 없다. 금지된 사랑을 다룬 이 소설은 1955년에 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논란의 중심에 휩싸이며 20세기 포르노그라피라 매도당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수많은 은유와 상징들이 다양하게 해석되고 문학적으로 재평가되어, 타임 르몽드 모던라이브러리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문소설'에 포함될 정도로 고전의 반열에 놓이게 된다. 책 표지를 열자마자 흰 목양말에 끈달린 운동화를 신고 눈부시게 빛나는 종아리를 드러낸 짧은 교복치마의 하반신 사진이 눈길을 끈다. 혼자있는 서재지만 혹시나 아내나 딸애가 볼세라 주위를 한 번 둘러보게 만든다. 영화로도 본 적이 있는 소설 은교가 오버랩되어 지나간다.

 

롤리타는 이렇게 시작한다.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 . .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에 이렇게 압도하는 첫 문장이 있었던가.

 

사랑 혹은 광기에 집착하는 한 사내의 과도한 집착이 시종일관 고른 호흡으로 읽기를 방해하지만, 중간중간 심어놓은 깨알같은 유머코드가 심각한 독서에서 독자들을 끌어낸다. 험버트가 자신들 사랑의 훼방꾼인 극작가퀼티와 맞대결하며 그를 총으로 쏘아 죽이는 대목이 특히 압권이다. 거창한 서부영화처럼 심각하고 잔인하고 엄숙해야 할 살인장면이 오히려 슬랩스틱 코미디를 닮았다.(471-491) 우리는 프리송frisson(두근거리는 것, 스릴을 뜻하는 프랑스어)에 잘 걸려 넘어지는 존재다.롤리타를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엄격한 법전이나 딱딱한 상식 대신 자유로운 정신과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우리 존재가 가진 비밀스러운 구석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정신의 밑바닥을 훑어야 가능하다. 여러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위대한 스타일리스트인 나보코프는 우아하고 비유적이고 재치 넘치는 문장으로 위장한 언어유희와 수많은 중의어들을 작품 곳곳에 숨겨놓았다. 그리고 그 지뢰가 터질때마다 독자가 깜짝깜짝 놀라는 모습을 시치미를 뚝 떼고 즐기는 듯 하다. 마치 작가는 쓰고, 독자는 읽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역자는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문체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이 시종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며힘을 주면 금이 갈 것 같고, 조금만 열어두면 향기가 다 날아갈 듯하다고 표현했다. 사족하나. 우연인지 요즘 읽는 소설에서 꼭 한 대목씩 한국에 대한 언급이 보너스처럼 찾아온다. 이를테면 챗필드 부인이 험버트에게 하는 이런 대사. “가엾게도 그 아이는 얼마 전에 한국에서 전사했단 말예요.”(466)

 

롤리타는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다. 나보코프가 말했다. “이상한 말이지만 사람은 책을 읽을 수 없다. 다시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좋은 독자, 일류 독자,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독자는 재독자再讀者. 소설은 읽고 또 읽어야 한다. 아니면 읽고 읽고 또 읽든지.”롤리타의 주석 및 해설을 담당한 나보코프 전문가인 앨프리드 아펠도 이렇게 단언했다. “전 세계의 속독가들이여, 유념하라!롤리타는 여러분을 위한 책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가. 영국의 소설가 킹즐리 에이미스가 롤리타의 문제 중 하나는, 지나치게 외설적이기는커녕 충분히 외설적이지 않다는 점이다.”라고 한 말이 지금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롤리타를 한 번 읽고 쓴 이 리뷰도 무효일수밖에. 그래도 이 말만은 꼭 해야할 것 같다. “누군가에게 첫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랑이다.”그렇지 않은가? 미스터 험버트 험버트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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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1-30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저도 정말 처음 문장 보고 잠시 멍했죠. 시적이잖아요.
그러면서도 뭔가 쓸쓸한... 정말 첫 문장이 황홀한 소설 넘버 원입니다....

구름을벗어난달 2014-02-10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아마 저도 너무 어리거나 젊었을때 이 소설을 읽었다면 어쩌면 중간에 던졌을지도 모릅니다. 책의 감동은 영화로도 이어졌는데, 마지막 장면에 나오던 제레미 아이언스의 허망한 눈빛이 지금도 기억납니다.